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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담화

믹스커피 한 잔의 온기를 빌려
계절을 받아들이기

아직은 나를 찾는 곳이 있고, 몰입하면 즐거운 일이 있다는 것이 좋다

by 교실밖

오늘 아침 우리 동네 기온은 섭씨 2도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늦가을의 여운 같은 햇살을 즐겼는데 오늘은 손끝이 제법 시리다. 계절의 변화는 거짓말처럼, 한마디 예고도 없이,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온다. 달력의 날짜보다 피부가 먼저 알아챈다.


코끝을 스치는 찬 공기에 생각이 잠시 멈춘다. 뜨거웠던 여름의 소란도 가라앉고, 높다란 가을 하늘도 산 넘어 저편으로 사라지고 나면 묘한 고요만 남는다. 낮게 깔리는 적막함은 무언의 안도감과 다시 닥칠 고독을 예고한다. 가을은 지나가고, 떠오르는 것도 없이 무엇인가 채비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종일 따라다닌다.


일주일 넘게 서재방을 정리했다. 오후에 서재 창가에 앉아 믹스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다. 사람들은 어두운 색의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저런 옷은 사람의 말수를 줄어들게 한다. 어딘가 서둘러 걸어가는 사람 뒤로 또 한 사람, 잠시 후에 또 한 사람...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초겨울이다. 온갖 번잡했던 생각도 한 겹씩 접혀 들어간다. 그걸 따라 마음의 모서리가 둥글어졌으면 좋겠다. 짧은 가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며 아쉬워하지만, 어쩌면 이 짧음이 우리를 살게 하는지도 모른다.


나이를 더하며 알게 되는 것은 지나가는 계절마다 붙잡을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잠시 멈춰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다. 그저 오늘 하루도 소소하지만 할 일이 있었고, 큰 소란 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오늘도 믹스커피 한 잔의 온기를 빌려 계절을 받아들인다. 아마 작년 이맘때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뭔지 모를 아쉬움과 허무, 그리고 다가올 어떤 새로움에 대한 조용한 예감은 미세한 설렘으로 진동한다.


12월까지 이런저런 약속이 잡히고 있다. 아직은 나를 찾는 곳이 있고, 몰입하면 즐거운 일이 있다는 것이 좋다. 이제 예비교사들 만나러 갈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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