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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강성 Jun 27. 2024

돈의 심리학 (최종)

주식과 투자 이야기 (11)

Story 11  적당히 합리적인 게 나을까, 철저히 이성적인 게 좋을까
Reasonable > Rational


앞뒤가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인생이 늘 앞뒤가 맞는 건 아니잖아요 - 존 보글


우리는 스프레드시트가 아니라 엉망진창으로 사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이게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금융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냉철하게 이성적이 되는 것보다 그냥 '꽤 적당히 합리적인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 이게 더 현실적이며, 장기적으로 고수할 확률도 크다. 돈 관리에서는 이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율리우스 바그너야우레크(Julius Wagner-Jauregg)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였는데 그의 전공은 중증 신경매독이었다. 그 병은 당시에는 치료법이 없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그는 우연히 신경매독 환자가 다른 질병으로 인한 열병을 장기간 앓을 경우 신경 매독이 낫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몇 번의 비극적인 시행착오 끝에 약한 버전의 ‘말라리아’를 주사하는 요법으로 상당수의 신경 매독 환자를 치료하였다. 이 공로로 그는 1927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감염과 맞서 싸우는데 열이 차지하는 역할을 인식하고 그것을 치료법으로 처방하기까지 한, 역사상 몇 안 되는 의사 중 한 명이다. 이후 일부 바이러스의 경우 체온이 1도 상승하면 복제 속도가 200배나 느려진다는 과학적 증거들도 나왔고, 열이 나는 환자의 경과가 더 좋다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확인되기도 하였다.

[바그너 야우레크 초상과 1927년 노벨의학상 출처 구글 이미지]

하지만 사람들은 열이 나면 즉시 타이레놀 같은 약으로 열을 내리려고 하고 다들 열 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열이 도움이 된다면 다들 왜 열과 싸우려 할까? 열이 나면 아프다. 사람들은 아픈 게 싫다. 그게 전부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덜덜 떨고 있는 나에게 잘 검증된 연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감염이 있다면 열이 나고 싶어야 이성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적당한 생각은 아니다. 철저히 이성적이기보다는 적당히 합리적인 수준을 목표로 삼는 것이야말로 돈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일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금융이라는 학문은 수학적으로 최적의 투자 전략을 찾아내는 데 매진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수학적으로 최적의 전략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전략은 최대한 밤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는 전략이다.


해리 마르코비츠(Harry Markowitz)는 리스크와 수익률 사이의 교환관계를 수학적으로 탐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언젠가 그는 본인의 돈은 어떻게 투자하고 있느냐고 질문을 받았고 이렇게 답했다.


주식시장이 한참 올랐는데 내가 주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혹은 내가 주식에 왕창 투자하고 있는데 주식시장이 한참 빠진다면 내가 얼마나 슬플지 한번 그려보았습니다. 저의 의도는 미래의 후회를 최소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투자금을 50대 50으로 나누어 채권과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해리 마르코비츠 저서와 노벨상 수상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나중에 마르코비츠는 투자 전략을 바꾸어 포트폴리오를 더 다양화했지만, 그가 ‘미래의 후회를 최소화’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은 이성적인 것도, 그렇다고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다. 그는 적당히 합리적이다.


흔히 투자 대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지만 투자 대상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형편이 좋지 않을 때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아서) 전략이나 주식을 포기한다면, 이렇게 이성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돈을 벌 확률은 하루로 따지면 50대 50, 1년은 68퍼센트, 10년은 88퍼센트, 20년은 100퍼센트이다. 게임을 계속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상당한 이득이 된다.


인내심은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결국 '좋아하는 투자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해당기업은 제품, 사람, 과학적 접근 등 어떤 이유로든 그 기업을 열렬히 좋아해서 투자했다면 나쁜 상황이 되어도 덜 예민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국가의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자국 편향(home bios)’ 역시 친숙함이 그렇게 모르는 사람을 계속 지지할 수 있는 믿음을 제공한다면, 그것도 적당히 합리적인 태도일 것이다.


데이트레이딩이나 개별 주식을 고르는 것은 많은 투자자들에게 비이성적인 행동이지만 이로 인해 근질거리는 마음을 해소해서 나머지 포트폴리오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적당히 합리적인 행동일 수 있다.


Story 12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Surprise!


분석의 실패가 아니다. 상상력의 실패다.


스탠퍼드 대학교 스콧 세이건(Scott Sagan) 교수는 경제나 투자시장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벽에 걸어두어야 할 이야기를 했다.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은 언제나 일어난다.”

[스콧 세이건과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역사는 기대치를 조정하게 도와주며 개략적인 가이드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미래의 지도가 될 수 없다. 많은 투자자들이 빠지는 이 함정을 ‘역사가의 예언 오류’라고 부른다. 혁신과 변화가 중요한 분야에서 과거 데이터에 지나치게 의존해 미래 신호를 읽으려고 할 때 생기는 오류다.


투자는 엄밀한 과학이 아니다. 투자란 수많은 사람이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행복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 불완전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그러니 똑똑한 사람들도 예민하고 탐욕스러워지며 편집증을 갖게 된다.


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동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스스로 믿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개인의 선호다. 이런 요소들은 문화와 세대에 따라 변한다. 이때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사용하는 정신적인 속임수가 있다. 겪어본 사람, 이미 해본 사람을 지나치게 우러러보는 것이다.


투자가 마이클 배트닉(Michael Batnick)이 이 점을 잘 설명한 적이 있다.

[마이클 배트닉과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그래서 뭐? 금리가 급등하면 마지막 급등과 비슷할까, 아니면 그전 급등과 비슷할까? 자산의 종류가 달라서 비슷하게 움직일까, 똑같이 움직일까? 정반대로 움직일까? 투자를 하면서 1987년, 2000년, 2008년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시장을 경험한 셈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경험들이 지나친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전의 결과에 얽매이지 않을까?


과거의 의존하면 미래를 바꾸어 놓을 이례적인 사건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 자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보통의 경우에는 크게 벗어난 사건들이다. 기록을 깬 사건 말이다. 그런 것들이 경제와 주식시장을 크게 바꾼다. 이례적 사건들은 뒤이어 일어나는, 그와 무수한 수많은 사건에 영향을 끼친다.


