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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덕수 Jul 07. 2016

알통학과? 섹스학과! 무슨 대학?

'하고 싶은 일'이 모두 과목이 되는 학교

알통학과, 섹스학과, 죽음학과, 행복학과, 맥주학과, 고기학과, 자랑학과, 개드립쳐볼과...

대학에 이런 수업이 있다면 어떨까? ‘설마 진짜로 이런 수업이 있겠어?’라며 의구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과목들이 현실에 존재한다. 바로 열정대학의 과목들이다.


알통학과가 과목으로 올라왔을 때 나는 ‘이번에 알통 만드는 운동 과목이 하나 생겼구나!'라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과목을 클릭했다. 하지만 아뿔싸… 알통학과는 유럽의 유명 철학자 알랭드 보통의 책들을 공부하는 학과였다. ‘외국 철학자의 책만 공부할 거냐?’라며 따지던 학생들이 강철학과를 만들기도 했다. 짐작했겠지만 강신주의 책들을 공부하는 학과다. 이 외에도 다양한 맥주를 공부하고 마셔본다며 세미나실을 술 냄새로 진동하게 만든 맥주학과, 마장동 축산시장을 방문하고 고기를 드라이에이징하겠다며 고기를 썩게 만든 고기학과, 심지어 개드립을 쳐보는 개드립쳐볼과도 있었다. 개드립이라니!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운영하니 이런 센스 넘치는 과목들이 가능해진다.

*개드립:디씨인사이드 코미디갤러리에서 태생된 단어로서 순간적인 재치를 뜻하는 애드립을 비꼬아 부르는 말, 쇼버라이어티 시청자들에게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애드립을 뜻한다(N사 국어사전)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된 '댄스배틀 플래시몹'


유명 포털사이트에 열정대학을 검색하면 황당하게도 ‘섹스’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의도 한 건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바로 ‘섹스학과’ 때문이다. 금기의 영역이라 불리는 섹스도 열정대학에서는 과목으로 만들어 공부할 수 있다. 게다가 남녀 모두에게 초인기과목이다.


지금 열심히 성교육전문가로 성장하고 있는 석원이를 만난 지도 2년이 지났다. 첫 만남이었지만 한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정말 멀쩡하게 생겼는데 자기소개부터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깐따삐야! 엔젤미남 이석원입니다!”

깐따삐야도 충격인데 스스로를 엔젤로 칭하다니 참으로 재밌는 학생이었다. 자신의 꿈이 레크레이션 강사라고 했는데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개월이 지나고 한 술자리에서 여자들과 잘 어울리는 석원이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석원아, 너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섹스전문가 하는 게 어때?”

그 말을 던지자마자 내 머릿속에 스파크가 일었다. 돈은 불편한 걸 해결해 줄 때 벌게 된다. 나는 여태껏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인생에서 섹스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이렇게 재밌는 친구가 또래들과 공감하며 성교육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석원이는 이미 자신의 일이었다는 듯 흔쾌히 성교육으로 자신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선 섹스학과를 만들었다. 잘 모르니 함께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때마침 출간된 세계적인 성교육 베스트셀러 ‘인간과 성’이라는 책도 추천해주었다. 이런 학과가 존재하는 학교라면 더 없이 열정대학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석원이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했다. 이곳 내에서도 오해와 편견이 많았지만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갔다. 다행히 알랭드 보통이 인생학교라는 타이틀로 인생에 중요한 6가지 주제를 책으로 냈는데 그중에 섹스가 있었다. 권위적이었지만 따지는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조용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시작 후 나와 석원이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부모님께 어떻게 이 얘기를 하는가!’였을 정도다.

“어이구 우리 아들, 석원아. 요즘 너무 행복해 보이네. 열정대학에서 뭐 공부하고 다니니?”

“엄마…”

물론 지금은 괜한 고민이었을 만큼 누구보다 열렬한 지지자가 되셨다. 진심은 언젠가 통하기 마련이다.


1년이 지나자 가르쳐보라고 했다.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공부 방법이라고 했다. 설명할 수 없으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또 열심히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외활동도 모두 성교육으로 진행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석원이 덕분에 콘돔 회사에서도 대외활동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구성애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교육프로그램도 이수했고 블로그도 열심히 운영했다.


