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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ought Lab

나는 왜 결제 버튼 앞에서 항상 멈추는가?

ASKHADA 4주차 Day 2

by 룰루박
� No Stupid Questions는 Freakonomics Radio Network의 인기 팟캐스트로,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질문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 시리즈는 영어 스터디 ASKHADA의 일환으로, 매주 한 편의 에피소드를 함께 듣고 생각을 나누는 기록입니다.


오늘은 No Stupid Questions 201화에서 언급된, 디지털 시대의 Dream Scrolling 현상을 다뤄봤습니다.

미국인 평균 Dreamscrolling 시간: 연간 873시간 = 36일 장바구니

총액 평균: 86,000달러

한국 온라인 쇼핑 장바구니 이탈률: 74% 이상

왜 우리는 “찜”만 하고, 실행은 못한 채 무력감을 느낄까요?

그리고 영어 표현 dream scrolling, tabs open, saved in carts 가 문화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지, 실제 생활 맥락은 어떤지 정리해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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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밤 10시의 무의식적 루틴

밤 10시, 불 끄고 누워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손은 자동으로 휴대폰을 찾고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르륵 넘기게 되는데요. 이 순간, 알고리즘은 마치 제 마음을 엿본 듯 오늘 낮에 잠깐 클릭했던 러닝화 광고를 띄웁니다.


"이거, 딱 내 스타일인데?"


광고를 누르자 쇼핑몰 페이지가 열리고, 거기서부터는 끝없는 탭 여행이 시작됩니다. 이 운동화만 있으면 아침에 달리는데 더 쾌적할 거란 확신이 생기면 바로 네이버 쇼핑윈도우에서 같은 제품을 비교해보고, 무신사에서 다른 색상을 장바구니에 담기도 하죠.


새로운 운동화, 여행용 캐리어, 북유럽 감성 가구. 당장은 살 수 없지만, 장바구니에 하나둘 담다 보면 이미 내 삶이 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런 행위를, 심리학자들은 "Dream Scrolling"이라고 부르는데요.



2. 873시간 (=36일간)의 헛된 꿈

팟캐스트의 호스트 Mike 가 공개한 수치에 정말 놀랬는데요.


In a year, on average, people are spending 873 hours, or nearly 36 days, scrolling on their phone or computer on 'dream scrolling' things. No stupid questions #201


873시간이요. 1년 중 36일을 우리는 "사지도 않을 물건"을 구경하며 보낸다는 뜻이에요. 만약 이 시간을 독서에 쓴다면? 성인 평균 독서 속도를 고려하면 약 20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더 놀라운 건 이거예요.


The cumulative total of dream scrolling purchases saved in carts was estimated at 86,000 dollars. No stupid questions #201


평균 8만 6천 달러. 한화로 약 1억 원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산다는 얘기죠. 실제로는 지불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론 이미 '소유한 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 겁니다.




3. Wait, is this like doom scrolling?

Angela 가 dream scrolling 과 doom scrolling 이 같은 거냐고 묻는데요. 결론만 말하자면 비슷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어요.


Doom scrolling: 부정적이고 우울한 뉴스나 콘텐츠를 끝없이 스크롤하며 부정적 뉴스에 빠져드는 현상 → 불안과 피로

Dream scrolling: 소비적 환상에 빠져드는 현상 → 달콤한 기대감, 그러나 결국 무력감


둘 다 스크롤의 늪이지만, Dream scrolling은 더 교묘합니다. 기분 좋게 만들어주거든요. 그래서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해요. Mike 가 작년 (2024년) Empower 조사 결과를 소개합니다.

“In a year, on average, people are spending 873 hours, or nearly 36 days, scrolling on their phone or computer on ‘dream scrolling’ things.”


873시간.


만약 이 시간을 독서에 썼다면?이라고 생각하니 좀 많이 놀라웠어요. SwiftRead 메타분석에 따르면 성인 평균 독서 속도는 분당 238–260 단어(WPM) 인데요. 책 한 권이 약 6~7만 단어라고 가정하면, 873시간은 약 20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인거에요! 결론은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인생의 큰 기회비용을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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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바구니 속 만6천 달러의 무게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해보니 더 놀랐는데요.


"The cumulative total of dream scrolling purchases saved in carts was estimated at 86,000 dollars."


평균 8만 6천 달러. 한화로 약 1억 원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산다는 얘기입니다. 흥미로운 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이 습관이 자기계발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Richard Thaler가 말한 심리적 회계 개념을 적용해보면, 실제 돈은 아니지만 마음속 장부에 빚처럼 기록된데요. 즉, 내 통장은 그대로인데 심리적 자산과 심리적 부채만 불어나는 셈이죠.