19세기와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은 150억 명인데, 그중에 아래 단 일곱 명이 태어나지 않았을 경우 오늘날 세계 경제, 나아가 세상 전체가 얼마나 달랐을지 상상해 보라.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둥, 가브릴로 프린치프(사라예보 사건을 일으킨 인물), 토머스 에디슨, 빌 게이츠, 마틴 루터 킹
[가브릴로 프란치프와 사라예보 사건 출처 구글 이미지]

프로젝트, 혁신, 사건도 마찬가지다. 20세기에 다음의 것들이 없었다고 생각해보라.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맨해튼 프로젝트, 백신, 항생제, 아르파넷, 9・11 테러, 소비에트 연방 몰락


[아르파넷 1970과 이를 주도한 DARPA 출처 구글 이미지]

꼬리 사건을 과소평가하기 쉬운 이유는 그 사건들이 어떻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지 과소평가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한 예로 9・11 테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금리를 내리게 만들었고, 주택시장의 거품을 촉진했다. 그러자 수천만 명이 대학 교육을 받겠다고 나섰고 1조 6,000억 달러의 학자금 대출 연체율이 10.8퍼센트에 이르게 됐다.

[출처 다음 금융]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는 예측 모형이 잘못됐거나 우리의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다. 역사는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 뒤바뀔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미래의 투자수익률에 관해 생각할 때 종종 대공황이나 제2차 세계대전 등을 가이드로 최악의 시나리오 같은 것을 짠다는 점이다.


기록을 갈아치운 사건들은 전례가 없이 일어난 일들이다. 그러니 미래의 최악의 사건이 과거의 최악 혹은 최고의 사건과 같은 수준일 거라 가정하는 예보관은 역사를 따르지 않은 셈이 된다.


파라오 시절 이집트에서 학자들은 나일강의 최고 수위선을 추적해 이를 근거로 향후에 벌어질 시나리오를 가늠했다. 2011년 쓰나미 때 참사를 빚은 후쿠시마 원자로 사태에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이 원자로는 과거에 있었던 역사상 최악의 지진을 견딜 수 있게 지어졌다. 건축가들은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경우는 상상하지 않았다. 과거 최악의 사건은 당시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깜짝 놀랄 일이었고 그전까지는 유례가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 나심 탈레브 <행운에 속지 마라>


[나심 탈레브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이는 분석의 실패가 아니다. 상상력의 실패다. 2017년 어느 뉴욕의 만찬에서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의 예측이 틀렸을 때 투자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조차 “다시는 이런 실수를 안 해야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예측하지 못해서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알아야 할 건, 세상이 예측하기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놀랐을 때 배워야 할 교훈은 바로 이겁니다. ‘세상에는 놀랄 일이 생긴다.’


역사는 경제나 주식시장의 미래에 대해 잘못된 가이드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세상에서 중요한 구조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 퇴직연금 제도가 생긴 지 42년이 됐고 개인연금 제도는 1990년대에 만들어졌다. 그러니 오늘날 은퇴 대비 방법이나 개인금융에 대한 조언은 불과 한 세대 전과 직접 비교하기 힘들다. 새로운 옵션들이 생기고 상황이 변한 것이다.


벤처캐피털 역시 25년 전만 해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큰 벤처캐피털 펀드 하나가 한 세대 전 해당 업계 전체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한다. 나이키의 공동 설립자 필 나이트(Phil Knight)는 회고록에서 사업 초창기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필 나이트 출처 구글 이미지]
벤처캐피털 같은 것은 없었다. 가슴 부푼 젊은 사업가가 기댈 곳은 거의 없었다. 있다 해도 상상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리스크 회피적인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었다. 은행가들 말이다.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과 관련한 불과 몇십 년 전의 데이터도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투자 사이클, 스타트업의 실패율과 관련해 우리가 아는 사항들은 탄탄한 역사적 기초가 될 수 없다. 현재의 자금 조달 방법은 새로운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S&P500의 구성 주식이나 미국 경기침체의 간격도 지난 150년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에 관해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비관적 관점의 하나는 경기침체의 횟수는 줄었어도, 강도가 이전보다 더 세졌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이 아니라 상황이 분명히 변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 이론가로 믿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고전 현명한 투자자에는 투자자들이 똑똑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사용할 만한 공식들이 담겨 있었고, 이는 우리에게 실용적인 방향을 알려준다.


그런데 막상 공식들 중 몇 가지를 적용해보려고 하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공식이 별로 없다.’ 어떻게 된 걸까?


그레이엄은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고수해 온 투자 개념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해당 이론을 따르게 되어 그 이론이 잠재적으로 쓸모가 없어지면 더는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1976년 죽기 전까지 1934년부터 1972년 상에 그의 공식들을 다섯 차례 폐기하거나 업데이트하였다.


죽기 직전에 그는 상세한 분석 전략을 여전히 선호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아닙니다. 더 이상 우월한 가치 기회를 찾기 위해 증권 분석 기법들을 사용하자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우리 책이 처음 출판되었던 40년 전이었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상황이 많이 변했으니까요.


투자 업계에서 흔히 누군가를 조롱할 때 “이번에는 다를 테지.”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 표현은 투자자 존 템플턴(John Templeton)의 시각에서 유래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투자에서 제일 위험한 두 마디는 ‘이번에는 달라.’이다.”

[존 템플턴과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나 템플턴 역시 적어도 20퍼센트의 경우에는 미래가 과거와 다르다고 인정했다. 세상은 변한다. 당연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그 변화들이다. 그래서 마이클 배트닉은 말했다. “투자에서 제일 위험한 일곱 마디는 ‘제일 위험한 두 마디는 ‘이번에는 달라.’이다.‘라는 말이다."


지난 역사를 무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은 일반적인 것, 즉 사람들이 탐욕이나 공포와 맺고 있는 관계, 스트레스를 받을 때 행동하는 방시,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모습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경향이 있다. 돈의 역사를 탐구할 때는 바로 이런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이에 반해 특정한 트렌드나 업계, 부문, 시장의 인과관계, 사람들이 자기 돈으로 뭘 해야 하는지 등등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바뀐다. 그러니 역사가들은 예언가가 될 수 없다.


Story 13  안전마진
Room for Error


아무리 내가 옳다 해도 내 앞에 있는 칩을 몽땅 걸 수 있는 순간은 없다.


아주 똑똑한 금융 행동이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될 때가 있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같은 곳에서 말이다. 카드 카운팅(card counting)을 하는 일부 블랙잭 플레이어를 보면 ‘실수에 대비한 여지’를 마련해둬야 함을 배울 수 있다. 카드 카운팅의 기본 요령은 간단한다.


* 그 누구도 딜러가 다음번에 꺼낼 카드가 무엇일지 정확히 알 수 없다.
* 그러나 앞서 나온 카드가 무엇이었는지 계속 기억해 나가면 아직 쌓여 있는 카드 더미에 어떤 카드가 남아 있을지는 계산할 수 있다.
* 이렇게 하면 딜러가 특정 카드를 꺼낼 ‘확률‘을 알 수 있다.
[블랙잭 출처 구글 이미지]

중요한 것은 블랙잭에서 카드 카운팅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확률의 게임’을 하고 있을 뿐, 결코 확실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전략은 전적으로 ‘겸손’에 의존하고 있다.


