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니 두 잔이요”
잔의 마디를 입술로 포개고 한 모금 마셨다. 마티니도,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첫 입이 제일 맛있다. 그녀가 술을 마시는 장면을 흘깃 훔쳤다. 진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녀는 아몬드 같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티니가 여성이 마시기에 어울리는 술이라고는 생각 안 해봤다. 마티니는 종종 무척이나 드라이 하고, 도수가 높기만 한 것 같다.
그녀가 내려놓은 마티니 잔에는 코랄레드의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현상의 근원을 쫓는 시선은 입술로 향한다. 어두운 바와 창밖 도시 조명 아래 그 입술은 코랄레드 색을 갖춘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각적 타격감에 어질어질해진 감정은, 마티니 잔을 쓰다듬으며 상상을 이어간다.
화장에 상냥함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입술 화장은 가장 상냥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했다. 보는 이로, 듣는 이로 하여금 대상의 의도를 솔직하고 꾸밈없이 표현해 주는 건 상냥하고 친절한 행위이다. 그리고 립스틱의 진함과 선명함이란, 화장한 사람의 의도를 가감 없이 들어내는 하나의 척도이지 않을까.
서로를 알아가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상대가 바른 벨벳 래디컬의 진함을 알아볼 수 있다면, He won’t have to play a guessing game no more. 그린 라이트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그 그린 라이트는 적색 계열이겠지만.
마티니 잔이나, 와인 잔 혹은 스타벅스 컵이나 담배 필터에 묻은 립스틱 자국은, 그런 의도의 Gentle reminder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낯선 곳에 남긴 상냥함의 흔적이 본체보다 섹시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 생각의 끝에 다시 그녀의 마티니 잔을 눈으로 좇았다.
멋쩍은 듯 그녀는 마티니 잔 위 그 흔적을 서둘러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