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세계를 바꾸려 하고, 행정은 세계를 관리하려 한다
30대 진보 정치인 조란 맘다니 뉴욕주 의원이 뉴욕시장이 됐다. 그가 뉴욕시에서 선 보이려고 하는 정치는 트럼프의 그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그는 핵심 공약으로 고물가에 시달리는 뉴욕 시민들의 생활 개선, 뉴욕시가 임대료 관리 권한을 가진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의 임대료 동결, 최저임금 인상, 무상버스, 무상보육 확대 등을 내걸었다. 그리고 당선됨으로써 현실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트럼프는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면서 “맘다니의 뉴욕시는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재앙이 될 것”이라며 뉴욕시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맘다니는 당선 직후부터 트럼프와 갈등을 겪게 됐다. 트럼프는 젊은 정치인의 성장을 노골적으로 방해할 것이다. 물론 이는 맘다니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그가 현재 미국사회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이상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숙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 시민들이 트럼프의 일방주의에 맞서는 대안을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맘다니가 '가치 대 실용'이라는 프레임에 포획됨 없이 자신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정치와 행정을 지켜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옳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대중을 쉽게 피로에 빠지게 한다. 사소하더라도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변화를 계속 입증해 나가는 것, 그것이 결과적으로 극우 혹은 일방 패권주의에 맞서 자신을 비교 우위에 서게 만들어줄 것이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런 일에 '최적화'돼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는 옳은 가치를 주장하기보다 실천으로 입증하는 것이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시장, 도지사, 그리고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실천적으로 체화하였다. 이는 현재 한국의 운동 세력에게도 적지 않은 과제를 던진다. 운동의 열망을 행정의 문법 안에 새겨 넣는 일은 내가 할 테니, 행정의 실행을 운동의 원칙으로 다시 점검하는 일은 당신들의 몫이라 말하는 듯하다.
정치는 늘 두 언어를 두고 선택하거나 배제한다. 하나는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 가치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실행의 언어이다. 사회운동은 전자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시민을 설득하는 데 비중을 둔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방향을 확인하고, 공감과 연대의 에너지를 나눈다. 그러나 행정은 후자의 세계다. 말하는 것보다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치는 이 두 층위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균형을 요구받는다.
운동에서 출발한 이들이 행정으로 들어서면, 처음에는 ‘가치가 흐려지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따라붙는다. 명분을 앞세우던 언어가 어느 순간 절차와 예산, 제도와 규정의 언어로 바뀐다. 그러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을 더 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했던 것을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과정에서 확인된다. ‘옳다’고 말하던 것을 ‘가능하다’로 만드는 일. 이것이 행정이 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다.
시민들은 거대 담론보다 작은 변화를 통해 체감한다. 국가 경제가 추구해야 할 방향보단 당장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동향, 바람직한 대학입시 정책보다 내 자녀의 수능 등급, 출퇴근 시간에 내가 겪는 피로감, 동네 도서관 운영 시간 연장 같은 것들이다. 정치가 생동감을 가지려면, 시민의 일상을 섬세하게 읽고 그 세계에 접촉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물론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행정은 방향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방향은 여전히 운동과 가치에서 온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이 변화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희미해질 때, 행정은 효율과 숫자의 세계로 빠진다.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행동의 근거가 되는 질문을 꾸준히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단지 구호로만 남지 않도록, 구체적 삶의 차원에서 시행착오를 감내하며 실천을 이어가는 일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 사이의 긴장을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들의 영역이다. 운동이 이상을 밝히고, 행정이 그 이상을 땅 위에 내려놓는다. 이 둘을 동시에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언제나 이 두 세계가 서로를 잊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가치의 언어를 품고, 생활의 언어로 증명하는 것. 그 길 위에서 비로소 정치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 운동은 세계를 바꾸려 하고, 행정은 세계를 관리하려 한다.
각자 자기 몫에 충실하되, 양자의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실제 시민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 데 있어 전제 조건이다. 나에게도 짧지만 전직 초기에 정체성의 혼돈 시기가 있었다. 행정은, '이것이 옳아'라고 설득하는 대신 그것이 당신의 삶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맘다니가 구사하는 언어가 신선한 까닭은, 정치의 문법을 '주장'에서 '약속'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가령 "불평등과 싸우자" 대신 "공정함을 함께 세우자", "도시를 되찾자" 대신 "모두를 위한 공간을 만들자"라고 말하는 것, 이러한 과정은 대결이 아닌 관계를 정치의 토대로 삼는다. 결과적으로 핵심 지지층은 견고해지고, 지지의 저변은 확대한다.
약속의 언어는 검증 가능하다. 실행되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다. 선언은 반복될수록 공허해지지만, 약속은 반복될수록 신뢰를 쌓는다. 행정가형 정치인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그들은 말을 남기는 대신 지표를 남긴다. 수사가 아니라 결과로 설득한다. 앞으로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
커버 이미지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5/jun/21/zohran-mamdani-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