카드 카운팅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하우스(카지노)에서 플레이어 쪽으로 이길 확률을 아주 조금 옮겨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 큰돈을 건다면 모든 돈을 잃을 수도 있다. 세상은 그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다. 적어도 지속적으로 친절하지는 않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저지를지도 모를 실수에 대비한 방책이 필요하다.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Bringing Dwon the House)에서 성공한 카운팅 플레이어로 묘사된 케빈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책과 영화 출처 구글 이미지]
카드 카운팅이 통한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 이미 증명되었지만 그렇다고 매번 이기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며, 카지노를 방문할 때마다 이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아무리 운이 나빠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카지노 측보다 대략 2퍼센트 정도 우위에 선다고 가정하면, 경험적으로 기본 베팅 금액의 100배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수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 두는 것이 지혜로운 이유는 불확실성이 늘 삶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불확실성을 상대하는 유일한 길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일과 실제 발생하는 일이 크게 차이 나더라도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벤자민 그레이엄은 ‘안전마진’ 개념으로 유명한데, 그는 “안전마진의 목적은 예측을 불필요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간단한 말속에 얼마나 강력한 힘이 있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안전마진’ 다리 출처 구글 이미지]

그레이엄의 안전마진은 세상을 예측 가능한 것과 순전한 도박이라는 식의 흑백논리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일정 범위의 잠재적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아래 두 가지다. 첫째 아무도 미래를 모른다는 생각은 마음을 너무 불안하게 만든다. 둘째 예측 가능한 미래를 활용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손해라고 생각한다.


전략 속에 실수에 대비한 대책(현금)을 충분히 포함시킨 사람은 다른 것(주식)에서 어려움을 처하더라도 다른 사람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다. 빌게이츠와 워런 버핏 둘 다 이러한 대비책을 충분히 마련해 두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산가치가 30% 하락한 시기에 기회가 최고조에 도달한다고 해도 자신감은 사라져서 기회를 잡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이 특히 실수의 여지를 생각해야 할 경우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변동성이다. 자산 가치가 30퍼센트 하락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스프레드시트상으로는 그럴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떨까?


손실을 본 후 지쳐서 그만둔 투자자들이 많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지쳤다. 이 숫자들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려주는 것은 스프레드 시트가 잘한다. 그러나 밤에 아이들을 보며 ‘만약 이 투자 결정이 잘못됐다면 아이들의 미래가 망가지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당신의 마음이 어떨지 알려주지는 못한다. ‘견딜 수 있는 것’과 ‘정서적으로 가능한 것’ 사이의 차이를 간과하기 쉽다.


다른 하나는 은퇴 준비다. 미국 주식시장의 연평균 수익률을 추산해 은퇴 시의 기대수익률을 추산하고 목표 금액을 위해 매달 얼마를 적립해야 하는지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미래 수익률이 이보다 낮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책은 미래 수익률을 추산할 때 실수의 여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미래 수익률을 추산할 때 역사적 평균보다 3분의 1 더 낮다는 가정을 사용하고, 그래서 미래와 과거가 닮았다고 가정하며 더 많은 금액을 모은다. 그것이 안전마진인 것이다. 찰리 멍거는 '행복해지는 최선의 길은 목표를 낮추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출처 구글 이미지]


실수의 여지와 사촌 격인 또 하나가 있다. ‘리스크에 대한 낙관적 편향’ 내지는 ‘러시안룰렛은 통계대로 움직여야 한다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리한 경우를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나에게 유리한 확률에 애착을 갖는 것을 말한다.


큰돈을 벌려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리스크 때문에 망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리스크도 감수할 가치가 없다. 러시안룰렛의 불리한 결과는 유리할 때 생길 수 있는 결과를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없다. 이 리스크를 보상할 수 있는 안전마진이란 없다.


여기서 악마는 바로 레버리지다. 위험한 점은 대부분의 경우 이성적인 낙천주의가 종종 파산의 확률을 가려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성적으로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높은 레버리지를 사용해 파산한 경우에는 다시 게임에 참여할 기회까지 잃는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는 나의 돈을 둘로 나누어 생각한다. 하나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돈, 나머지 하나는 리스크를 아주 멀리하는 돈이다.


실수에 대비한다는 게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하는 일 주변으로 목표를 넓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실수에 대한 대비책은 상상조차 못한 일, 맞닥뜨릴 가장 골치 아픈 사건으로부터 보호하는데 도움을 준다.


알려지지 않은 리스크를 피하는 것은 이미 그 정의에서부터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일에서 생기는 피해에 대비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단일 실패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다. 많은 것들이 한 가지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한 가지가 부러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바로 단일 실패점이다.


돈과 관련하여 가장 큰 단일 실패점은 월급에만 의존해서 단기지출 자금을 마련하고 저축은 전혀 하지 않는 바람에, 내가 생각하는 지출과 미래에 혹시 생길 수 있는 지출 사이에 여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심지어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위해 저축을 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이미 알려진 리스크만을 대비하는 금융 계획은 현실 세계를 살아남을 만큼 충분한 안전마진을 갖기 힘들다. 실제로 모든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Story 14  과거의 나 vs. 미래의 나
You’ll Change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늘 기뻐하지만은 않는다.


장기적인 재무 계획은 필수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한다. 주변 세상도 변하고, 나의 목표도 변하고, 욕망도 변한다.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과 "미래의 내가 무엇을 원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미래에 내가 무엇을 원할지에 대한 생각이 바뀔 가능성이 높음에도, 지속 가능한 장기적 의사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심리학자들이 쓰는 용어 중에 재미있는 말이 하나 있다. ‘역사가 끝났다는 착각(The End of History Illusion)’ 역사는 끝났고 변화는 더 이상 없을 거란 착각이다. 미래의 변화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의 말을 들어보자.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우리가 내리는 의사결정은 ‘미래의 나’라는 사람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늘 기뻐하지만은 않는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10대 시절 큰돈을 들인 타투를 지우는데 큰돈을 쓴다. 중연들은 젊어서 서둘러했던 결론의 이혼을 서두른다. 노인들은 중년에 얻으려 노력한 것들을 잃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식이다.”


길버트의 연구는 18세부터 68세의 사람들이 향후 자신이 얼마나 많이 변할지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끝내 이 교훈을 배우지 못하곤 한다. 이것이 장기적인 금융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라.

