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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Mar 16. 2023

약자 혐오에 대한 단상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는 혐오와 폭력이 만연한 세상을 거닐고 있다. 혐오는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이다. 감정으로서 혐오는 어떠한 이유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약자 혐오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왜 약자를 혐오하는가? 약자 혐오는 본능이 아닌 ‘필요’에 따른 것이다. 약자 혐오를 본능적인 것으로 보는 시선은 약자 혐오와 추함에 대한 혐오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오인 및 혼동하기 때문이다. ‘약자는 추하다.’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린 것이다.


 그렇다면 왜 추함을 혐오하는가? 우선 무엇을 추하다고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 대개 불결한 것, 더러운 것 등 질병이나 독성을 가져 건강과 생명에 위협적인 것에 대해, 또는 질병과 독성 등으로 인해 건강과 생명의 위협 또는 위험에 놓인 상태 내지 상대에 대해, 인간은 ‘추함’을 느낀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야기하며 인간은 이를 추한 것으로 여겨 기피한다. 덧붙여 이러한 위협적 요소가 야기하는 두려움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추한 것은 동시에 악한 것으로 치부된다. 건강과 생명에 대한 위협은 추하고 악한 것이기에 혐오의 대상이 된다. 한편 추하고 악한 것은 진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 터부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약자는 추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약자는 터부시 되는 존재가 아닌 사회가 보호해 야 하는 당위의 존재이다. 약자 혐오는 추함에 대한 혐오와 같지 않으며 본능적인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약자 혐오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물질적 재화, 제한된 계층 간 이동, 국한된 사회적 교류는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며 불가피하다. 특정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는 보다 더 적게 받고 누려야 한다. ‘나’가 또는 나를 비롯한 ‘나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는 부차적이다. 내가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이러한 이해(利害)에 대한 이해(理解) 속에서 적게 받고 누릴 대상은 다분히 권력으로 나뉘어 정해진다. 이렇게 더 적은 권리와 이익을 누리게 된, 될 이들이 ‘약자’이다.


 그 누구도 ‘약자’를 자처하지 않는다. ‘약자’로 내몰리는 것이며 내쫓길 뿐이다. 약자로 내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권익을 보다 더 늘려야 하고, 이는 곧 나 아닌 타인의 이권을 줄이는 것이다. 뺏어야 한다. 그런데 나보다 강한 자의 것을 뺏기는 어렵다. 나보다 약한 자의 것을 뺏어야 한다. 내가 약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약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빼앗아야만 하는 것이다. 삶을 영락 속에서 영위하며 영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빼앗기 위해 ‘권리가 아닌’ 권력을 이용한다. 수탈의 수단으로써 권력은 약자에게 폭력적이다. 빼앗을 수 있는 권력을 쥔 이는 강자를 자처하고, 강자로서 위시된다. 강탈에도 나름에 정당성이 요구된다. 약자로부터 빼앗을 수 있는 권력은 강자의 ‘빼앗을 권리’가 되어야 한다. 강자는 약자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나누지 않고 빼앗기 위해 약자를 적대적 존재로 규정한다. 이권에 대한 위협을 건강과 생명에 직결하는 위협으로 상정하며 과장한다.


 적대적 존재를 배제하기 위해 권력은 폭력으로서 작동한다. 철저한 폭력은 처절한 생존마저도 불허한다. 강자는 약자에게 가한 폭력을 합리화한다. 폭력에 짓밟힌 약자는 폭력에 짓밟혔기 때문에 폭력을 받아 마땅하다. 빼앗긴 자는 빼앗겼기 때문에 빼앗겨도 되고 빼앗길 만하다. 이렇게 합리화된 오류를 통해 강자는 ‘빼앗을 권리’를 얻는다.


 ‘빼앗을 권리’를 가진 그 ‘강자’는 약자를 병탄하고 인탄(蹸呑)한다. 이 권리마저도 이해에 부합해 정당시한 거짓에 불과하다. 과연 누가 누구로부터 빼앗을 권리를 갖겠는가? 빼앗는 자야말로 추하고 악하며 거짓된 혐오의 대상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하 수상하니 여전히 누군가는 약자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약함을 탓하고 자위하며, 자기 아닌 다른 누군가를 약자로 삼아 혐오와 폭력을 일삼고 있는 오늘이다.


(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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