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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Mar 17. 2023

순대국을 짜게 먹는 것에 대하여

음식과 기억에 관한 단상


 대체로 음식을 심심하게 먹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담백하게 먹는 것이고, 덜 좋게 말하면 싱겁게 먹는 것이다. 음식을 자극적이게 먹는 것을 좋아하질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양념과 소스를 더하지 않는다. 건강상에 이유보단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한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도 순대국만큼은 갖은 양념을 더해 먹곤 한다.


 보글보글 끓여진 뚝배기에 가득히 담긴 순대국이 식탁 앞에 놓이면 숟가락으로 한 술 떠 맛을 본다. 대체로 짭짤한 게 간이 맞다. 이대로 밥을 말아 먹기에 충분하다. 어지간하면 그대로 먹는 것이 이롭다. 그런데도 들깨가루를 더하고, 다지기를 더하고 끝으로 새우젓을 조금이라도 더한다. 벌건 국물에 숟가락 가득 퍼 삼키면 입 안에 맛들이 꽉 들어차 포화상태에 이른다. 그렇게 연신 퍼 들어 한 그릇 비우면 뒤늦게 갈증이 인다. 입안에 남은 짠 맛을 지우려 연거푸 물을 마신다. 대개 늘 이런 식이다. 


 왜 그렇게 먹느냐고 묻는다면, 방식이자 버릇이다. 돌이켜 보건데 분명히 말하긴 힘들다. 언제서부터 그렇게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떠올려지는 것은 구체적이지도 선명하지도 않은 파편적인 것들이다. 어느새 자리하여 굳혀진 습관이다. 어쩌면 별다른 기억도 이유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대국에 갖은 양념을 더해 먹으면 포만감과는 별개로 충만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게 그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 느끼기 위해 순대국을 먹을 때면 건강에는 개의치 않고 제 방식과 버릇을 고집한다.


 순대국 뿐만은 아니다. 졸업 날에 자장면, 어머니의 된장국, 친구들과 먹던 분식, 밤을 지새우기 위해 마신 싸구려 캔커피. 그렇게 음식은 기억을 따르면서 기억을 떠올린다. 어떤 음식은 그것을 먹음으로써 그에 관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어떤 기억은 음식에 기인한 것이며 음식을 먹는 행위가 그 기억을 견인시키는 것이다. 일종에 ‘예식’이다. 예식을 치름으로써 기억에 가닿는 행위인 것이다. 가닿은 그곳에서 뭔가를 되찾아 오는 것이다. 삶을 고양시키고 충만하게 해줄 개인적인 무언가를 말이다. 그 무언가를 ‘의미’라고 말하고 싶다.


 순대국보다는 더 분명한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는 음식이 있다. 바로 ‘컵라면과 삼각 김밥’이다. 고등학생 때 방학이나 주말, 시험기간에 자율학습하면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컵라면에 삼각 김밥을 먹곤 하였다. 컵라면과 삼각 김밥이 건강에 썩 좋지는 않지만, 먹기도 치우기도 간편했으며, 열량도 높아 배고픈 학생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대학에서도 과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 이를 먹곤 하였다. 뭔가에 집중해야 해서 시간과 노력을 아껴야 할 때, 컵라면과 삼각 김밥은 좋은 궁합이었고 이내 곧 일종에 전투식량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은 맛도 맛이지만, 먹으면서 헝그리 정신과 뭔가에 임하기 전에 의식을 깨우는 음식이었다. 여기에 카페인이 많이 함유된 ‘레*비’를 먹는 것까지가 나만의 ‘예식’이었다.


 그래서 이따금 헝그리 정신과 전투의식을 일깨워야 할 때면,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찾는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허겁지겁 후다닥 식사를 마친다. 졸지 않기 위해 고카페인 음료마저 마신다. 그렇다고 없던 의기가 바로 생기고 의식이 깨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고 나름에 열정을 다해 힘썼던, 힘써왔던 시절을 떠올리며, 불러온 그때 그 기억과 감정도 오늘의 내 삶과 앞으로 삶에 의미를 더하리라 여긴다. 결국 음식이란 예식을 통한 의미 찾기다.


 어제도 일을 마치고 저녁으로 순대국 한 그릇을 비웠다. 다지기는 들어가 있고, 들깨가루에, 새우젓도 더 해서. 반찬으로 나온 부추 겉절이도 한 가득 넣고. 한 술 뜨고 그냥 먹을까도 했지만 말이다. 역시나 예식이다. 더우거나 추우거나 속이 허할 때 주린 배에 따뜻한 국물에 만 밥 한 술 뜨면, 속을 덥혀 든든하거니와 땀도 송골송골 맺혀 개운하다. 일을 하기 전에 먹든, 그 후에 먹든 한 그릇 하고 나면 나아가 무엇을 하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밥심이기도 하다. 어쩌면 순대국을 조금 더 짜게 먹는 것은 덤일지 모르겠다.


(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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