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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릭아낙 Jun 26. 2016

그리스에
이토록 예쁜 마을이 있다니!

'태양의 후예' 촬영지 아라호바

 붉은 지붕이 아름다운 아라호바

오늘따라 흐린 하늘이 고맙다. 안 그래도 붉게 올라온 피부색이 더 붉어질 뻔했다. 아라호바 건물의 지붕 색처럼. 날씨가 흐리거나 말거나 아라호바 마을은 이리저리 둘러봐도 아기자기 그 감성 자체이다.  


아라호바(그리스어로 Αραχωβα). 아라호바는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차를 몰고 북쪽으로 2-3시간을 달리면 닿을 수 있는 산골 마을이다. 시엄마의 고향 아노야 산골 마을처럼 작은 규모로 약 3,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아라호바 마을에 다 닿을 무렵이면,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진다. 붉은색 지붕이 '아라호바'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아래 맨 오른쪽 사진은 전통 건축양식을 보존하고자 재정된 법이 시행되기 전 지어진 건물▲


붉은색 지붕 말고 또 '아라호바' 마을임을 알려주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건물들이 모두 '돌(marble)'로 지어져 있는 것. 각지고 모가 난 돌들을 사용해서 집을 짓는 아라호바 전통건축양식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끈다. 하지만 간간히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도 보인다. 아라호바 건물의 통일성과 상징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정부는 아라호바의 전통건축양식을 보존하기 위해 아라호바에서는 '돌'만을 사용하에 건물을 지을 것을 요구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덕분에 오늘날 아라호바 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런 아라호바를 걷고 있자니 문득 필자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어려서 살았던 작은 마을, 두정(斗井)에는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사라졌지만) 벽돌이나 시멘트 벽돌로 지어진 주택들이 많았다. 내 키보다 큰 오돌오돌한 담장 표면을 손끝으로 긁으며 집 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골목 끝에는 우리 집이 있었다. 지금 같으면 몇 발자국이면 닿을 우리 집이 교과서로 꽉 찬 가방을 멘 어린아이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나 보다. 집에 가는 길, 지루한 마음을 잠시나마 잊으려고 그랬던 것 같다. 아라호바 골목을 걸으며 그때의 손끝의 찌릿함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그때로 돌아가 보고 싶다. 학교가 파하고 사랑하는 엄마, 여동생, 남동생, 외할머니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다 함께 저녁식사를 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 시간으로.


아라호바 거리 장식물, 스키장 케이블카 안에서 조지아에서 온 "Meg"와 함께.
거리에 장식된 케이블카와 아라호바 전경

아라호는 겨울에 인기가 더 많다. 많은 관광객들이 스키를 타러 이 곳으로 오기 때문이다. 이 작은 마을의 세 곳에 스키장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이를 홍보하듯 마을의 거리에 케이블카가 여럿 놓여있다.


멀리 아라호바 종탑 시계가 보인다. 얼마 전 종영된 '태양의 후예' 드라마를 본 시청자라면 "아! 저기가 거기구나"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는 아라호바 마을이 '태양의 후예' 12화에서 주인공들이 키스를 한 장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태양의 후예'를 아직 시청하지 않았다. 고이고이 아껴두는 중이다. 한국이 점점 그리워질 때 꺼내보려고.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라호바가 '태양의 후예' 촬영지였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갈 뻔했다. 몇몇 한국의 블로거 분들 덕분에 아라호바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블로그에 올라온 '태양의 후예' 캡처 장면과 비교하며 '여기서 이 장면을 찍었구나' 혼자 낄낄 거리며 신나 했다.


왼쪽 사진은 그리스 정교 교회 옆에서 본 아라호바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그리스 정교 교회에 닿기 위해 올라야 하는 200계단


200계단을 통해 오르지 않고 뒷골목을 따라 올라 걸으면 만나는 아라호바 그리스 정교. 교회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카메라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아라호바 그리스 정교 교회. 정면.


어느 마을에나 있는 그리스 정교 교회. 아라호바에서 교회를 가려면 무려 200계단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계단을 오르지 않고도, 가는 방법이 있다. 필자와 친구들은 200계단을 오르는 대신 아라호바의 뒷골목을 누렸다. 반대로 200계단으로 내려오며, 아라호바의 상쾌한 공기와 끊이지 않은 웃음으로 우리의 추억을 채운다.


왼쪽부터. 20살 이탈리아 소녀 클라우디아. 브라질 벨리댄서 & 강사 헬렌. 전직 스튜어디스 스웨덴 브리트.


계단을 내려오며 찍은 두 장의 사진.



이 작은 마을에 어쩜 이리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은지. 돌로 지어진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건물들이 미니어처 세상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카페 입구
즐거운 시간을 보낸 카페 내부

마을의 시내 거리를 걸으며 만난 한 카페. 우연히 들어선다. 우연의 선물 치고는 너무 멋진 전경. 이럴 때 빠질 수 없는 인승샷과 그리스 커피 '프레도 카푸치노(Freddo Cappuccino)'. 프레도 카푸치노는 중간 정도의 단 맛(그리스어로  μέτριο (메트리오))으로 마실 때가 제일 맛있으므로 그리스어로 멋지게 "Freddo Cappuccino, μέτριο, παρακαλώ(프레도 카푸치노 메트리오 빠라갈로)" 주문 완료.


기다리며 포즈를 한껏 취하는데 옆에서 이탈리아 소녀 클라우디아가 '프레도'는 이탈리아어라며, 귀여운 투정을 부린다. 벌써 한잔을 홀짝 비운다. 3.5유로에 너무 적은 양이라며 덫붙이며 말이다. 클라우디아는 그리스인 엄마와 이탈리아 로마 출신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엄마의 고향인 그리스보다 아빠의 나라 이탈리아의 피를 좀 더 물려받은 듯하다. 그리스의 피를 받았다면 '커피를 느긋하게 즐기는' 여유 DNA가 있어야 할 텐데 커피를 홀짝 마셔버리다니.


아르호바에서 유쾌한 이탈리아 소녀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와 내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피카츄, 세일러문 등'의 만화 이야기는 2-3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재미있는 우리의 수다 주제였다. 만화에 대한 애정을 한껏 공유하다 보니 다 마시지 않은 나의 프레도 카푸치노가 뜨거운 커피가 되어있다. 이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테네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라호바를 카메라에 담아본다.


 건물 틈 사이로 작게 핀 꽃마저도 아름다운 아라호바 마을. Αντiο!(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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