[대니얼 길버트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만약 당신이 장기적 의사결정을 준비하고 있다면 염두에 둘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금융 계획에서 양극단은 피해야 한다.


매우 낮은 소득에도 만족할 것이라는 가정, 또는 높은 소득을 위해 끝없이 긴 시간 노동할 것이라는 가정은 위험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상황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계획이 주는 이점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양극단은 그 단점들 때문에 계속해서 후회를 남긴다.


복리의 효과를 얻으려면 수년 내지 수십 년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저축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관계나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끈기가 핵심이다. 인생의 모든 지점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미래의 후회를 피하고 끈기를 높일 수 있는 전략이다.


직장 생활 내내 적당한 연간 저축액을 유지하고, 자유시간을 가지고, 지나치게 긴 통근 시간을 만들지 말고, 적당한 시간을 가족과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자. 어느 것 하나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세운 계획을 고수하고 후회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변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만난 직장인 중 몇몇은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그들은 만 18세 때 대학 전공에 따라 결정한 커리어를 자신이 고른 분야야라는 이유만으로 줄곧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요령은 변화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으로 유명한 대니얼 카너먼은 '나한테는 매몰비용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매몰비용은 '미래의 나'를 '과거의 나'의 포로로 만든다. 내가 지금과 다른 사람일 때 세웠던 금융 목표는 버리고 새로운 복리의 마법을 실행하는 것이 낫다.

[대니얼 카너먼과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Story 15  보이지 않는 가격표
Nothing’s Free


모든 것에는 가격이 있다. 그러나 모든 가격이 가격표에 표시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에는 가격이 있다. 여기서 핵심은 가격이 얼마인지, 그리고 기꺼이 지불할 만한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문제는 수많은 것들의 가격이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분명하지 않고, 그 사이 청구서의 납부 기한이 도래한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사태로 GE의 금융 사업부는 혼란에 빠졌다가 결국에는 헐값에 팔렸다. 이어 사운을 걸었던 석유 사업과 에너지 사업도 참사를 빚으면서 주가는 폭락했다. 이에 책임을 지고 2001년부터 회사를 운영해 온 CEO 제프 이멜트(Jeff Immelt)는 2017년에 사임했다.

[제프 이멜트에 대한 책과 CEO 퇴임 기자회견 장면 출처 구글 이미지]

그는 물러나면서 후임자에게 “뭐든 밖에서 보면 쉬워 보이는 법이죠.”라고 했다고 한다. 비대해진 조직, 단기투자자, 규제 당국, 노조, 관료주의 간의 충돌하는 요구들, 이런 것들을 처리하기란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직접 상대해 보기 전에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우리는 성공의 대가를 잘 알아보지 못해 그 값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에서나 “주식을 장기 보유하라.”는 말을 한다. 훌륭한 조언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주식가격이 붕괴하고 있을 때 장기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버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가?


성공적인 투자에는 대가가 따라붙는다. 그 대가는 돈이 아니라 변동성, 공포, 의심, 불확실성, 후회로 지불해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실시간으로 직접 상대해 보기 전에는 간과하기 쉽다.


3만 달러짜리 새 차를 갖고 싶다면 당신에게는 세 가지 옵션이 있다.


1. 3만 달러 제값을 지불한다.
2. 값싼 중고차를 찾아낸다.
3. 훔친다.


만약 당신이 평화롭게 은퇴할 수 있도록 앞으로 30년간 11퍼센트의 연간 수익률을 얻고 싶다고 하자. 이런 보상이 공짜로 주어질까? 역시 당신에게는 몇 가지 옵션이 있다.


1. 당신은 변동성과 격변을 받아들이며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
2. 불확실성이 덜하고 수익도 덜한, 말하자면 중고차 같은 자산을 찾아낼 수 있다.
3. 자동차 절도죄에 해당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당연히 수반되는 변동성을 피하면서 수익을 얻으려 시도해 보는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세 번째 옵션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투자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세 번째 옵션을 선택한다. 즉, 변동성을 피하고 수익을 얻으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에 실패한다. 사람들은 샀다가 팔았다를 반복해서 대가를 치른다.


자동차나, 음식, 주택에 대한 대가는 기꺼이 지불하는 사람들이 왜 훌륭한 투자 수익에 대한 대가는 기를 쓰고 피하려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성공 투자의 대가는 당장 명확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표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뭔가 잘못한 데 대한 벌금처럼 느껴진다. 나의 부가 감소하는 것을 벌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의 벌금을 피하려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시장 변동성을 벌금이 아닌 수수료처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사고는 투자 결과가 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작용할 때까지 오랫동안 살아남는 사고방식을 키울 수 있다. 변동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수수료는 현금이나 채권보다 높은 수익률을 위한 대가이다. 요령은 시장 수수료가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만한 가치가 항상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디즈니랜드에도 비가 올 때도 있다. 그러나 입장료를 벌금으로 보게 되면 절대로 이 마법을 즐길 수 없다. 대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그 값을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Story 16  너와 나는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
Yon & Me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금융 신호를 읽지 않도록 조심하라.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의 붕괴로 가계 자산은 6.2조 달러가 감소했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졌을 때는 8조 달러 이상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걸까? 우리는 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걸까?


흔히 나오는 답은 사람들이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결정을 내릴 당시에는 그 의사결정이 말이 된다. 또한 경제 거품이라는 것이 암과 달라서 조직검사를 통해 명확한 진단이나 경고를 낼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간단한 답을 내놓기에는 너무 복잡한 주제다.


그렇지만 흔히 간과되기도 하고 당신에게도 직접 해당할 수 있는 이유 한 가지는 ‘투자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투자자로부터 신호를 읽는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서로 다른 목표와 시간 계획을 갖고 있다면(실제로 모든 유형의 자산에서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가격이 다른 사람에게는 합리적일 수 있다. 서로 눈여겨보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단기 수익률의 모멘텀이 많은 돈을 끌어들이면 대부분 장기투자자였던 투자자 구성이 단기 투자로 옮겨가면서 거품이 형성된다. 투자자들이 단기 수익률을 끌어올리면 더 많은 투자자가 모여들면서 시장 가격 형성의 주체는 시간을 더 짧게 보는 투자자들이 된다.


거품은 가치 상승에 대한 것이 아니다. 더 많은 단기투자자가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투자 시간 지평(time horizons)이 줄어드는 현상의 징후일 뿐이다. 투자 후 매도하여 수익을 얻기까지의 기간이 짧아진다는 뜻이다.


