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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설 May 08. 2023

23.05.08. <천공의 성 라퓨타>

군림하기 위해 고립되는 것이 아닌 사람과 더불어 바람과 어울려 살아가기

<천공의 성 라퓨타>는 한 소녀가 군부의 야욕에 휘말려 이제는 잊힌 과거의 문명 '라퓨타'로 이르는 이야기이다.     


일찍이 바람을 이용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람의 힘을 이용해 풍차를 만들어 불길을 키우고 쇠를 야금하고 톱니바퀴와 도르래를 만들어 깊은 땅 속의 광물을 채굴해 낸다. 이로써 대규모 공장 단지를 이루고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켜 셀 수 없이 많은 비행기와 비행선단을 하늘로 띄운다. 이내 성과 섬을 띄우기에 이른다. 마침내 이들은 하늘을 부유하는 열도이자 그 자체로 대륙이 된다. 이들이 ‘라퓨타’였다.     

라퓨타는 초고도의 과학기술을 보유해 하늘을 부유하였다. 지상의 국가들에게 라퓨타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라퓨타는 첨단과학을 통한 무기와 병력을 이용해 무력과 공포로써 지상을 지배했다. 상상을 덧대 이야기를 더 그려보자면, 라퓨타는 끊임없이 하늘에 떠 있기 위해 보다 많은 비행석을 필요로 했을 테고, 비행석을 수급하기 위해 지상의 국가들로부터 수탈하였을 것이다. 지상의 국가들은 라퓨타에 저항했을 테지만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바람으로 이룩한 라퓨타는 바람에 붕괴하였다. 어느 날 다른 누구의 도전도 아닌 별안간 나타난 거대한 태풍에 문명이 송두리째 휩쓸렸다. 라퓨타의 많은 비행성과 비행섬들은 산산이 부수어져 무너져 내렸다. 일부 살아남은 라퓨타의 왕족들은 예기치 못한 재해와 절멸을 피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선택했다. 이들은 하늘이 아닌 땅에 뿌리내려 살아가기 위해 하늘을 거닐고 거느리던 법을 잊었다.     


땅으로 내려온 이들은 더 이상 하늘을 꿈꾸지 않고 땅에 천착해 살아갔다. 오직 왕가의 적통에게만 대를 거듭해 옛 왕실의 증표와 주문을 구전으로 전해주었다. 시타는 증표인 ‘비행석’ 목걸이와 주문을 물려받았지만, 이와 관련한 역사에 대해서는 일절 전해받지 못했다. 과거 라퓨타가 하늘 위에 군림하기 위해 저질렀던 수많은 폭력과, 하늘 위로 고립하였기에 겪어버린 비극은 기록의 단절과 기억의 망각으로 세간에도 후인들에게도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나 왕가의 방계인 무스카는 잊힌 라퓨타의 역사를 추적해 나갔다. “라퓨타는 멸망하지 않아. 몇 번이고 부활할 거야. 라퓨타의 힘은 인류의 꿈이니깐.” 무스카는 라퓨타의 부활을 누구보다도 바라고 꿈꾸었다. 무스카는 라퓨타를 찾아 왕위를 찬탈하고 라퓨타의 무력을 이용해 전쟁을 벌여 다시금 지상의 국가들을 복속하고 지배하는 것을 꿈꾸었다. 그는 과거의 빛바랜 영광을 자신의 손으로 재건해 내길 원했다. 그는 흩어진 기록과 기억을 모아, 라퓨타의 유일한 계승자인 시타를 찾아내 납치한다. 그리고 결국 시타를 길잡이 삼아 라퓨타에 이르는 데 성공한다. 재해로부터 유일하게 붕괴를 면한 성 하나가 우연히도 태풍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어 존속해 있었다. 시타에게 증표를 탈취해 라퓨타를 장악한 무스카는 기상천외한 위력을 가진 무기를 가동해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 한다.     


시타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라퓨타에 이르기 전까지 시타의 선택은 타의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시타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군부와 무스카에게 납치되었고, 그들의 위협을 피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무섭고 두려워 원치 않았지만 군부가 라퓨타를 먼저 발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파즈와 도라 일당과 함께 라퓨타로 향하였다. 시타는 잔허만이 남았음에도 여전히 무지막지한 라퓨타의 위력과 무자비한 무스카의 위험성을 목도하며 라퓨타의 실상과 멸망의 원인을 깨닫는다. 라퓨타는 홀로 하늘 위에 군림하려 하였기에 끊임없이 패권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고, 계속될 전쟁을 승리로 이끌 가공할만한 무력을 확충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항구한 전쟁의 원인이었다. 폭풍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도, 라퓨타의 멸망은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라퓨타 왕가의 적통에게 멸망의 주문이 주어지고, 비행석 목걸이에 멸망을 시동하는 힘이 담겨 있던 것은 언젠가 적대 세력의 공격으로 라퓨타를 빼앗길 것을 우려한 것이지 않았을까?     


