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가수 Alter 인터뷰
안녕하세요, *얼터너티브 알앤비 음악을 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얼터라고 합니다
*얼터너티브 알앤비: 200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음악 장르. 일렉트로닉, 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가 결합된 몽환적이고 감성적인 멜로디라인과 울림 있는 무드가 특징임.
제가 하고 있는 음악 장르를 드러내기 위한 것도 있었고요. Alter(얼터)라는 단어가 ‘변하다’, ‘바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제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 짓게 되었어요. 그 누군가는 제 자신도 포함하고요.
초등학생 때부터 올드팝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부모님께서 CD를 모으는 취미가 있으셨는데, 그중에서 카펜터스(Carpenters)나 아바(ABBA) 같은 가수들의 노래가 담긴 CD가 많았거든요. 그러다 중학생 때 변성기가 심하게 찾아와 음악과 거리를 두고 지내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다시 음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학교에서 공부는 나쁘지 않게 하는 편이었지만 하고 싶은 게 없었거든요. 목표를 정해두고 나아가는 편인데, 목표 없는 삶을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고민 끝에 결국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건 결국 음악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예대에 진학해 컴퓨터 작곡을 배우게 됐어요.
맞아요. 제가 내향적인 성격이라 아무리 곡을 열심히 써도 함께 작업할 사람을 구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제 음악과 비슷한 결을 가진 보컬을 찾는 것도 일이었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직접 부르고 있어요. (웃음)
해외 아티스트는 조지(Joji)나 케시(Keshi), 다니엘 시저(Daniel Caesar)나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의 음악을 좋아해요. 국내 아티스트 중에서는 검정치마나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의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고요.
제 음악의 아이덴티티와 방향성을 잡아가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특히 검정치마 노래는 음악을 넘어 사랑의 정의까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 가수예요.
방음 문제 때문에 작업실을 따로 구해서 쓰고 있어요. 집에서 1시간 거리지만 가격대비 이곳이 가장 넓고 작업 환경이 좋더라고요. 스피커는 제네렉 8330, 기타는 웨이브투어스 김다니엘 님이 사용하시던 에피폰 SG를 쓰고 있어요. 음악 시퀀서는 로직을 사용하고, 이펙터와 마스터링 키보드로 다양한 악기 소리를 구현하고 있죠.
일, 작업, 일, 작업의 반복이에요. 최근엔 정규앨범 작업 마무리를 위해 일을 그만뒀어요. 아무래도 인디펜던트다 보니 앨범 발매를 위해 혼자 해야 할 게 정말 많더라고요.
가끔 답답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땐 밖으로 나가요. 광화문 일대를 걷거나,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읽거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보기도 해요. 밤엔 청계천을 따라 집까지 산책 겸 걸어오기도 하고요. 요즘 추워져서 예전처럼 산책을 자주 못할 것 같아 아쉽네요.
악상은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 갑자기 떠올라요. 씻다가, 길을 걷다가, 자기 전과 같이 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떠오르죠. 악상이 떠오르면 바로 휴대폰을 꺼내 멜로디라인을 녹음한 뒤 작업실에서 녹음한 곡을 들어보고 빌드업시켜요. 가사는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이나 책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이번 타이틀 곡인 ‘Are We’는 한강 작가님의 소설 ‘흰’에 나오는 백야 현상에 영감을 받아 가사를 적었어요.
보통 책을 읽는 이유는 영감을 얻기 위함 보다는 단순 호기심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잡다한 호기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문학뿐 아니라 비문학 책들도 많이 읽고 있어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복잡한 생각이 많이 정리되는 거 같아요.
앨범 제목인 Delusions은 ‘망상들’이라는 뜻이에요. 화자가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린 사랑을 마치 망상처럼 느끼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과정을 담은 앨범인데요. 타이틀 곡인 'Are We'를 포함해 총 8곡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음악을 들을 때 쉽게 휘발되는 싱글 앨범보다 스토리가 담긴 탄탄한 정규 앨범을 더 좋아해서 부족하더라도 정규앨범을 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곡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담았더니 1년이 걸렸네요.
개인적으로 8곡 전부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각자 취향이 전부 다르겠지만,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할 만한 곡 하나쯤은 분명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보람차기도 하고, 이제 다른 곡을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요. (웃음) 개인적으로 작곡은 처음 스케치하는 과정이 제일 재밌고, 후반작업과 믹싱 마스터링은 지루하거든요.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마다 썼던 글들이에요. 글 중엔 픽션도 있는데, '이상적 사랑은 이상에 불과하다', '만남엔 이별이 필연적이다'. 이런 생각들이 지배적인 때였던 것 같아요.
