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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채권관리사입니다

어머니

by 남지만 작가

사람의 일에는 언제나 사정이 있다.
숫자와 서류로만 다뤄지는 일도,
그 안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숨어 있다.
어느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목소리는 한참을 견뎌온 사람의 소리였다.
나는 그날, ‘채권관리’라는 일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다루는 일임을 배웠다.
이 글은 그때 그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의 기록이다.
그리고, 아직도 봄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다.




한창 업무로 분주한 오후 두 시 무렵,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혹시 남지만 관리사님 맞으신가요?”

“네, 제가 남지만입니다.”

“우편물을 보고 연락드렸어요.
저는 김주석이라는 사람의 어머니입니다.”

나지막하고 힘없는 목소리였다.
나이가 지긋한 어머니의 말끝에는 오랜 세월의 피로가 묻어 있었다.

“아드님께 빚이 있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매달 우편물을 발송했는데, 이번에 처음 보신 건가요?”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전엔 하도 많이 와서 가슴이 울렁거려 차마 볼 수가 없었어요.
그냥 묶어 두거나 버렸지요.
그런데 이번엔 봉투 색깔이 달라서, 그만 눈에 띄었네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보통은 아드님이 직접 연락을 주셔야 하는데, 어머님께서 대신 전화를 주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그때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우리 아들이 집을 나간 지 열 해가 넘었어요.
그 뒤로는 아무 소식이 없네요.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순간, 내 손끝이 저절로 신용조회 버튼을 눌렀다.

“어머니!
100%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등록된 정보로 보아 살아계시고,
일도 하고 계신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 말이 끝나자, 울음소리가 곡(哭)으로 바뀌었다.

“아이고, 그래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소리,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었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연신 감사 인사를 반복하셨다.
KCB 신용 조회 시스템은 채무자가 사망하면 바로 등록되며, 일을 어느 정도 하게 되면 작년 소득이 잡히는 방식이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어머니에게 ‘신용정보’는 숫자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잠시 후, 어머니가 물으셨다.

“그럼, 이 빚 때문에 우리 주석이가 일하거나 사는 데 지장이 있나요?”

나는 가능한 한 부드럽게 설명했다.
신용불량자로 등록될 수 있고, 사용하던 카드가 정지되거나 급여가 압류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제가 대신 갚을 수 있나요?”

“혹시 아드님 신분증이나 서류 같은 게 있으신가요?”

“집 나간 지 열 해가 넘었는데, 그런 게 남아 있을 리가 있나요?”

“그렇다면 ‘대위변제’라는 절차로 어머님이 대신 갚을 수는 있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주저 없이 말씀하셨다.

“걱정 마세요. 제가 갚을게요.”

나는 다시 한번 여쭸다.

“어머니, 금액이 적지 않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어머니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씀하셨다.

“제가 기초생활수급자인데요,
그 돈으로 근근이 살아요.
그래도 모은 게 좀 있어요.
폐지를 주워 모은 돈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의 삶은 이미 아들의 빈자리로 너무 오래 휘청였던 것이다.
나는 대위변제 절차를 안내해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어머니께 다시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승인 났습니다.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드릴 테니 입금 후 연락 주세요.
확인되면 완제 증서를 집으로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저~ 입금했어요.
확인해 봐요.”

“네, 잠시만요,
확인되었습니다.
어머니, 고생 너무 많으셨어요.”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선생님 은혜, 잊지 않을게요.”

울먹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수화기 속에서 잔잔히 떨렸다.
나는 그저 조용히 답했다.

“아닙니다.
어머님이 아드님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절실히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혹시라도 우리 아들 소식이 들리면,
꼭 좀 전해 주세요.”

그 간절한 음성이 귀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날 이후, 업무 중에도, 퇴근길에도 문득 그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두 손을 모은다.
늦어도 꽃 피는 봄이 오기 전,
그 어머니에게 아들의 소식이 전해지기를..
그리고 그 울음이 이번에는 감사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로 바뀌기를..




작가의 말

아들이 왜 집을 나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머니 마음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그 어머니와 만남은 제게 ‘직업’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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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