즉, 결제하지 않은 장바구니 합산 비용 = 심리적 부채.


놀랍지 않습니까? 무심코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하고 결제도 하지 않았는데 심리적인 부채로 쌓이고 있었다니요. 한편으론 논리적 비약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요.




5. 뇌가 당하는 완벽한 사기의 메커니즘

왜 우리는 이 덫에 빠질까요? 심리학적으로 보면 완벽한 사기극이라고 해요



① 즉각적 쾌락 (Immediate Pleasure)

장바구니에 담는 순간, 뇌는 이미 그걸 '내 것'으로 인식해요. 실제로 산 건 아닌데도 소유감을 느끼는 거죠. 이는 endowment effect (소유효과)와 연결됩니다.



② 실행 지연 (Action Delay)

결제 단계로 넘어가지 않으니 상상은 반복되고, 행동은 지연됩니다.Duckworth의 지적이 핵심입니다.

“There seems to be a confusion between harmless fantasy and aspiration.”

즉, 단순 상상을 목표 달성으로 착각하는 순간, 무력감이 커지는거죠.



③ 달콤한 자기기만

"나는 이미 계획하고 있어", "준비 중이야"라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현실 회피에 가까워요.




6. 과학이 증명한 장바구니의 양면성

흥미로운 건, 장바구니 효과(add-to-cart effect) 연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확인된다는 거예요. Frontiers in Psychology(2024)의 연구에 따르면:


장바구니 단계에서는 제품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강화됨.

그러나 결제 단계에서는 금전적 희생(perceived monetary sacrifice)이 부각돼 태도가 부정적으로 바뀜.

즉, "담기"는 기분을 좋게 하지만, "결제"는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거예요. Dream Scrolling이 무력감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과학적으로 증명된다고 쓰려다가 문득, '결제 안 해서 돈 아낀거 아냐?' 라고 불퉁한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논문을 천천히 읽어봤는데요.



결론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게 아니라, 장바구니에 담을 땐, 즐거운 상상을 하다가 결제를 안하면 변하지 않은 현실을 자각하고, 결국 이렇게 상상과 현실의 괴리가 쌓이면 무력감으로 진전된다는 이야기였어요.

요약하자면 상상 속 나와 현실 속 나의 차이가 반복적으로 확인될 때, 사람들은 힘이 빠진다는 거죠.



Oettingen의 연구(Pleasure Now, Pain Later, 2016)는 이 문제를 더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잠시 언급하자면 아래와 같아요.


현재 측정(지금 당장) : 긍정적 환상은 우울 증상 감소 ↔ 기분 상승.

장기 추적 조사( 몇 개월/년 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우울 증상이 증가


즉, Dream Scrolling도 마찬가지예요. 단기적으론 "마치 가진 듯한 기분"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행동 부족 → 성취 저하 → 무력감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연구에요.



7. 한국의 "장바구니 부자" 현상

미국의 수치도 놀랍지만, 이 현상이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겠다 싶었는데요. 우리나라 쇼핑 앱들의 UX가 너무 잘 만들어져서 '찜하기'가 너무 쉽거든요. 그래서 한국 모바일 커머스 장바구니 이탈률 조사를 찾아봤습니다.


한국 이커머스 장바구니 이탈률: 74.3% (2024년)

모바일 쇼핑 비중: 전체 온라인 거래의 75% 이상

주요 카테고리: 패션(49%), 가전·테크(30%), 가구·인테리어(29%)


이 정도면 한국 사람들 장바구니만큼은 모두 부자인 듯한 수치라 생각했는데요.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아래 앱 중에서 장바구니에 아이템 하나도 없는 분?


쿠팡의 '나중에 살게요' 리스트 : 할인 알림을 받기 위해 담아두는 수백 개의 상품들. "로켓배송 무료니까" 하며 쌓아두지만, 정작 주문하는 건 몇 개 안 되죠.

무신사·지그재그의 '찜' 목록 : "언젠가 입을 거야"라며 저장해둔 옷이 200벌. 현실 옷장은 어떻습니까? 늘 "입을 옷이 없다"아닌가요?

오늘의집 장바구니 : 현실은 원룸 전세일지라도, 앱을 유영하며 어느순간 이미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수백만 원짜리 소파와 조명들이 '관심상품'에 하나라도 있는 분?





