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쓰쿠시마 신사와 토리이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물때에 맞춰 다시 토리이를 보기 위해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산했던 거리를 지나 관광객이 많은 곳으로 향하니 다시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나는 역시 사람이 많은 곳에 약한 것 같다.
바닷물이 들어오자 뗏목대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돛단배를 타고 토리이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더 거대하게 느껴지겠지?
남편과 함께 왔다면 용기를 내어 타볼 수도 있었겠지만, 혼자서 저 넓은 바다 위를 안전벨트도 없이 돛단배를 타고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물이 가득 차자 거대한 토리이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확연해졌다. 이 토리이가 특별한 이유는 기둥을 땅속에 박지 않고, 단순히 땅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는 태풍이나 해일이 왔을 때 쉽게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라고 한다.
토리이를 본 후 바로 옆에 있는 신사를 구경하려고 이동했다. 교통패스 규매 시 신사 무료 입장권이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었지만, 입장권 교환소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고서야 티켓 교환 장소를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패스를 구매할 때 분명 설명을 읽었던 것 같은데,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는 습관 탓인가 보다. 결국, 굽이굽이 돌아 다시 원래 길로 가야 했다. 신사 입장권은 상점가 한가운데 위치한 ‘TOTO’에서 교환할 수 있었다.
티켓을 받아 다시 신사로 돌아가는 길은 꽤 힘들었다. 신사에서 다행히 입장권으로 다시 교환이 가능했다. 왕복 20분 정도 걸렸는데, 사람이 많아 가까운 길도 멀게 느껴졌다.
늦은 점심 후 구매한 사케와 책 한 권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남편과 여행할 때는 항상 남편이 짐을 들어줘서 몰랐는데, 짐의 무게를 새삼 실감했다.
신사 안에서는 제사가 진행 중이었다. 만화 ‘세일러문’에서나 보던 신사 복장을 실제로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도 이렇게 홍보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유적지에서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다니는 이벤트가 있다면, 나라도 흥미를 느껴 경복궁 같은 곳을 더 자주 방문하지 않을까 싶었다.
골든위크라 그런지 신사에는 일본 현지인들도 많이 찾아온 듯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 외국인이 더 많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외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대부분 일본인뿐이었다. 신사 앞의 포토 스팟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사를 구경하던 중 독특한 다리를 발견했다. 경사가 거의 90도에 가까워 마치 롤러코스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 다리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다리란 말인가?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경사가 더욱 가팔라 보였다. ‘기어서 다녀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문을 번역해 보니, 과거에는 칙사들이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정말일까? 복원을 잘못한 건 아닐까?
GPT로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왔다. 역시나, 일반인이 다닐 수 없는 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쓰쿠시마 신사의 반교(板橋, 칙사교)는 일반인이 이용하는 다리가 아니라, 황실 사자(칙사, 勅使)가 신사에 공식적으로 방문할 때만 사용하던 다리이다. 이 다리는 매우 가파르고 보행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 칙사들이 직접 오르내린 것이 아니라 ‘가교(仮橋, 임시 계단)’를 설치하여 이용했다. 방문할 때마다 나무 계단을 놓아 올라갈 수 있도록 했으며, 행사가 끝나면 철거하는 방식이었다. 현재는 다리의 상징적인 의미만 남아 있고,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건너지는 않는다.
어제오늘 종아리와 발이 터질 듯 걷다 보니 기진맥진해졌다. 일본 여행을 하면 늘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 같다. 특별히 뭘 하는 것 같지는 않아도 하루에 기본 1만 5천 보, 많게는 3만 보까지 걷게 된다.
페리를 달아 돌아가는 길, 반짝이는 윤슬 위로 강아지와 함께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힐링되는 느낌이 들었다. ‘왜 나는 여행할 때마다 이렇게 지쳐 있을까? 저렇게 여유롭게 바다를 보며 쉴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해질녘이 가까워지자 섬을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돌아가는 페리는 올 때 탔던 것보다 훨씬 컸다. 아마 이 시간이 피크 타임인 듯했다. 페리 시간이 정해져 있어 막차를 놓치면 꼼짝없이 이 섬에서 노숙해야 할지도 모른다.
5월 초인 일본의 골든위크 동안의 미야지마섬은 마치 초여름 같았다. 햇빛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언젠가 남편과 꼭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슴과 굴, 거대한 토리이, 그리고 저렴하면서도 맛있던 사케.
미야지마섬에서 들렀던 세 개의 카페는 여름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았다. 비록 봄이었지만, 날씨만큼은 이미 여름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