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저작권 오피니언
본 글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저작권 문화' 6월 호의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는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시키는 일만 해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던 회사를 다니던 시절엔 ‘저작권’이라는 것은 나와 별 상관없는 일이었고, 내 창작물을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져다 쓸 수도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저작권에 대한 지식이 0에 가깝게 살다가 클라이언트로부터 처음 일러스트 작업 계약서를 받았을 때 저작권에 대한 항목이 적혀 있는 부분을 보고 멘붕이 왔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그제서야 부랴부랴 저작권이 뭔지 검색해보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저작권이란
저작권은 좋은 것이었다. 창작자인 내가 작품을 만들면 자동으로 그 작품에 대한 소유권, 복제권, 전시권, 배포권 등 여러 권리가 생기고 필요에 따라 그 권리를 창작자가 주체적으로 잘 이용해 작품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익 창출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림책 일러스트는 책을 출간하는 데에만 그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출판권 설정 계약이 권장되고 그 외에 굿즈, 전자책 등 다른 2차 저작물 작성에 대한 권한은 따로 상의 되어야 할 사항이다. 그래서 잘 그린 그림 한 점만으로도 창작자이자 소유자인 내가 개인과 업체에게 여러 권한들을 부여하고 허용하면서 수익을 내는 방법이 무궁무진한 듯 보였다.
일러스트 저작권 양도 현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저작권의 개념과 실제 업계에서 창작자의 저작권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많은 업체가 기본적으로 내 그림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도록 하는 저작권 양도 계약서를 내밀었고, 내가 창작자임에도 불구하고 클라이언트가 앞으로 그려질 그림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이미 다 갖고 있는 듯했다. 저작권이 양도가 되면 내 그림에 대한 모든 권리를 클라이언트가 다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모든 권리를 양도한 후 발생하는 이익을 나눠가질 권한이 없다. 수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케이스인 “구름빵” 사건 이후 업계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물에 대한 저작권을 보장해 주자는 움직임이 있는듯하지만, 저작권 양도가 오랫동안 동화책 출판 시장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져 온건 부정할 수 없고 사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창작자로서 내 그림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 싶어 조율할 수 있을 때까지 조율을 해보았지만, 저작권 양도 말고 다른 계약의 형태를 제안하면 일을 무산시키고 다른 작가를 찾겠다는 답변도 받아보았다. 이런 경험을 연속적으로 하다 보니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저작권을 쥐고 있을 파워가 있긴 한 걸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해외라고 다를까?
캐나다에 살고 있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나의 장점을 살려 해외 일러스트 에이전시와 계약도 하고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등 세계 곳곳의 클라이언트들과도 작업을 해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외라고 전부 일러스트 저작권의 개념이 다 잡혀있거나 철저하게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건 절대 아니다. 어느 나라나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다 있듯이 해외라도 업체마다 다 차이가 있다. 그림책 판매에 따른 로열티가 하나도 없는 용역계약(work for hire)의 형태로도 작업을 해달라는 계약서를 받은 적도 있었던 반면, 책 출판 이외의 모든 2차 저작물 작성 권리에 대한 모든 정보와 수익 배분이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출판사 간에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계약서에 투명하게 다 적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계약의 형태든 서명을 하고 나면 최선을 다해 작업을 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를 용역의 형태가 아닌 협력자로서 대우해 주는 계약서를 받으면 그 작업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더 열심히 작업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양하게 침해되는 일러스트 저작권
온라인으로 외주 문의를 받거나 그림 판매가 일어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다 보니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소셜미디어와 포트폴리오 웹사이트 같은 온라인 매체에 자신의 그림을 올려 홍보하는 일은 이젠 필수가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아티스트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그림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품의 저작권이 침해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원작자 표기도 없이 ‘불펌’되는 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일일이 신경 쓰기도 힘들 정도로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나도 모르는 새에 어느 국내외 업체들로부터 무단 도용되어 상품으로 제작돼 판매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고, 심지어 같은 창작자들로부터 표절을 당하기도 한다. 게다가 일반 대중에겐 검색만 하면 인터넷 창에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게 그림들이라 “그림을 구한다”라는 건 너무 쉽고 저렴하다는 인상까지 주는 듯하다. 이런 사례들은 국내 해외를 구분 짓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작품이 세상 밖으로 분출하 듯 나오고 있지만 거기에 따른 원작자의 권리가 보호받는 시스템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더 발달된 기술과 저작권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지만 두고 볼 일이다.
나의 그림은 나의 자산
일러스트레이터는 자기가 그린 모든 그림을 ‘자산’이라는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산은 소유하고 있는 동안에 나에게 꾸준히 이익을 가져다주거나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팔 때 내가 처음 소유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림이 갖는 자산의 의미는 물질적인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저작권을 창작자인 내가 아닌 타인이 가져갔을 시, 내 작업물이 다른 사람에 의해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가공되어 쓰이게 될지 우린 알 수 없다. 그렇게 발생한 이익을 나눠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장기적으로 내 일러스트 커리어에 흠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내 자산, 즉 내 그림의 저작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바라봤으면 한다.
그리고 그림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기계처럼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주관적인 시각이 반영되고 같은 주제로 그려도 사람마다 다 다른 그림이 나온다. 아무리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그린다고 하더라도 그리는 사람의 감정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작품을 그리기도 전에 창작자가 작업물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게 과연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좋은 일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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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문화'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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