닷컴버블 당시 가장 흔했던 헤드라인 중 하나는 거래량이 신기록을 썼다는 발표였다. 이는 투자자들이 ‘하루 안에’ 사고팔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당시 뮤추얼펀드를 사는 개인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매기 마하르(Maggie Mahar)불(Bull)에 다음과 같이 썼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언론은 연간 성적표를 분기 보고서로 대체했다. 이런 변화는 투자자들이 실적을 좋도록 자극했다. 투자자들은 서둘러 달려가 제일 위에 있는 펀드를 샀다. 펀드 가격이 가장 비쌌던 시기에 말이다.
[매기 마하르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거품이 피해를 주는 것이 장기투자자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게임을 하는 단기거래자들로부터 신호를 읽기 시작할 때다. 금융과 투자에 관한 많은 의사 결정들이 남들이 뭘 하는지 지켜보며 그들을 흉내내거나 그들과 반대로 투자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설득당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어떤 게임을 하는지 파악하는데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라.


오래전에 나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세상이 진짜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낙관하는 수동적 투자자다. 나는 향후 30년간 그 성장이 내 투자에도 쌓여갈 거라 확신한다.”


이러한 선언문을 작성해 놓으니 관련 없는 모든 것 (올해 시장 성적, 내년의 경기 침체 여부 등)은 나의 게임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고, 그에 설득당할 위험도 없게 된다.


Story 17  비관주의의 유혹
The Seduction of Pessimism


낙관주의는 제품 홍보처럼 들리고 비관주의는 나를 도와주려는 말처럼 들린다.


“세상이 지옥에 떨어질 거라는 얘기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일리노이 대학교의 경제사학자 디르드리 매클로스키(Deirdre McCloskey)”는 이런 말을 남겼다.

[디르드리 매클로스키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비관주의는 낙관주의보다 더 똑똑한 소리처럼 들리고 더 그럴싸해 보인다. 낙관주의는 종종 리스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짜 낙관주의자는 모든 게 멋질 거라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그냥 안일한 태도다.


낙관주의는 중간에 차질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크다는 믿음이다. 낙관주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대부분의 경우 가장 합리적인 배팅이다. 고인이 된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은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아주 진지하게 가능성을 따지는 사람이다.”

[한스 로슬링과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2008년 12월 29일 전 세계 주식시장이 붕괴된 상황에서, 상황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겠다 싶었을 때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 교수이자 정치과학자 이고르 파나린(Igor Panarin)의 전망을 1면에 실었다. 그의 경제 전망은 SF소설을 방불케 했는데 아래와 같다.


(파나린 교수는) 2010년 6월 말 흑은 7월 초, 미국이 여섯  조각으로 쪼개질 거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알래스카는 다시  러시아의 지배에 놓일 것이다. (중략) 캘리포니아는 그가 '캘리포니아 공화국'이라 부르는 구심점을 형성하고 중국의 일부가 되거나 그 영향력 아래 놓일 것이다. 텍사스는 텍사스 공화국'의  중심이 되어 다른 여러 주와 함께 멕시코의 일부가 되거나 그 영향력하에 놓일 것이다. 워싱턴 D.C.와 뉴욕은 '대서양 아메리카의 일부가 되어 유럽연합에 합류할 수도 있다. 캐나다는 파나린 교수가 '북중부 아메리카 공화국'이라 부르는 북부 주들을 차지할 것이다. 하와이는 일본이나 중국의 피보호국이 될 것이고 알래스카는 러시아에 편입될 것이다.
[이고르 파나린 출처 구글 이미지]

여기서 우리가 흥미롭게 보아야 할 점은 이와 극단적 반대에 있는 이야기, 즉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예측은 종말을 예언하는 자들의 글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940년대 말 전후 일본의 피폐하고 혹독한 상황에서 일본의 어느 학자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작성했다고 상상해보라.


모두 기운을 내라. 우리가 죽기 전에 이 나라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보다 거의 15배 크기로 성장할 것이다. 기 대 수명은 거의 두 배가 될 것이다. 주식시장은 역사상 그 어느 국가도 본 적 없을 만큼의 수익률을 낼 것이다. 40년 이상 실업률 6퍼센트를 넘지 않을 것이다. 전자 혁신과 기업경영 시스템의 세계 리더가 될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는 넘치는 부를 가지고 미국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동산 일부를 소유할 것이다. 한편 미국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될 것이며 우리의 경제적 통찰을 따라 하려고 애쓸 것이다.


사람들은 방이 떠나가라 웃으며 글쓴이가 정신과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파나린의 정반대의 관점은 우스꽝스럽게 보이고 그 반대로 종말을 예측하는 내용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투자 뉴스레터 업계는 이 점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곳에는 종말을 예언하는 사람들로 득실거린다. 그들이 활동하는 주식시장은 지난 100년간 1만 7,000배가 올랐는데(배당금 포함) 말이다.


비관주의가 지적인 매력을 풍긴다는 사실은 수백 년 전부터 알려져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40년대에 이렇게 썼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남들이 절망할 때 희망을 갖는 인물이 아니라 남들이 희망에 찰 때 절망하는 인물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현자로 추앙받는다.”




돈 문제에 관한 한 비관주의가 매력적으로 들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일부는 본능적인 것이기에 어쩔 수가 없다. 대니얼 카너먼은 손실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 진화과정에서 만들어진 생존책이라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직접적으로 서로 비교하거나 견주어보면 손실이 이득보다 더 커 보인다. 긍정적 기대나 경험, 그리고 부정적 기대나 경험, 이 두 가지가 비대칭적인 힘을 갖게 된 배경에는 진화론적 역사가 있다. 기회보다는 위협을 더 긴급한 일로 취급하는 유기체는 그렇지 않은 유기체보다 살아남아 번식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외에 경제적 비관주의가 경제적 낙관주의보다 더 쉽고, 흔하고, 설득력 있어 보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돈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기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날씨의 경우와 달리 경기침체가 닥치면 당신을 포함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주의를 기울인다.’ 주식시장이 1퍼센트 상승한 것은 저녁 뉴스에 간단히 언급되지만, 1퍼센트 하락하면 피처럼 붉은색에 대문자로 뉴스를 보도할 것이다.


1929년 대공황 당시 주식을 소유한 미국인은 2.5퍼센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 대해 역사가 에릭 라우치웨이(Eric Rauchway)의 말을 들어보자.


이러한 가치 폭락으로 즉각적인 고통을 받은 미국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도 너무 가까이서 시장을 지켜보고 이를 본인의 운명에 대한 지표로 간주한 나머지, 갑자기 경제 활동의 많은 부분을 중단해 버렸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on Schumpeter)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발 밑의 땅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꼈다."
[에릭 라우치웨이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비관주의자들은 시장이 어떻게 적응해갈 지를 고려하지 않고 미래를 추정한다.


