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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뉴 Nov 17. 2024

울타리 걷어차기: 퇴사 준비

4시간 가까이 울고 노트북을 켰다. 지금의 감정과 깨달음, 다짐을 글로 남기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아서 용기를 내어본다. 


독일에 파견을 나온지 약 두달 반이 지났다. 해외 나오면 더 행복할 줄 알았다. 실제로 주말엔 너무나도 행복하다. 다만 회사가 문제다. 한국에 있을 때 없던 월요병이 생겼다. 회사에서 누군가 내 이름만 불러도 짜증부터 난다. 독일에 온 이후로 항상 피곤했고 나는 (회사에서는 특히나) 생기를 잃어갔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오늘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되었다. 오랜만에 본사에서 출장 온 친구를 공항에 바래다 주는데 속마음을 털어놓다가 울음이 터졌다. 친구를 보내고 한국에 있는 엄마랑 통화하다가 거의 4시간을 내리 울었다. 그간 쌓인게 많았나보다. 결론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하고싶은 건 많아졌고 행동력과 자신감은 올라갔는데, 업무랑 회사 생활은 지나친 통제 하에 있다는 것. 


사실 회사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고 업무가 너무 많아서 야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회사만 가면 우울해졌다. 본사에서는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이 당연했고 생활적인 터치 (예를 들면 출퇴근 시간이나 휴가 사용 등) 가 전혀 없었기에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실적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내가 내리고 그것이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 온 뒤로 새로 하는 업무가 대부분의 백오피스의 지원 업무에 가까워졌다. 주도성이 떨어짐과 동시에 생활적인 통제는 늘어나다 보니 나는 꽤나 눈치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항상 가슴 한켠이 답답했다. 또한 업무의 방향성이 다소 모호해서 내가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건지, 왜하는지에 대한 정의가 스스로 내려지지 않으니 동기부여도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전에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그때도 답답함에 집에서 참 자주 많이 울었다. 그때도 나는 회사 생활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전문성을 쌓겠다고 CFA 를 취득한 것이었는데.... 다시 돌고돌아 이 상황에 처하고 나니 내가 직장생활에 성향상 맞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눈이 팅팅 부을 정도로 울고 (잠이 많은 내가 ) 잠을 잘 못자고 (생리 주기가 칼같은 내가 ) 생리를 멈췄으며 살이 쪘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최근들어 너무나 자주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라는 책을 보면 주인공인 리즈가 이혼 전에 밤에 잠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지금 딱 그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렇게 지금 나는 회사와의 결별을 준비한다. 당연히 당장 사직서를 낼 것은 아니지만 데드라인을 정해야 용기를 내고 실천에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 마음속 데드라인은 3개월이다. (25.2월)


그리고 퇴사 후 해야할 일도 적어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만 채운 나날들을 보낼 수 있다고 상상하니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진다. 무모한 행동일 수 있으나 나는 30살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수많은 여자들을 알고 있다. 다시 용기를 내본다. 다행히 해외에 나와있으니 남들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있었다. '~~해야만 한다'가 확연히 없었기 때문에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할 있었다. 


그간 나를 주저하게 한 것은 크게 2가지였다. 경제적인 것이 제일 크고, 그 다음 명예를 포기해야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돈과 명예, 그 두가지 모두 회사 밖에서 만들어야 진정한 내 것 아닌가 싶다. 삼성이라는 큰 대감집 노예 생활을 앞으로 20년은 더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삶을 끝내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 이해가 되는 정도로 가슴이 갑갑하고 눈앞이 어두워진다. (내가 하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내 삶이 너무나 소중해서 120살까지 살고 싶은 사람이다.) 엄마랑 통화하면서, 엄마가 용기를 내라고 해줘서 다시 한번 눈물이 났다. 세상 그 어떤 일일 닥쳐도 무조건 내 편인 부모님이 있어서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난 참 복받은 사람이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퇴사를 회사에 통보하기 전에 그래도 마지막 발악은 해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하고 싶은 것들을 쭉 적어보았다. 일단 회사와 병행하면서 하되 1월이 되면 사직서를 내밀어볼 생각이다. 부디 지금의 마음이 변치 않기를. 지금의 용기가 날 도전으로 이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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