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The Wild, 2015)
따지고 보면 머릿속은 항상 어떤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리를 걸을 때도, 운전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머릿속에서는 이런 저런 잡다한 기억들과 의미가 있거나 혹은 없는 갖은 상념들이 쉴 새 없이 떠오르고 또 사라졌다. 그나마 “머리가 좀 복잡해.”라고 말할 수 있을 때는 그나마 머리가 그렇게까지는 복잡하지 않은 때였다. 왜냐하면 정말 머리가 복잡할 때는 한마디 말도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으니까.
영화를 봤다. 제목은 <와일드>. 포스터를 보자 영화가 보고 싶었다. 남들이 몬스터(?)라 부르는, 자기 몸보다도 더 큰 배낭을 짊어지고 길 위에서 길 너머를 바라보며 걷는 작은 체구의 여자. 그녀의 등에 짊어진 짐이 남의 짐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였을까?
우린 힘겨울 때마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떠올린다. 알 파치노가 <칼리토>에서 바하마 해변을 떠올렸듯. 그날도 문득 그랬던 거 같다. 속초라도 다녀올까? 아니면 부산? 아니 이왕에 가는 거 제주 올레길이라도 좀 걷고 올까? 그렇게 다녀오면 뭔가 좀 나아질까? 아니 달라질까? 생각은 꼬리를 물었지만 정작 꼬리의 끝은 허무했다. 잠시 도망치듯 떠나는 거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일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 본 <와일드>에서의 셰릴과는 근본적으로 처지가 달랐다.
인간은 때로 육체적 고통을 통해 정신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거 같다. 셰릴이 택한 일종의 ‘苦行’도 그런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모른다. 그건 일종의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다. 그동안의 안일함과 나태함, 나의 인생을 마치 남의 인생처럼 허비한 것에 대한 벌. 그 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어쩌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그건 일종의 희망일까?
영화는 셰릴 스트레이드라는 여자가 홀로 떠난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4,286km에 달하는 PCT(The Pacific Crest Trail) 여정을 따라간다. 셰릴은 이 거리를 94일 만에 주파한다. 실제 배경은 1995년이다. 주제가는 ‘El condo pasa’. 영화 내내 곡 초반부만 감질나게 흘러나오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본 곡이 온전히 나온다. 나름 짜릿했다.
감독인 장 마크 발레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었다.
촬영감독 이브 벨랑제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로렌스 애니웨이>를 찍었다.
각본은 <어바웃 어 보이>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닉 혼비.
주연을 맡은 리즈 위더스푼은 헐리웃의 잘 나가는 톱 여배우다. 하지만 그녀는 그동안 자신에게 주로 들어오는 머리는 텅텅 빈 금발 미녀 역할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직접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다.
그리고 알다시피 원작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책의 볼륨에도 불구하고 꽤나 잘 읽힌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