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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Aug 10. 2022

바다 위 회 이야기

 바다의 여신 될 뻔한 이야기






여행을 가기 전 완벽하게 빈틈없이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보고 싶은 곳과 동선, 타임라인 정도는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편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 더 기억이 남는 것 같다.

매해 여름휴가철이 되면 떠오르는 기억도 그런 여행이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한창 여름 성수기였던 8월 초, 나와 사촌, 동생은 셋이 앉아 더운 여름을 한탄하며 미리 여름휴가 계획을 짜두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 전 해에는 태국의 방콕과 코창이라는 섬에 함께 다녀왔던 터라 이번해에 게을렀던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엉겁결에 그냥 흘려보내게 될 휴가를 아쉬워하던 우리는 급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하고 렌터카도 예약을 했다. 그리고 8월 10일 아침 6시 비행기로 출발했다. 서쪽과 남쪽에 숙소만 예약하고, 가고 싶은 곳을 대략적으로 생각만 하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아침 7시 무렵, 일찍 제주 공항에 도착을 했는데 할 일이 없는 거다. 9년 전의 제주는 지금보다는 덜 발달이 되어 있었다. 해외여행이 활발했고, 동남아처럼 물가가 싸고 가까운 해외는 가격적으로 봤을 때 제주와 비슷한 수준이었어서 제주도보다는 해외를 간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하던 시절이었다. 제주 공항에 내려 예약해둔 렌터카를 인수받고 가까운 바다인 이호테우 해변으로 갔다. 이호테우 해변은 매우 고요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제주에 왔으니 감격적인 마음에 발을 담그며 놀았다. 동생이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깜짝 놀라 이야기를 했는데 웬 중국인 아주머니가 화장실에서 옷을 벗고 씻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장실 관리하는 사람에게 얘기를 하니 샤워실 가는 걸 아까워해서 화장실에서 씻으려는 중국인들이 꽤 있다고 한다. 한국까지 여행을 올 정도면 돈이 그렇게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샤워실 천원이 아까워서 화장실에서 씻다니 그 당시 문화적 충격이 너무 컸다. 물론 무려 9년 전의 이야기다.




고요한 바다와 그렇지 못한 화장실을 지나쳐 8시가 넘어서 식사를 하러 갔다. 우리의 제주 첫끼는 <올래 국수>. 제주 특유의 고기국수를 그때 처음 먹어봤다.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고 맛이 있었다. 고기국수에 비빔국수를 주문해서 이른 아침부터 맛나게 먹었다. 이후의 우리의 스케줄은 바다낚시였다. 고기를 잡으면 배 위에서 회를 떠주고 구이를 해준다고 했다. 고기 못 잡으면 못 먹는 거라며 겁을(?) 주고 국수를 든든히 먹으라 얘기했다. 사실은 고기를 못 잡아도 배에서 미리 준비한 생선으로 회도 구이도 모두 제공하는 것이었지만 시시한 농담을 칠만큼 배낚시에 흥분했었음을 고백해본다.




2013년이 올래국수. 지금은 이전을 했다.





바다낚시를 하기 위해 향한 곳은 차귀도였다. 그때 당시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방송을 했었는데, 그때 조미령 씨가 연기한 수자네 식당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예약한 때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서 식당 사진도 찍고 동네 풍경도 찍으면서 여유롭게 호명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낚시는 대학생    해봤었는데 그때는 인천항에서 새벽에 출발해 충남 당진까지 가는 일정이라 하루를 꼬박 쓰는 배낚시였고, 나는 재미있었지만 일행들은 멀미로 힘들어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이번 배낚시는 2-3시간 남짓되는 일정이라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작은 배에 타는 거라 조금 긴장은 되었다. 당시만 해도 배낚시 체험 같은 것이 쿠팡이나 티몬 같은 커머스 플랫폼들에서 엄청나게 광고를 하고 종류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보이지 않는  같아 찾아보니 그때보다 수량이 적긴 해도 있기는 했다.  