8. 언어가 드러내는 디지털 중독의 실체

이번엔 Dream Scrolling과 관련된 영어 표현들을 자세히 찾아봤어요. 언어에는 분명히 이 현상의 본질이 숨어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에요.


① Dream scrolling

미래 소비를 상상하며 온라인에서 무의미하게 스크롤하는 행위라는 뜻인데요. 한국어로 바로 직역하면 좀 어색해요. "꿈"이라는 말이 너무 긍정적이어서 중독성을 가리기 때문이죠.


한국어로 '꿈'의 뉘앙스는 "꿈을 이루다", "꿈을 키우다" 등으로 매우 바람직하거나 긍정적이고 매우 희망적인 뉘앙스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영어 "dream"는 이중적 뉘앙스가 있어요. 한국어처럼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follow your dream" 도 있지만요. "daydreaming"이라던가 "pipe dream(허왕된 꿈)" 같이 "비현실적인", "헛된"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하게 사용될 때도 있어. 쓰다보니 한국에서도 "꿈깨" 이런식으로 사용되긴 하네요?


다시 dream scrolling 으로 돌아가서 이 단어를 직역하면 너무 부자연 스럽게 되죠. "꿈의 스크롤링", "헛된 스크롤링?" 결국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 자체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단어에요.



② Tabs open

뜻은 열려 있는 탭이죠. 맥락적으로는 "닫지 못한 욕망" 을 뜻하는데요. 이 표현이 흥미로운 건, 컴퓨터 탭을 인간 심리 상태로 은유한다는 점이에요. 한국어로 이 뉘앙스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영어둔 창"은 너무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느낌이 들고요. "미뤄둔 욕망"은 조금 무거운 느낌도 들고요. 이 뉘앙스를 고대로 반영한 한국어 생각나시는 분은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③ Saved in carts

직역하자면 장바구니에 저장한다는 뜻인데요. 뉘앙스를 세심하게 구분해보자면, 실제 구매보다 소유 착각에 가까워요. 장바구니에 '저장'한다는 표현도 미묘해요. 영어 'save'는 '구원하다'는 뜻도 있잖아요. 생각해보니 그 물건들을 구해주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수 도 있나. 어찌보면 현대인들의 씁쓸한 자화상을 표현할 수도 있을까? 했던 표현입니다.



9. 행동경제학이 본 Dream Scrolling

Dream Scrolling은 단순 습관을 넘어 행동경제학적 문제예요. 제가 단순 비교를 해봤는데,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스스로도 위기감이 들었어요.


기회비용 (Opportunity Cost): 873시간 = 책 200권, 자격증 공부 시간, 가족과의 시간.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 "나는 절약하는 사람이야" vs "장바구니 총액 8만 달러."


이 정도면 Dream Scrolling은 잠깐의 위안이자 현실 회피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겠죠?




10. 찜은 현실이 아니에요

Dream Scrolling의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873시간의 기회비용, 심리적 장부에 쌓인 8만 달러, 무력감과 회피의 악순환이 문제잖아요.


저는 오늘부터 잊지 않기로 했습니다. "찜 혹은 장바구니 리스트는 현실이 아니다."


한 번에 고쳐지긴 힘들거에요. 하지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온거죠. 오늘 밤, 또 습관적으로 폰을 켜더라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 "아, 내가 지금 Dream scrolling하고 있구나."


하나 더, 저는 오늘부터 장바구니 다이어트를 할 예정이에요. 담긴 물건의 30% 정도를 지우는거죠. 10개 들어있다. 그럼 3개만 지워보는 거에요. 어렵지 않겠.....죠?





참고문헌

Brysbaert, M. (2019). How many words do we read per minute? A review and meta-analysis of reading rate. Journal of Memory and Language, 109, 104047. https://doi.org/10.1016/j.jml.2019.104047

Empower & OnePoll. (2024). Dreamscrolling study. Empower.

Niu, Z., Li, Z., & Liu, C. (2024). The Add-to-Cart Effect: How Mental Simulation in Online Shopping Cart Influences Consumer Attitudes. Frontiers in Psychology, 15, 1418082. https://doi.org/10.3389/fpsyg.2024.1418082

Oettingen, G., Mayer, D., & Portnow, S. (2016). Pleasure now, pain later: Positive fantasies about the future predict symptoms of depression. Psychological Science, 27(3), 345–353. https://doi.org/10.1177/0956797615620783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Foreign Agricultural Service. (2024). South Korea Food Ecommerce Market. GAIN Report KS2024-0033.

eCommerceDB. (2024). South Korea eCommerce benchmarks. https://ecommercedb.com/benchmarks/kr/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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