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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Sep 18. 2017

완벽한 하루, 세계관을 흔드는 역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어 퍼펙트 데이>, 2017

* 스포일러 : 강함



완벽한 하루. 제목만 보면 어느 근사한 도시 속 평범한 남녀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멜로가 아니다. <어 퍼펙트 데이>는 보스니아 분쟁을 겪은 발칸 반도의 어느 황량한 지역을 배경으로,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독한 하루를 그렸다.


국경 없는 원조회의 베테랑 안전요원 맘브루(베니치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는 통역사 다미르(페자 스투칸Fedja Stukan)와 함께 마을 우물에 빠진 시체를 건져 올리는 임무를 맡는다. 밧줄로 차와 시체를 연결해 끌어올려보지만 도중에 밧줄이 끊어져 실패한다. 이때 맘브루의 동료 B(팀 로빈스Tim Robbins)가 신참 요원 소피(멜라니 티에리Melanie Thierry)를 데리고 현장에 합류한다. 맘브루는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소피와 함께 UN군 주둔지로 향한다.


가는 길에 뜻밖의 상황이 벌어진다. 또래 아이들에게 공을 빼앗기고 실랑이를 벌이는 소년 니콜라(엘다 로지도빅Eldar Residovic)에게 맘브루는 새공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우여곡절 끝에 UN군 주둔지에 도착하지만 맘브루와 소피의 지원 요청은 UN의 실용적이지 못한 규정에 의해 묵살되고, 니콜라에게 약속한 공도 구하지 못한다. 설상가상, 시체를 건지지 말라는 UN의 지시를 잘 따르는지 감시하기 위해 현장 분석가 카티야(올가 쿠릴렌코Olga Kurylenko)까지 따라붙는다.


출처 : 영화 <어 퍼펙트 데이>


게다가 말이 통하지 않는 주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도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사실 사람 사는 마을에서 적당한 길이의 밧줄을 구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주민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힘을 모으면 우물 속 시체를 건져 올리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을의 상점 주인마저도 교수형에 써야 한다는 이유로 밧줄 팔기를 거부하면서 이들의 임무는 점점 난관에 빠진다. 팀원들은 한 마을의 식수공급원이 부패한 시체로 오염될 위기에 처했음에도 그저 불난 집 구경하듯 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실망한다.


한편 소년 니콜라는 전쟁으로 폐허가 돼버린 자기 집에 쓸만한 밧줄이 있다며 길을 안내한다. 팀원들은 물론 쓰다 남은 여분의 밧줄을 기대했으나 니콜라가 생각한 것은 마당에 묶여있는 사나운 개의 목줄. 팀원 중 누구도 이 사나운 개에게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결국 이번에도 헛걸음을 한 셈이지만, 집안을 수색하던 맘브루와 소피가 우연히 목을 매 죽은 시체를 발견하게 되면서 사건의 실마리가 잡힌다. 목을 맨 밧줄을 풀어서 챙긴 뒤 마을로 돌아온 팀원들은 임무 완수를 위해 힘을 합친다. 하지만 우물 속 시체를 건져 올리기 직전에 나타난 UN군 간부는 팀이 하루 종일 고군분투해 얻어낸 밧줄을 고민도 하지 않고 잘라버린다. 시체는 다시 우물 깊숙이 빠지고, 팀원들은 좌절한다.


영화 <어 퍼펙트 데이>는 이처럼 고군분투하지만 어느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최악의 하루를 담았다. 이는 우리의 직관적인 윤리 감정에 어긋난다. 사람들은 시간과 노력을 지불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질 거라고 믿으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그런 보편적인 희망이나 정의감이 충족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주관적 윤리 기준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의 엔딩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우물이 넘치고 시체가 떠오른다. 유능한 팀원들이 하루 동안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임무는 결국 그들의 노력과 전혀 관계없는 방식으로 말끔히 해결된다. 불합리해 보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세계가 하나의 안정된 전체로서 완결되는 방식이다. 모든 것이 익숙하게 흘러가지 않는 현실이, 역설적으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계의 견고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의 희망이나 정의감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의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표지가 될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 '완벽한 하루'라는 제목은 이처럼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윤리 감정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완결되는 매일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 영화가 전쟁의 참상을 다루는 태도에도 닿아있다. 1990년대 보스니아 분쟁의 광기가 휩쓸고 지나간 폐허를 무대로 삼으면서도 영화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을 뚜렷이 목격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은, 이 영화가 전쟁을 가볍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본질적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전쟁은 평화의 극단적 대척점에 서있는 행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평화를 명분 삼아 일어난다. 평화를 향한 모든 사람의 염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전쟁 행위가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 세계가 얼마나 사람들의 주관적 희망이나 정의감과 관계없이 흘러가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매우 단단하고 견고하며 '완벽한' 세계의 법칙에 의해 일어난다. 영화에서 시종일관 터져 나오는 재치와 유머는 이렇듯 역설적인 표현 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 듯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골칫거리로 등장하는 우물 속 시체에 관한 사연이 조금도 설명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독했던 내전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마을에서 사람이 죽고, 어떤 이유로 우물에 버려졌음에도 그저 꺼내져야 할 오염물로만 파악될 뿐 인간적인 내러티브가 전혀 없다.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면 면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밝혀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 정의라 믿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곤혹스러운 설정이다. 이렇듯 풀리지 않은 아이러니를 그대로 두고 영화 속 '완벽한 하루'는 막을 내린다. 결국 어떤 하루의 완벽함을 논하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게 된다.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하루를 담은 영화 <어 퍼펙트 데이>는 제목과 형식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어떤 견고한 세계관을 매우 역설적인 문법으로 그려낸 매력적인 영화이다. 낯설고 불쾌하지만 쉽게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으며, 그렇기에 세계관을 흔드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출처 : 영화 <어 퍼펙트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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