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제가 있었다. 건축을 했던 아버지를 따라 둘 모두 창작하는 직업을 선택한다. 동생의 이름은 박찬욱.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그에게는 형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박찬경. 본업은 미디어 아티스트에 가깝지만 영화계에도 <만신>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다만 코엔 형제 등이 처음부터 함께 일을 해왔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함께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박찬경, 박찬욱이라는 나누어진 이름이 언젠가 합쳐지게 되는데, 이를 PARKing CHANce라고 정했다. 파킹 찬스의 주요 작업물인 단편 영화들을 소개한다.
둘의 첫 작품 <파란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폰 4만으로 찍었다. 오프닝부터 범상치 않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펄떡펄떡 뛰는 듯한 공연으로부터 시작하는 영화는, 의문의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오광록과, 그 낚싯줄에 걸린 이정현으로 전환되며 이야기가 진전된다. 어느 날 밤의 물귀신 이야기인 듯했던 <파란만장>은, 그 밤의 강가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과 오광록의 가족,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스마트폰이기에 다소 떨어지는 화질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만의 거칠고 뿌연 화면이 작품 배경의 분위기를 심화해준다.
https://youtu.be/HH2Le341kB4 - <고진감래>
씨네21 디지털 창간호 홍보용 <오달슬로우>, 코오롱 스포츠의 후원을 받은 <청출어람>을 지나 서울시와 함께 작업한 <고진감래>가 등장한다. 이는 2013년 3달 간 서울시민들이 직접 찍은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상을 받아 이에 대해 시상도 하고, 결과적으로 이들을 모두 엮어 서울이라는 도시에 관한 영화를 탄생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박찬욱이 "아름다움만 담긴 홍보 영상은 다 거짓말"이라고 했듯이, <고진감래>가 마냥 밝고 세련된 서울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고진감래>는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성매매 지역도 서울이고, 전쟁 때 피난 가던 모습도 서울이었으며, 시위대에게 물을 뿌려대는 모습도 서울이라고 이야기한다. 11852편의 영상을 제보받아 만들어 어떤 면에서는 공공미술적인 성격도 갖는 이 영화는 단순히 서울시 홍보 영상으로서의 기능을 넘어서서 한국이라는 사회, 이를 이루는 우리의 이야기로 스스로 확장한다.
<격세지감>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돌아본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은 일종의 미니어처로 제작되고 그 안의 인물들은 마네킹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적인 화면에서 관객이 집중하는 것은 해당 장면에서 흘러나왔을 목소리다. 남북이 대립하는 와중에 인간적 우정을 키워나갔던 오경필, 이수혁, 정우진, 남성식을 기억하는 그 목소리들은, 그러나 그들이 마주쳐야만 했던 엄혹한 현실 또한 기억하라고 요구한다. <격세지감>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공식적 후속편이라기엔 애매하지만, 9년 간의 극한 대립 이후의 2017년의 시대가 불러낸 회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작 <반신반의>는 드라마를 보다가 적발되어 간첩 행위를 강요받은 인물의 실화를 다뤘다. 남측에서는 인터넷 방송을 하다가 북측으로 귀환해 방송에 출연하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냉전 논리 틀 안에서의 개인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어두운 운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ACC 포커스로 파킹 찬스가 선정되어 제작되었는데, 해당 전시에서도 남북의 취조실 세트가 설치되어 이념적, 역사적으로 완전히 반대편에서 대립각을 세운 둘을 오가야만 했던 인물의 상황을 관객 스스로 실감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