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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Mar 17. 2023

책 읽지 않는 오늘에 대한 변명

독서에 대한 단상


 스물 하나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무렵 책을 읽기 시작했다. 햇수로 열 번째 해이고 읽은 책도 천 권은 가뿐히 넘을 것이다. 들은 책도 더하면 더 될 테고. 지금도 독서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글쎄 한 권을 채 못 읽고 있다. 바빠서라기보다는 변화를 주기 위해서 기계적 독서를 그친 상태이다. 어려서부터 책을 꾸준히 읽어왔던 것은 아니다. 왜 책을 읽게 되었는지 돌이켜보면 ‘갈망’ 때문이었다. 지금도 별다르진 않지만 당시 나는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알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이 앎을 좇는 시도로 이어졌다. 그것이 독서였다. 나는 내가 아닌 타인, 사회, 세계를 앎으로써 나와 나를 둘러싼 모두,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관심 닿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내 독서는 귀납적 접근이었다. 한 권의 책.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사례. 많은 이야기와 사례를 섭렵해가면서 수많은 이야기와 사례에서 공통된, 보편타당하고 일반적인 것들과 그렇지 않으나 가치 있는 것들을 알아갔다. 많이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졌고 더 이해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책을 매일, 매순간 틈틈이 꾸준히 읽지는 못하였다. 의지와 인내, 노력이 필요했다. 당시에 이를 위해 내세웠던 것이 ‘한 해에 일백 권 읽기’였다. 하루 종일 독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독서량을 늘릴 수 있는 지식의 보고를 갖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책 한 권 읽는 것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기를 거듭하면서 책 읽기에 익숙해지고, 정보와 지식이 쌓이자 점차 이해하기 원활해졌다. 그렇게 수 년 동안 목표치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더 많은 권수의 책을 읽었고 어느 해에 드디어 일백 권을 읽게 되었다. 일백 권을 읽고 난 이후로는 더 많은 권수의 책을 읽는데 몰두하였다. 지나치리만큼 ‘권수 늘리기’에 치중하였다. 더 많은 권수의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이야기와 사례를 알 테고 수많은 이야기들과 이를 통한 귀납적 접근의 결실과 가치를 치켜세우며 좇았다. 그러나 귀납적 접근에는 한계가 분명하였다.


 스스로의 논리 및 사고 체계를 원하였다. 그렇기 위해서는 기존의 독서로부터 탈피해야 했지만 ‘권수 늘리기’라는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해 백 권’에서 ‘한 해 수백 권’으로까지 읽고 들은 책들은 많았지만 내세울 것이 못되었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취미가 독서이고 한 해 몇 백 권씩 읽는다.”식의 책을 그렇게나 많이 읽는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오히려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독서를 통해 얻을 결실과 가치를 좇는 게 아닌 허명을 쫓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인정해야 한다. 나는 허명을 쫓은 것이 맞다. 수년을 나만의 논리 및 사고 체계, 통찰력과 혜안, 비판적 사고력 등을 갖길 꿈꾸어왔지만 손에 잡는 책은 많을지언정 책의 내용은 평이해졌고 분량은 가벼워졌다. 소위 ‘벽돌책’은 거들떠도 보지 못하고 양서들은 책장에 전시될 뿐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 읽을 수는 없었다. 기계적 독서를 관두기로 하였다. 그렇고 나서 한 권의 책도 다 읽지 않는 오늘을 보내고 있다. 서른 겨울을 앞둔 무렵, 나는 독서에 대한 나의 방법과 자세를 바꾸려 한다.


 지난 나의 독서는 남독이라 하기도 부끄럽다. 책의 내용은 평이했고 수준은 가벼웠다. 그런 책들을 기계적으로 귀납적 접근이란 미명 하에 읽어 왔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지금 당장 명확한 것은 없다. 다만, ‘권수 늘리기’는 그만 둘 것이다. 한 달에 한 권을 읽지 못해도 좋다. 한 권도 읽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바라던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게 있어 독서는 공부이자 구도이다. 해갈되지 않은 갈망과 해결되지 않은 의문으로부터 나의 길과 답을 찾고 싶다. 책을 놓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무엇을 어떻게 읽어나갈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자.


(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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