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할 영화의 범죄는 2015년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 '몸 값'입니다. 14분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14분 내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호흡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러닝타임 내에서의 배우들 간 호흡이 원테이크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가평의 한 모텔에서 펼쳐지는 원조교제 장면이 나옵니다. 돈봉투를 들고 나타난 구매자 남성은 소녀에게 처음이 맞는지, 처녀막이 있는지의 여부를 재차 확인합니다. 그제야 소녀는 사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손으로 자신을 추행하여 처녀막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남성은 말합니다. "그럼 100만 원을 주기는 어렵고, 17만 원으로 하자." 여기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몸 값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추측컨데 아마 소녀의 몸 값은 100만 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녀막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로 100만 원은 17만 원이 되어버립니다. 구매자 남성은 의심을 놓지 않고 다른 질문을 이어갑니다. 소녀는 어느 학교에 다니냐는 질문에 자신이 입고 있는 교복의 학교 이름과는 다른 학교 이름을 말하며 구매자 남성의 의심은 점점 더 커집니다. 고등학생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17만 원은 7만 원으로 떨어졌습니다. 다소 험악해진 분위기에 소녀는 겁먹을 법도 하지만 실소를 멈추지 않습니다. 7만 원이어도 몸을 팔겠느냐는 남성의 말에 소녀는 돈이 필요하다며 먼저 씻고 오라고 대답합니다. 남성은 7만 원 중 3만 원을 선금으로 소녀에게 준 채로 화장실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영화의 첫 번째 전환이 일어납니다. 다른 구매자와 통화를 하며 소녀가 올라간 옥상에는 원조교제를 하는 것으로 예측되는 장부를 관리하는 마담과 수많은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재잘재잘 떠들고 있습니다. 답답한 가발을 벗고 더벅머리를 한 소녀는 다시 남성과 있던 방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까 남성이 가지고 온 돈 보다 훨씬 더 많은 돈다발을 들고 앉아있습니다. 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경매를 시작합니다. "아시겠지만 저희는 현금으로만 거래가 이루어지고요, 순서대로 각막, 심장, 폐, 신장으로 할게요.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영화는 두 번째 전환을 보여줍니다. 남성이 들어간 화장실은 이미 수술실로 변해있었고 수술대에 묶여 발버둥 치며 눈 쪽에 메스가 닿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범죄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매춘과 인신매매입니다. 매춘 중에서도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매춘은 그 죄질이 더 무겁습니다. 영화 안에서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몸값에 주목하게 됩니다. 영화에서 구매행위가 일어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소녀의 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성의 신체기관들입니다. 매춘은 그 구조에 있어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개념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서 소녀의 처녀성과 나이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 이후에 소녀의 성에 대하여 책정된 가격을 계속해서 감가상각 됩니다. 만약 우리가 취업시장에서 자격증이나 이력에 대한 허위의 정보를 기재하여 후에 이 사실이 발각될 시에는 취업시장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매춘을 통해 성을, 몸을 판매하면 돈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노동력을, 몸을 판매하면 돈을 받습니다. 영화 속 남성은 자신의 신체기관을, 몸을 판매해서 돈을 받습니다. 물론 영화의 경우 남성은 죽을 예정이기 때문에 그 돈을 수령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남성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체 일부를 판매하고 그에 대한 돈을 받게 된다면, 이 또한 노동일까요? 몸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은 비슷하지만 우리는 왜 매춘이나 장기매매를 노동으로 취급하지 않는 걸까요?
범죄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매춘의 역사와 여러 가지 원인론, 그에 따른 법제화의 순으로 논하여야겠지만 오늘의 논의에서는 범죄학적 접근보다는 조금 더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날 것의 언어로 이야기를 전개하자면 우리가 매춘이나 장기매매를 노동으로 정의하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서 인간은 자아를 가진 하나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고깃덩어리.. 정도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도축되는 가축 정도로 취급한다고 생각하면 좀 더 빠르게 와 닿을까요? 매춘이나 장기매매 안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은 전혀 없습니다. 자유의지와 같은 단어들은 너무나 과분한 개념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논점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매춘이나 장기매매를 했을 경우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인데 타인이 나의 자유의지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고 나를 움직이는 하나의 몸뚱이, 움직이는 인형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으신가요?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타인이 나를 도축장의 가축이나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반려동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느낀다면 말이죠. 오늘의 논의는 어쩌면 철학을 넘어 윤리적인 관점으로 주제에 접근한 것 같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우리는 윤리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과 논의는 다음 글에서 이어 쓰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