2008년 환경주의자 레스터 브라운은 2030년이 되면 중국의 수요는 급증하지만 생산량은 한정되어 결국 전 세계 석유 비축량이 바닥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시장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제학에는 이런 철칙이 있다. ‘극단적으로 좋은 상황이나 극단적으로 나쁜 상황은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예측하기 힘든 방식으로 수요와 공급이 적응하기 때문이다.’


석유의 경우 유가가 상승하자 새로운 채굴 기술이 등장했고 지금은 브라운이 최고점으로 가정했던 수요보다 20퍼센트 더 많은 양이 생산된다. 필요는 모든 발명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단편적 예측을 내놓는 비관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진보는 너무 느리게 일어나서 알아채기가 힘들지만 파괴는 너무 빠르게 일어나서 무시하기가 어렵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비극은 많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일어난 기적은 흔치 않다. 1889년 1월 5일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Detrolt Free Press)>는 언젠가 인간이 새처럼 날 수 있을 거라는 오랜 꿈을 밀어냈다. 이 신문은 비행기가 "불가능해 보인다."라고 썼다.


필요한 연료와 엔지니어를 탑재한 하늘을 나는 기계의 최소 무게는 300에서 400파운드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중략) 그러나 무게 하한은 분명 50파운드를 크게 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상이 되면 동물은 날지 못한다. 자연은 이 한계에 도달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상을 넘을 수 없었다.


6개월 뒤 고등학교를 중퇴한 오빌 라이트는 형 윌버를 도와 뒷마당 헛간에서 인쇄기를 뚝딱 만들었다. 그 뒤에 두 사람이 비행을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누구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프레더릭 루이스 앨런은 1952년에 발표한 미국사 책에서 이렇게 썼다.


몇 년이 흐른 후에야 대중들은 라이트 형제가 월 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사람들은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너무나 확신했다. 그래서 1905년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라이트 형제가 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본 것은 틀림없이 어떤 속임수라고 판단했다. 마치 오늘날 텔레파시 시연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했을 법한 생각이었다 라이트 형제의 최초 비행 이후 후 거의 4년 반이 흐른 1908년 5월이 되어서야 이들 형제가 하고 있는 일을 취재하기 위해 노련한 기자들이 파견되었고, 이들이 보내온 흥분된 속보를 노련한 편집자들이 온전히 믿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세상은 인간의 비행이 성공하였음을 깨달았다.
[출처 구글 이미지]

심지어 사람들은 한참 동안 비행기의 가치를 과소평가했다. 1909년 <워싱턴 포스트>는 “상업용 화물기 같은 것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화물차는 계속해서 그 육중한 무게를 참을성 많은 지구 위로 느릿느릿 끌고 갈 것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5개월 후 첫 화물기가 이륙했다.


비관주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가 쉬운 이유는 따끈따끈한 최근 이야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반면 낙관적 이야기는 역사와 발전을 길게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잊어보리기가 쉽고 조각을 맞추기도 어렵다.


똑같은 것이 비즈니스나 주식시장에도 적용된다. 주식 시장에서 6개월간 주가가 40% 하락하면 국회의 조사를 받을 수 있지만 6년간 주가가 140퍼센트 오르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수 있다. 커리어에 있어서 명성을 쌓는데 평생이 걸리지만 그 명성이 메일 한 통으로도 파괴될 수 있다.


잠깐의 비관주의는 삽시간에 퍼지지만 강력한 동인을 가진 낙관주의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투자를 할 때는 성공의 대가(기나긴 성장 도중에 발생하는 변동성과 손실)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2004년 스티븐 호킹 박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늘 이렇게 명랑하십니까?”라고 기자가 묻자, “스물한 살 때 나는 기대치가 0이 됐습니다. 이후로는 모든 게 보너스지요.”라고 답했다.

[스티븐 호킹 출처 구글 이미지]

비관주의는 기대치를 낮추고 실제로 가능한 결과와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결과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그래서 그토록 비관주의가 매혹적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잘 안 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을 때 반갑게 놀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아니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낙관적으로 생각할 만하다.


Story 18  "간절하면 믿게 되는 법이죠"
When You’ll Believe Anything


매력적인 허구와 스토리는 왜 통계보다 강력한가.


어느 외계인이 뉴욕 상공을 배회하며 2007년에서 2009년 사이 미국 경제 규모와 변화를 평가하려고 한다. 그는 사람들과 빌딩, 공장들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기술이 발전된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럼에도 주식시장의 가치가 절반으로 곤두박질쳤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외계인은 ‘경제에 관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경제나 사업, 투자, 커리어의 성장을 생각할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스토리는 다른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힘을 경제에 미친다. 스토리는 경제의 유형적 부분이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연료, 내지는 우리의 능력을 억제하는 브레이크와 같다.


스토리가 좌우하는 세상에서 개인이 돈을 관리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 두 가지가 있다.


무언가가 사실이기를 바랄수록 그것이 사실일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스토리를 믿을 가능성이 커진다.


인생에는 우리가 사실이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사실이라 믿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을 ‘매력적인 허구’라고 부른다. 이것은 우리가 돈을 생각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투자와 경제에 관해서 말이다.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고, 중대한 사안이 걸려 있을 때 매력적인 허구는 아주 강력해서 거의 아무것이나 믿게 만든다.


역병으로 18개월 만에 런던 시민의 4분의 1이 죽었던 런던 대역병의 연대기를 썼던 영국의 소설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는 1722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예언과 점성술적 주술, 어리석은 미신에 중독됐다. (중략) 달력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중략) 주택의 기둥과 거리 모퉁이에는 자신에게 치료책이 있다고, 자신을 찾아오라는 의사나 무식한 자들의 광고 전단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런 전단은 보통 다음과 같은 과 장된 문구로 시작했다. ' 틀림없는 역병 예방약.' '감염을 막아주는 확실한 보존제. '공기 오염을 막아주는 특효 약물.
[대니얼 디포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똑같이 정보가 제한적이고 중대한 사안이 걸렸을 때, 우리의 금융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생각해보자. 누군가의 예측이 현실이 될 확률이 1퍼센트만 있더라도 그리고 그게 실현될 경우 내 인생이 바뀐다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니다.