그러다 작년 말에 한 단체에서 나에게 강연 섭외 요청이 왔다. 전보다 몇 배가 많은 강사료를 받게 되었다. 마음이 들떴다. ‘이제야 세상이 나를 알아봐 주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뿌듯함을 즐기던 찰나 석원이한테 연락이 왔다.

“쌤! 저 강의하게 되었어요. 강사료가 무려! 놀랍죠!”

나보다 더 많이 받았다. 제자가 잘 되니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요즘 석원이는 각 종 팟캐스트 출연, 웹툰 참여, 강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아직은 채울 나이니 채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흔히 ‘과’가 붙으면 전공이고 그렇지 않은 과목들은 선택과목이 되는데 선택과목은 더욱더 다양한 과목들이 많다.


일부만 적어보자면,

열대썰전, 복면가왕, 꿀피부를위한화장품고르기, 핸드메이드, 오행일기, 플래시몹, 단편영화제작, 벚꽃보러갈래요?, 임종체험, 독도에가다, 님을그리다, 디저트카페투어, 이탈리아음식원정대, 본격꿀잼취미운동, 나도손글씨잘쓰고싶다, 댄스으리, 이런주간지도읽어볼래?, 목련화랑딱하루만놀래?, 역사섹남녀, 잡동사전, 하루5분명상, 지대넓얕, 플리마켓, 나만의화보, 그남자그여자라는 과목도 있었다. 21일 후에 죽는다는 것을 가정하고 살아보자며 잘하고 있던 알바를 때려치우자는 D-21이란 과목도 인상 깊다.


민영이가 뉴질랜드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한 직후 나에게 카톡으로 전송해준 사진


심지어 ‘주량측정하기’라는 과목도 있었다. 20대 초반의 여학생이었는데 평소 술을 마시고 꽐라가 되는 학생들이 너무 꼴보기 싫어서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평생 안마실 수는 없는 일이니 자신의 주량을 측정하고 싶다며 과목을 개설했다. 시간이 지나 후기를 확인했는데 그날이 너무도 생생했다.


밤 12시. 부모님이 잠드시고 난 후 냉장고에서 소주 2병을 꺼냈다. 안주로 두부와 간장도 준비했다. 마침내 한 잔씩 들이키기 시작했다. 종이와 펜을 준비해 마시는 동안 느낌을 적기 시작했다. 이윽고 1병째에 다다르자. 글씨가 꼬부랑거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붕 떠있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제 주량은 소주 한 병입니다.”


이렇게 후기가 끝났다. 앞으로 이 학생은 소주 한 병까지는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주량을 알게 되었으니 웬만하면 실수도 하지 않을 것이다. 수학에 관심도 없는 학생에게 미적분이 중요할까? 자신의 주량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할까?


열정대학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과목으로 개설할 수 있다. 물론 범죄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게 왜 범죄인지 공부하고, 의문을 품는 것은 과목으로 만들 수 있다. 한 학기 3개월 동안 많게는 100여 개가 넘는 과목들이 만들어지고 앞으로 규정을 보완해 더 많은 과목들이 이뤄지게 할 참이니 가히 버킷리스트의 디즈니랜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나이 서른, 나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매년 성장하던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3개월 등록금 5만 원, 50여 명의 학생들. 재정적으로 보더라도 3개월 매출이 250만 원뿐인, 지금과 같은 대학이 될 거라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열정대학에 몸을 던졌다. 결혼도 하고, 나이도 서른이 넘었지만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라며 과감히 첫 발을 내디뎠다. 그냥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리고 이런 학교가 대한민국에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한다.’



열정대학 스토리


프롤로그(Prologue)

1. 가짜 대학을 만들다

2. 알통학과? 섹스학과! 무슨 대학? : '하고 싶은 일'이 모두 과목이 되는 학교


Part 1 20대, CEO에 미치다

3. 라이프워크를 만나다 : 자신의 일생을 걸고 쫓아가야 할 테마

4. 명함은 나의 첫인상이다 : 저는 유덕수닷컴의 CEO 유덕수입니다

5. 벽은 내 마음이 만든다 : 돈이 없어도 비싼 세미나를 가는 방법



열정대학 바로가기 : http://www.passioncolle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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