이전 앨범보다 제가 좋아하는 편곡 스타일을 더 많이 담았어요. 모든 곡들이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죠.
그리고 이번 앨범에 처음으로 한글 가사를 넣어봤어요. 항상 영어로 가사를 쓰다 보니 한글로 표현하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이번 앨범에는 한글 가사를 적용해서 제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더 깊이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한국어를 발음할 때와 영어를 발음할 때 어쩔 수 없는 구강구조상의 차이가 있어요. 영어가 아무래도 흘리면서 부르기 편하죠. 그래서 장르적 특성상 영어를 더 선호한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젠가 한국어 가사를 혼용해서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제 발성 스타일이 잡혔고 한글을 접목해도 어색하지 않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아 사용하게 되었어요.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관통하는 오브제를 고민하다 화살을 떠올렸어요. 'Running out' 가사 중 큐피드에게 사랑의 화살을 쏴달라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신화 속에선 큐피드 화살을 맞으면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에선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 있어요. 화살은 관점에 따라 사랑의 매개체 혹은 살인 무기가 될 수 있는 거죠. 이게 꼭 사랑과 이별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화살을 모티브로 곡을 만들었고 앨범 커버도 제작했어요.
제 곡이라 말하지 않고 지인들에게 작업 중인 곡을 들려준 적 있어요. 제 평소 목소리와 노래할 때 목소리 차이가 꽤 커서 대부분 제 곡인 줄 모르거든요. 그때 지인들이 ‘이 노래 괜찮은데 누구 곡이냐’고 물어볼 때 그제야 발매해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엔 제 곡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도 무서웠어요. 그래서 앨범을 발매해도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적도 있었는데요. 계속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때가 오더라고요. 지금은 불안감보다 기대가 더 커요.
남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연애를 한 것 같아요. 싸운 적도 별로 없고요. 굳이 표현하자면 뭐 하나 모나지 않은 평온한 연애를 해왔죠. 항상 연애를 하면서 얻는 의미가 컸어요. 개인으로서 절대 느낄 수 없는 안정감도 느끼고, 상대방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시선도 생기고요. 하지만 제가 상대에게 부족했던 것들은 이별하고 나서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연애라는 행위에 대해 점점 더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정이 많아요.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물건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관계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커지면 커졌지 줄어든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항상 이별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런 모습들이 가사에 투영된 게 아닐까 싶네요.
어떻게 보면 가장 흔하고 평범한 사랑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다만 결말까지 같이요. 앞서 말했듯, 모든 사랑에는 이별이 필연적이니까요. 모든 건 끝이 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이상적인 사랑만을 담아내긴 싫었어요. 이별을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이별 없이는 사랑을 논할 수 없다 생각하니까요.
사랑은 정의 내리기 가장 어려운 단어인 것 같아요. 사람만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에게만 사랑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본 사랑은 굳이 따지자면 '각자의 내면, 더 나아가 본인 모습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곡의 사운드가 깔끔하지 않아요. 기타나 마이크 노이즈를 조금씩 남겨뒀거든요. 순전히 좋지 못한 녹음환경 때문에 생긴 노이즈였는데, 이게 마치 가끔씩 잡음이 생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따로 제거하지 않고 남겨두었죠.
'썰물(Ebb)'이라는 트랙을 가장 좋아해요. 가사가 이번 앨범의 주제를 관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미련 넘치는 아우성을 'Soundtoys'의 'Little alter boy'라는 플러그인으로 보컬에 튠을 줘서 무겁지 않게 표현한 것도 좋았어요.
아무래도 돈 문제죠. 음악을 하려면 투잡은 기본이라는 게 힘든 것 같아요. 대부분의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음악으로 돈 벌기는 너무 어려워요. 좋아하는 마음으로 지속할 뿐이죠. 그러니 음악 오래 할 수 있게 많이 들어주시고 널리 홍보해 주세요. (웃음)
무언가를 창조할 때의 희열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커요. 멜로디를 떠올리고 연장하며, 그 위에 하나씩 스텝을 올려 편곡할 때의 보람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죠. 그래서 가끔 음악이 잘 나오면 작업실에 크게 틀어놓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곤 한답니다. (웃음)
아마 앨범 홍보를 위한 쇼츠 영상을 계속 만들지 않을까요. 영상 편집하느라 바쁘겠네요. 공연을 하고 싶지만 아직 잡혀 있는 공연은 따로 없어요. 열심히 홍보해서 제 곡을 한 분이라도 더 듣게 하는 게 저의 올해 마지막 목표예요.
인터뷰를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되어 여러 가지 비하인드를 말할 수 있어 좋았어요. 30분 정도만 투자하셔서 전 곡 한 번씩 들어주시고 마음에 드신다면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얼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