어느 주식이 10배 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확률이 낮은 도박이다. 문제는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1퍼센트처럼 낮은 확률은 조정할 수도 없고, 조정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내가 사실이길 바라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현실이 되었을 때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2007년 마지막 회의에서 2008년과 2009년이 경제성장률의 예측을 내놓았다. 그들은 상당히 안전마진을 가지고 1.6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성장률의 범위를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2퍼센트 이상 쪼그라들었다. 오차 범위보다 세 배나 하한을 벗어난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대놓고 경기 침체를 예언하기는 쉽지 않다. 본인들의 커리어를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악의 예상도 성장이 ‘더디다’ 수준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손쉽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그렇게 하고 있다.


사소한 소동이나 목격담 하나도 마침내 올 게 왔다는 신호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그래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걸 바라기 때문이다. 금융에서 실수의 여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없다. 중대한 것이 걸려 있을수록, 실수의 여지도 크게 잡아야 한다.


세상에 대한 관점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우리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 따라서 내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머릿속의 한정된 모형을 가지고 세상을 설명한다. 한 살된 딸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마주치는 모든 것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이유를 찾는다.


그리고 나는 그중 많은 것들을 틀린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 원리에 대해 아는 것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이는 팩트를 기반으로 하는 대부분의 주제에 해당한다.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역사란 이미 있었던 일을 되짚는 것에 불과하다. 당연히 명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로부터 배우기(Why Don’t We Learn From History)에서 B. H. 리들 하트(Liddel Har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는) 상상력이나 직관의 도움 없이는 해석될 수 없다. 너무나 압도적인 양의 증거들이 있기 때문에 선별은 불가피하다. 선별도 하나의 기술이다. 역사를 읽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확인해 줄 내용을 찾아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충성심을 옹호한다. 단언 혹은 공격의 목적을 가지고 역사를 읽는다. 불편한 진실에는 저항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정의의 편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들 하트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에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지나고 보면 과거를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마치 세상이 이해할 만한 것이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우리는 세상이 이해되지 않을 때조차 이해가 된다고 착각한다. 이 때문에 많은 분야에서 실수가 생기니 큰일이다.


주식시장과 경제를 예측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에는, 세상이 당신 생각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당신밖에 없는 탓도 있다. 당신이 의사결정을 내린 이유를 나는 이해조차 할 수 없고, 내가 맹목적으로 당신을 따라 할 경우 나에게는 참사가 될 수 있다.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Philip Tetlock)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내가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필요를 충족시켜 주겠다고 약속하는 권위있게 들리는 사람들에게 의지한다.”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말은 훌륭한 표현이다. 내가 통제권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은 분석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가려움증 같은 것이다.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 불확실하다는 현실보다 오히려 설득력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스토리에 집착한다.

[필립 테틀록과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정확성의 영역과 불확실성의 영역을 혼동하는 탓도 있다. 비즈니스, 경제, 투자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깔끔한 공식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의사결정에 압도적으로 좌우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NASA의 엔지니어가 결과를 99.99998퍼센트 통제하고 있다는 아이디어가 근사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다른 부분, 예컨대 돈 문제 같은 영역에서도 꽤 많은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스토리를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카너먼은 그런 스토리가 다음과 같은 경로를 따른다고 했다.


*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내 결과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의사 결정을 내리게 될 남들의 계획이나 능력은 소홀히 한다.
* 과거를 설명할 때도, 미래를 예측할 때도 우리는 인과관계에 미치는 능력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운의 역할은 소홀히 한다.
* 우리는 내가 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모르는 것은 소홀히 한다. 그래서 나의 믿음에 지나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카너먼은 이것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설립자 및 참여자들에게 여러 차례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이 회사에서 하는 일이 이 일의 결과를 어느 정도나 좌우할까요?" 분명히 쉬운 질문이다. 답은 금방 나왔고, 그 답이 80퍼센트 이하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회사가 성공할지 확신하지 못할 때조차 이 대담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이 거의 전적으로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틀렸다. 스타트업의 결과는 자신들의 노력 못지않게 경쟁자의 실적과 시장의 변화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사업가들은 자연히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나의 계획, 행동, 자금 모집 가능성 같은 가장 직접적인 위협과 기회 같은 것들 말이다. 경쟁자에 대해서는 이만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경쟁이 큰 역할을 차지하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 그렇게 하고 산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내가 우연히 아는 것들을 기초로, 내가 활동하는 세상이 이해가 된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에 침대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들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들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스토리를 알 수 없었기에 완전히 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외계인이다.


Story 19  돈에 대한 보편적인 진실 몇 가지
All Together Now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1931년에 클래런스 휴스가 입안에 방사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치과를 갔는데 몇 시간 후 마취에서 깨어보니 치아가 16개 사라지고 편도선은 제거되어 있었다. 일주일 후 그는 수술 후유증으로 숨졌다. 그의 아내는 클래런스가 그런 시술 내용에 동의한 적이 없었고 만약 의향을 물어보았으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의사를 고소했다.


제이 카츠(Jay Katz) 박사의료와 환자 사이의 침묵의 세상에 당시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의사들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환자의 신체적, 정서적 욕구를 살필 의무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환자와 상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자가 의사결정의 짐을 의사와 공유할 자격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결코 의료 윤리의 일부가 아니었다.
[제이 카츠 박사와 저서 출처 구글 이미지]

이후 환자 보호와 관련된 법률이 생기고, 큰 영향력을 발휘한 카츠의 책도 역할을 하면서 의과대학들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쪽으로 교수법을 바꾸었다. 즉 치료 계획의 여러 옵션을 펼쳐 놓고 환자가 최선의 길을 결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카츠는 그의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의사가 자신의 의학 기술과 과학적 지식을 펼칠 때 순전히 그의 선한 의도, 그리고 무엇이 옳은 일인지 판단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난센스다. (중략)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의료는 복합적인 직업이며, 의사와 환자의 상호작용 역시 복합적이다.


재무 상담가도 마찬가지다. 당신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하라고 말해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 언제 그것을 원하는지, 왜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지식이 있고 그들은 확률을 안다. 또한 돈에는 보편적인 진실이 있다. 비록 사람들이 그 진실을 자신의 재무 상황에 어떻게 활용할지, 재무 상담가와는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일이 잘 풀릴 때는 겸손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일이 잘못될 때는 용서와 연민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나를 판단할 때도, 남을 판단할 때도 겸손을 찾고 용서와 연민을 생각하자. 행운과 리스크의 힘을 존중한다면 실제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항에 초점을 맞출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자존심은 줄이고 부는 늘려라.


오늘 내가 살 수 있는 것을 사지 않을 때 부가 만들어진다. 지금 가진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덮어두지 않으면 부는 절대로 쌓이지 않을 것이다.


밤잠을 설치지 않을 방법을 택하라.


돈을 관리함에 있어 안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그러나 '이게 내가 밤에 잘 자는데 도움이 될까?'라는 기준으로 생각해보라.