전쟁으로 인한 무수한 피해와 참극을 막기 위해 결국 시타는 스스로의 희생을 선택한다. 시타가 파즈와 함께 멸망의 주문을 외우자, 라퓨타의 잔허는 일제히 무너진다. 무스카의 헛된 야욕 또한 함께 무너져 내린다. 어린 소녀와 소년의 희생으로 무수한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전쟁은 마수를 뻗기 전에 일찍이 끝을 맞는다. 시타와 파즈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살아남은 시타와 파즈는 함께 곤도와로 떠난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비행석’은 공중으로 떠오르는 힘을 갖고 있다. 이 돌의 부유하는 성질을 보고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것을 욕망했다. 라퓨타의 주민들은 돌을 연구한 끝에 기술을 체득해 돌을 결정화하여 힘을 집약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느덧 돌은 본연의 힘과 바람이 담겨 막강한 힘을 갖고 욕망을 실현시키는 힘을 지니게 됐다. 사람들의 욕망과 그로 인한 의도가 담긴 것이었기에 돌은 폼 할아버지의 말마따나 행운과 불행을 모두 불러왔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소유자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시타는 할머니로부터 좋은 주문과 나쁜 주문을 비롯한 많은 주문을 배웠다. 돌은 주문을 통해 소유자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부술 수도 있고 무너뜨리기도 했다. 비행석은 인간의 욕망이자 의지이며 힘이다. 그런 점에서 비행석은 곧 인간 자체라 할 수 있다. 부유하는 힘이 결집된 비행석은 곧 군중이다.     


현실에서도 많은 국가의 지도자들은 저마다 그들 국가의 가장 찬란했던 영광의 한 때를 그리워한다. 그 영광을 재현하고 그것을 영위하길 기꺼이 욕망한다. 그들은 그 빛바랜 영광의 꿈을 그 자신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꿈이라고 국민들에게 부풀리고 부추긴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보다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수습하지 못한 내부의 문제들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영광의 재현’이라 이름 붙여진 폭력과 희생의 수렁 속으로 국민들을 속여 등 떠민다. 국민들을 동원해 전쟁을 벌이거나 전쟁을 벌이길 꾀하거나,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군사력을 확충하고 증강하는 등 패권을 추구한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은 오스만 투르크 시기를 그리워하며,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메즈 예게른’을 잊은 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 및 지원했다. 러시아의 푸틴은 스탈린 시기의 소련을 그리워하며, 초러시아주의를 내세우고, 우크라이나인 집단학살, ‘홀로도모르’를 잊은 채 우크라이나에 침략전쟁을 벌였다. 일본의 기시다는 군국주의 일제가 자행했던 침탈과 학살에 대한 책임과 반성, 사죄 없이, 그저 일본제국주의 시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침탈과 학살의 역사를 조작 및 망각하고 보통국가화를 통해 다시금 전쟁 가능한 국가로서 발돋움하기 위한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에게 동조된 군중과, 군중의 힘은 결집되어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동력이 되고 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반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패권을 추구하는 그들의 욕망이 영광의 재현일지 멸망의 도래일지 모른다. 다만 항구한 전쟁의 시작일 것임은 분명하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시타의 입을 빌려 패권을 추구하고 패도를 걷는 이들에게 경고를 보낸다.     


“땅에 뿌리내려 바람과 함께 살아가자. 씨앗과 함께 겨울을 넘고 새들과 봄을 노래하자.”     


“아무리 강한 무기가 있고, 불쌍한 로봇을 무수히 지배해도 땅을 버리고 살 수는 없어요.”     


땅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땅에 뿌리내려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의 바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다. 라퓨타의 하늘을 나는 힘은 인류의 꿈일 것이다. 그 꿈과 힘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함께 하늘을 나는 꿈을 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함께 하늘을 나는 데 힘을 보태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함께 하는 것을 희망할 수 있지 않을까? 파즈는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 꿈이다. 그 꿈이 가능한 누구에게도 무해하길 바라며 그 꿈에 시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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