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잊지 못하는 삿포로의 어느 라멘집
축구 경기 취재 차 해외로 출장을 가면, 경기 당일은 전체 일정 중 그나마 여유가 생긴다. 저녁 경기라면 낮 동안 잠시 한숨 돌릴 짬이 생긴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몇 시간을 활용해 관광하거나 맛집 탐방을 한다.
그런데 삿포로에서는 이러한 짬도 나오지 않았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 탓인지 다들 경기가 열리는 삿포로돔으로 일찍 이동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이 한일전에서는 재일교포 이충성이 일본으로 귀화해 리 타다나리라는 이름을 달고 일본 국가대표로 나섰다. 경기 전부터 이충성에 대한 한일 양국의 시선이 꽂혔다. 경기 전에 이충성의 부친 이철태 씨를 만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더 일찍 삿포로돔에 가서 대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는 한국의 0-3 완패였다. ‘삿포로 참사’라 불리기도 했다. 경기도 멘붕이었고, 취재 환경도 멘붕이었다. 전날까지 잘 되던 경기장 와이파이는 삿포로돔이 관중으로 꽉 차자 먹통이 됐다. 당시 내가 쓰던 아이폰 3GS에 데이터 테더링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도해 봤는데, 연결되는 데 한참 걸렸다. 그때만 생각하면 어떤 정신으로 일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삿포로에 대한 기억이 크게 없다. 그래도 한 가지 기억 남는 것은 삿포로에서 먹었던 라멘이 지금까지 내가 먹어 본 라멘 중에 가장 맛났다는 점이다.
경기가 열리는 날 점심시간이었다. 동료 기자와 함께 숙소 근처의 한 골목으로 향했다. 동료 기자가 맛있는 라멘집을 알았다며 날 데리고 갔다. 이리저리 헤맨 끝에 ‘케야키’라는 이름의 라멘집 앞에 다다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돈코츠라멘을 선호한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그래도 라멘은 역시 니글니글한 돼지 뼈 우린 국물 베이스가 제맛이다. 물론 가끔은 소유라멘이나 미소라멘도 먹는다.
그렇게 하나 주문했고 잠시 후 내 앞에 라멘 하나가 놓였다. 그런데 차슈가 엄청났다. 지금까지 먹어본 라멘 중에서 차슈가 이렇게 컸던 적은 없었다. (그 이후에도 없었던 것 같다) 고기가 풍성하니 라멘 먹는 즐거움이 더 컸다.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니 속이 든든했다.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라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