배에 발을 내딛던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작은 배였고, 믿고 타도 되나 같은 걱정을 잠시 했었다. 차귀도 배낚시 체험은 모두 다 준비가 되어있어서 초심자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목장갑을 끼고 선장님이 알려주는 대로 작은 새우를 낚시 바늘에 끼워 낚싯대를 바다에 던진다. 낚싯줄을 풀어서 무거운 추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마치 내가 바다 바닥에 닿은 것처럼 작게나마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이나, 고기가 내 미끼를 물었을 때의 묵직한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낚시꾼이 왜 중독자같이 되는지를 어쭙잖게 느끼며 동감하게 된다. 낚시는 사실 장담할 수가 없다. 주변에서 많이 잡힌다고 해도 나는 못 잡을 수가 있다. 하루에 몇 번씩, 몇 팀씩 낚시 체험을 해주시는 선장님은 배에 물고기를 미리 넣고 다니신다고 한다. 호기롭게 왔지만 허탕을 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미리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배 위에서 직접 떠주는 회'나 '배 위에서 바로 구워 먹는 생선구이' 같은 메뉴를 소화하기 위해서 당연한 일이다. 빈손이래도 회나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바다낚시를 체험하는 것이 그저 회나 생선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니, 역시 직접 잡은 고기만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날 우리는 굉장히 많은 생선을 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정말 많이 잡았는데, 처음에는 한두 마리씩 텀을 두고 잡히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낚싯대를 던지기만 하면 바로 잡혀서 나는 물론 선장님도 놀랄 정도였다. 투박한 바다 아저씨였지만 중간중간 설명과 농담을 잘 던져주던 선장님을 만나서 다행이었는데, 선장님이 그날 나에게 내려준 별명은 무려 '바다의 여신'이었다. 그리고는 제주로 오라며 이직(?)을 제의해 주셔서 우리는 한참 깔깔대며 웃었다. 물론 선장님 입장에서 보면 그리 특출 난 것이 아니고 띄어주기 식 농담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배에서 가장 많은 물고기를 잡은 나는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내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다.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미끼만 먹고 낚싯줄을 끊고 도망치지 일도 빈번해서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끌어올려주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렇게 잘 올린 물고기를 낚시 바늘에서 꺼내는 것도 일인데, 사촌과 동생이 모두 질색팔색을 했기에, 우리 일행의 모든 물고기를 빼내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평소 나는 징그러운 것을 싫어하고 비위도 그리 강하지 않은 편인데, 평소 요리를 좋아하고 식자재를 만져봐서 그런지 그것도 생선이라고 잡는 것에 큰 거부감이 들거나 겁이 나지 않아서 다행히 잘 빼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쉬운 것은 아니라 두꺼운 목장갑 사이로 느껴지는 물고기의 파닥 거림, 입 안에 걸린 낚시 바늘에 괴로워하는 것이 느껴져서 나 역시 조금 괴로웠다. 잡은 물고기들이 물고기가 크지는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우리가 잡은 생선들은 선장님이 회를 뜨고 구워주셨다. 새우에 돼지고기까지 준비한 것들을 함께 주시면서,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서 가지고 가겠냐 물었지만 더 이상의 활용에 자신이 없던 우리는 기꺼이 다음에 고기를 잡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기부했다. 세 시간이 채 되지 않았던 길지 않지만 인상적인 시간이 끝났다. 배는 차귀도의 선박장에 도착했고, 우리와 같이 출발한 다른 배들도 하나둘씩 돌아왔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배낚시를 한 후에는 숙소에 짐을 놓고 곽지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고 저녁에는 동네에 있는 유명하지 않지만 큰 고깃집에서 흑돼지를 먹었다. 다음 날은 우도에 갔다 갑자기 하고수동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마지막 날 아침에는 협재 해수욕장에서 놀았다. 오설록 티하우스에 놀러 갔다가 마침 사촌이 소개팅한 남자분이 다도 체험을 예약을 해줘서 하고, 한 여행작가가 쓴 극찬의 흑삼 겹집을 찾아서 산속 동네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우도에 갔다 와서는 섭지코지도 가고, 해녀의 집도 가고, 쇠소깍도 가는 등 정말 동서남북을 종횡무진 달려본 이례적인 여행이었다. 차를 타고 달리다 마음에 드는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근처 샤워실에서 씻고 다시 차를 타고 달리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서 놀고. 이렇게 마음껏 놀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잘 놀았던 시간이었다. 지금 보니 이 모든 일들을 2박 3일 동안 다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계획이 있었다면 오히려 못했을 일정들이다.







벌써 9년이 지난 일을 마치 이번 휴가에 간 것처럼 생생하게 쓰고 있자니, 내가 얼마나 이 여행을 좋아했는지 기억이 난다. 이토록 평화로우면서도 즐거웠던 휴가가 그립니다. 이 여행은 이후로도 내내 내가 로망처럼 가지고 있는 여행이다. 언젠가 다시 또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별다른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고 싶다. 그리고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멈춰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오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바다낚시도 해보고 싶다. 바다의 여신이 될 자격이 있는지 다시 확인해보며, 이번에야말로 이직 제의를 받는다면 조금 고려해 볼까 싶다. (그냥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서 해본 말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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