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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이야기

멈추지 못하는 학교
- 입시가속체제와 시간주권

누가 학교의 시간을 설계하며, 누가 그 시간을 살아가는가

by 교실밖


지난달 말에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정용주 교장을 초청하여 그가 최근에 발표한 저서 <멈추지 못하는 학교>에 대한 저자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 글은 행사를 진행했던 입장에서 밝히는 독서 후기이자, 동료 학습자에게 보내는 연대의 표현이다.


정용주의 <멈추지 못하는 학교>는 한국 교육을 지배하는 구조적 조건을 '입시가속체제'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저자는 학교를 단순한 제도적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기획하는 '장(場)'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시간'은 일정표와 종소리의 단순 총합이 아니라, 존재의 리듬을 규정하는 정치적 장치로 작동한다.


학생과 교사, 학교조직은 모두 이 장치에 의해 속도를 부여받고, 가속은 일상화하여 삶의 감각이 소진(消盡)의 형태로 변한다고 본다. 저자는 한국의 학교가 '멈출 수 없기에 계속 달리는' 기묘한 시스템이며, 그 속에서 교사와 학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구성할 권리, 즉 '시간주권'을 상실해 왔다고 진단한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감탄했던 대목이기도 한데, 이 책의 가장 큰 덕목은 저자의 방대한 독서 이력에서 비롯한 풍부한 논지의 전개다. 하르트무트 로자의 가속이론, 한병철의 피로사회론, 들뢰즈의 정동 이론 등 현대 사회이론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교직 현장의 구체적 경험과 결합하여 학교의 현재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여러 이론들과 접목하여 학교가 왜 '가속될 수밖에 없는가'를 다층적으로 추적한다.


입시는 단지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교실의 일과, 학부모의 기대, 교사의 노동, 교육행정의 평가 체계를 관통하는 '속도 코드'로 작동한다. 특히 성취기준 중심의 수업 압박, 고교학점제에 따른 행정 업무의 팽창, 교사의 자기 연출성 강화 등을 구체적 사례로 들며, 학교가 배움의 공간이라기보다 시간을 점유하고 분배하는 통치 기구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물론 과거에 비하여 학교 구성원의 자유도가 높아진 측면이 있지만, 학교를 흐르는 가속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더 속도를 붙여온 것이 사실이다.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서 배워야 한다고 느낀 부분은 저자가 초등학교 교장이라는 입장에서 이론과 실천을 넘나드는 교육학적 논증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학술적 비판에 머물지 않고, 학교 현장의 일상적 장면들, 가령 아침 조회, 교무회의, 학부모 상담, 수업 참관 등을 통해 입시가속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생하게 드러냈다. 이는 현장 관리자로서의 경험이 없다면 포착하기 어려운 통찰이며, 이 책이 단순한 교육비평을 넘어 새로운 개념과 언어를 정리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시간주권'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이다. 저자는 이 주제를 끈질기게, 거의 집요하다 싶을 만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학교를 바꾸기 위해서는 커리큘럼의 개선이나 입시제도의 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누가 시간을 설계하며, 누가 그 시간을 살아가는가'이다.


여기서 시간주권은 단순히 쉬는 시간을 늘리거나 행정 부담을 줄이라는 요구가 아니라, 교육의 목적과 리듬을 다시 세우는 교육적 선언이다. 저자는 이를 실천적 개념으로 확장하면서 '느린 학교'라는 모델을 제시한다. 느린 학교는 관계, 감응, 심리적 여백, 숙의, 공동체적 시간감을 중시하는 학교이며, 자율적 리듬과 성찰적 학습이 가능한 학교를 뜻한다.


이 책의 빼어난 논리 전개와 진술 방식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하나는 구체적 문제 지적과 추상적 대안의 반복과 중첩이다. 저자는 입시가속체제 아래 진행되는 정책, 행정, 교육과정, 수업, 평가를 비판하면서 이에 대한 극복의 방편으로 한결같이 '감응'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 감응하고, 교육과정이 학생의 삶에 감응하며, 학교가 지역사회와 감응해야 한다는 주장한다.


멈추지 못하는 학교, 정용주

감응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정동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분명 교육적으로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 개념이 구체적 교육 현실과 만나 어떻게 실천으로 전환될 것인가를 제시하는 대목에서는 힘이 부치는 아쉬움이 있다. 예컨대 시간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사 업무 구조의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한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현실 가능한 제도적 변화에 대한 제안은 다소 약하게 기술된다. (물론 이 제안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지만)


이 같은 반복과 중첩이 저자의 역량 부족에서 비롯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나와 같은 학교 현장과 정책을 동시에 경험했던 자들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 과제를 떠올리며 하는 반성이기도 하다. 책의 여러 곳에서 공동 책임의식과 이에 따른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는 고백을 덧붙인다. 그 반성의 시간이 길어져 책을 받은 지 꽤 됐지만 독서 후기가 늦어졌다는 점도 양해를 구한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 '감응'하는 수업'에 대한 저자의 요청은 백 번 옳지만 그것이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이어지는 수업 구조, 성취기준 평가 체계, 학부모의 입시 압박, 교육청의 장학 지도가 교차하는 실제 교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숙제로 남겨진다.


또한 느린 학교 모델이 현행 국가교육과정 체제, 대학입시 구조, 학교 회계 시스템과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로의 제시도 다소 아쉽다. 일반학교를 가속학교, 미래학교를 초가속학교, 혁신학교를 느린 학교를 지향하는 실험적 체제로 보았는데 부분적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일반화하기에는 무리다. 왜냐하면 혁신학교 중에도 가속의 성격을 갖는 정책이 있고 미래학교에도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술 구조상으로도, 가속의 문제를 분석하는 장과 느린 학교를 이야기하는 장 모두에서 동일한 비판 문맥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가속사회·입시체제·시간 압박에 대한 서술이 여러 장에 걸쳐 중복 재현되면서, 문제의식은 선명하지만 논증의 밀도가 다소 느슨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 결과, 가치지향적 대안의 제시에 대응하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이유로 정책 입안자나 학교 관리자는 "이 문제를 내일부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멈춘다. 물론 이 글이 당장의 쓸모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입시가속체제와 시간주권이라는 개념 이해에 일차적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문제제기는 욕심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던진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교육 담론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집중해 왔지만, 정작 '누가 시간을 지배하는가'라는 권력의 문제는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저자는 입시 중심 구조와 기술 가속의 조건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날카롭게 드러내며, '시간주권'이라는 개념을 한국 교육학의 언어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개념의 선도적 적용은 향후 교육정책의 평가 기준으로, 학교 혁신의 방향타로, 교사 노동 구조 재설계의 원칙으로 작동할 잠재력을 갖는다는 생각한다. 이 책은 현장 교사에게는 자신의 소진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틀을, 교육정책 연구자에게는 새로운 분석 도구를, 학교 관리자와 교육행정가에게는 제도 설계의 근본 질문을 제공한다.


완결된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그 한계 자체가 우리의 다음 과제라는 점 역시 명확하다. 이 책의 문제의식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과제와 해결책들이 풍부하게 토론되기를 기대한다. 정용주의 '멈추지 못하는 학교'는 그 토론의 출발선에 우리를 세우고 있다. 오랜만에 좋은 글을 읽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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