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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May 01. 2023

23.05.01. <브로커>

어떤 가족 또는 돌봄 공동체에 관하여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에게는 이따금 환상이 필요하다. 사람은 환상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저마다 환상을 꿈꾸며 살아간다. 환상은 개연성이 부족할 수 있다. 환상이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면 그것은 현상이지 않겠는가? 또는 상상의 실현일 테지. 일단 이는 차치하고.     


삶에는 환상이 필요하다. 현실은 보다 잔인하기 그지없으니깐. 현실대로라면 그리했을지도 모른다. 우성은 밤사이 교회 앞 차가운 바닥에서 유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팔려간 우성은 이후 태어난 양부모의 친자식에게 밀려 홀대 받고 자랐을지 모른다. 소영은 살인죄로, 동수와 상현은 인신매매범으로 복역하고, 수진은 선호와 결별하고 냉소적인 경찰로서 계속 복무해왔을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영화 <브로커>는 환상을 보여준다. 한 아이가 앞으로 처할 삶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상상을 보여준다.     


수진은 선호의 전화통화에서 “맞어. 현실에서는 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현실이 아닌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이 나타난다. <브로커>는 아기를 버린 여자와, 그 아기를 팔려는 인신매매범과, 그들을 쫓는 형사가 또 다른 형태의 가족 또는 돌봄 공동체가 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둘씩 어딘가 깨지고 망가져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의 붕괴와 해체를 겪었고, 가족의 회복을 바라지만 바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소영은 가출 청소년으로 성매매로 인해 아이를 갖고 낳았으나, 아이를 뺏으려는 친부로부터 아이를 지키려다가 친부를 살해한다. 동수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아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한다. 상현은 아내와 이혼 했고, 아내는 새 남편의 아이를 가졌고, 친딸과 함께 해외로 떠난다. 수진은 연인인 선호가 있으나, 수진의 말투로 짐작해보면 선호와의 관계를 그다지 중요히 여기지 않는다. 소영에 대한 수진의 반감은 버려진 이의 감정인 것일까? 버린 이의 감정인 것일까? 


이들에게는 ‘우산’과 ‘우산을 함께 쓸 이’가 필요했다. 소영은 동수에게 말한다. “난 가끔 꿈 꿔. 비가 오고 그 비에 어제까지의 난 깨끗이 씻겨. 근데 이번 꿈은 비는 억수 같이 쏟아지고 있고 달라진 건 없어.” 이에 동수는 답한다. “우산 있으면 되지 않을까. 둘이 쓸 수 있는 거.”     


아이에게 부모는 전부이자 세계이다. 그런데 부모 둘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누구나 알다시피 무척 힘든 일이다. 부모 중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 할 테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에는 부모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 아이의 양육에는 한 공동체의 노력이 요구된다. 우성을 위한 소영, 동수, 상현, 해진의 노력, 수진과 선호의 돌봄, 양 선생 내외의 도움 등. 우성의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돌봄, 도움이 연이어진다.     


소영의 입을 통해 그들은 서로의 태어났음에 고마워한다. “해진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상현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동수, 태어나줘서 고마워. 우성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소영아, 소영이도 태어나줘서 고마워.” 해진이 모두를 대신해 화답한다. 가족의 부재나 해체로 혼자였던 이들은 우성의 돌보미가 되어 서로에게 가족이 되고 서로의 탄생을 축원해준다. 이들 상처 받은 사람들이 모여 또 다른 형태의 가족 또는 돌봄 공동체의 탄생을 축원하며, 이러한 형태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길 바라본다. 또한 이 환상이 단순히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노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길 바라본다.


영화 <브로커>는 인신 매매에 관한 일련의 해프닝만이 아닌, 상처 받고 망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위해 아이를 돌보는 과정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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