시간을 보는 눈을 넓혀라.


투자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작은 것을 크게 키우고, 큰 실수를 약화시킨다.


포트폴리오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보라.


소수의 작은 것들이 다수의 결과를 책임진다. 개별투자를 보지 말고, 전체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라. 투자의 많은 것이 형편없더라도 몇 개만 뛰어나면 괜찮다.


내 시간을 내 뜻대로 하는데 돈을 써라.


내 시간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은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다. 당신이 원할 때, 원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과 함께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능력은 돈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당금이다.


남에게 더 친절하고, 자신에게 덜 요란해져라.


당신이 가진 물건에 열광하는 것은 당신 자신뿐이다. 스스로 질문해보자. 나는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멋진 차와 좋은 시계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인가? 그런 것들을 얻을 확률을 높이는 것은 친절과 겸손을 통해서이다.


저축하라. 그냥 저축하라.


예측이 불가능하거나 정의할 수 없는 목적을 위해 저축하는 것도 최고의 이유가 된다. 특별히 용도를 정해두지 않은 저축은 최악의 순간 당신을 놀라 자빠지게 만들 수도 있는 사건에 대비한 대비책이다.


성공을 위한 비용은 기꺼이 지불하라.


가치 있는 것 중에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불확실성, 의심, 후회는 돈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회비용이다. 이러한 것은 수수료이지 벌금이 아니다.


실수의 여지에 항상 대비하라.


미래에 일어날 법한 일, 그리고 내가 잘살기 위해 꼭 일어나야 하는 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당신을 인내하게 만든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실수의 여지에 대비하는 것은 보수적이 방책처럼 보이지만, 이보다 더 큰 값어치는 없을 것이다.


장기적인 결정을 내릴 때 극단적 선택은 피하라.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목표와 욕망이 바뀐다. 따라서 금융과 투자에 관련한 과거의 결정이 극단적이면 극단적일수록 변해가는 당신이 후회할 가능성도 커진다.


리스크를 좋아하라.


사람들의 예측 능력은 형편없기에 리스크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리스크를 좋아하라. 시간이 지나면 제값을 할 것이다. 그러나 파산할 정도의 리스크는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나의 게임이 무엇인지 정의하라.


모든 사람은 목표가 다르고 계획이 다르다. 즉 나의 게임과 너의 게임은 다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 나의 행동이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게끔 하라.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나의 행동과 게임에 집중하라.


똑똑하고 합리적인 사람들도 돈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사람마다 목표와 욕망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답은 없다. 오직 나에게 맞는 답이 있을 뿐이다.


Story 20  나의 투자 이야기
Confessions


나는 부자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독립성을 갖고 싶었다. - 찰리 멍거


컨설팅그룹 퍼스트 맨해튼(First Manhattan)을 설립한 억만장자 샌디 고츠먼(Sandy Gottesman)은 투자팀에 입사 지원한 사람의 면접을 볼 때 다음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왜 그것을 소유하는가?”


이 질문은 당신이 당신 돈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달라는 것이고, 말이 되는 것(남들이 나에게 제안하는 내용)과 직감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남들이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크게 다를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출처 구글 이미지]

모닝스타에 따르면 미국의 뮤추얼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 중 절반은 자신의 펀드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사들도 말년에 치료 방법이 환자들에게 추천하는 방법과 매우 다르다고 한다.


이게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니다. 보편적 진리란 없다. 나와 내 가족에게 맞는 진리가 있을 뿐이다. 내 마음이 편하고 밤잠을 설치지 않을 수 있는 방식으로 체크하고 싶은 칸에 표시하면 된다.




나의 저축 전략


독립성은 늘 나의 경제적 목표였다. 최고 수익률을 추구하거나 레버리지를 이용해 초호화 생활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 두 가지는 친구들에게 잘난 인상을 주려고 하는 게임처럼 보이고, 모두 숨은 리스크가 있다. 그냥 매일 아침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잠을 깨고 싶을 뿐이다.


내 아버지는 나이 마흔에, 자녀가 벌써 셋일 때 응급실 의사가 됐고 검소하게 살며 저축을 했다. 그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20년을 보냈고, 그만하면 됐노라 결심했고,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 일은 늘 내 마음에 남았고, 언제든 준비가 되었을 때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내 뜻대로 내가 하는 일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모든 경제적 목표라고 생각했다. 몇 번 언급했듯이 원할 때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그 목표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월급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대치를 낮추고 내가 가진 것보다 낮은 수준의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독립을 좌우하는 것은 저축률이고, 저축률을 좌우하는 것은 생활양식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월급은 올랐지만 욕구가 크게 바뀌지 않았기에 저축률은 높아졌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위해 양보한 것이 없다. 산책, 독서, 팟캐스트 등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낮은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때의 혜택은 주위 사람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끝없는 심리적 압박에서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심 탈레브는 '진정한 성공이란 극심한 경쟁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와 내 활동을 마음의 평화에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집을 구매할 때 굉장히 저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출을 이용하지 않고 내 집을 소유하는데서 오는 독립적인 기분은 값싼 대출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은 일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돌발 변수가 더 많아질 것에 대비해 저축한다. 비용을 대려고 어쩔 수 없이 주식을 파는 일이 없다면 보유한 주식이 최대한 몸집을 키울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찰리 멍거는 '복리의 첫 번째 규칙은 절대로 쓸데없이 손대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보유한 주식은 모두 저비용 인덱스펀드이다. 나는 저비용 인덱스펀드에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계속 투자하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시장 수익률을 능가하려고 시도하는 데서 비롯되는 추가적인 리스크를 굳이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입이 생길 때마다 인덱스펀드에 투자한다. 정해진 목표 금액은 없으며, 동일한 펀드에 은퇴자금을 최대치까지 투자하고, 아이들을 위해 세제 혜택을 받는 학자금 저축에 일정액을 적립한다.


나의 신념 중 하나는 '투자 노력과 결과 사이에는 상관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꼬리 사건이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투자에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전략을 크게 좌우할 두세 가지를 놓치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두세 가지를 잡는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나의 투자 전략은 그저 “높은 저축률, 인내심, 세계 경제에 대한 낙관적 시각”에 의존한다. 투자를 위한 노력의 사실상 거의 전부를 이 세 가지를 생각하는 데 쏟고 있다. 특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앞의 두 가지, 저축률과 인내심에 말이다.


앞으로도 투자 전략을 바꿀 수 있겠지만 목표는 항상 독립성이고, 밤에 깊이 잠들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이것이 나의 최종 목표이다. 돈의 심리학에 통달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그리고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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