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마침내 교육부 해체의 첫 조치를 실행에 옮겼다. 이는 그의 공약이 선동 단계를 넘어서 실제 정책 단계로 진입했음을 뜻한다. 미국 교육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연방 차원에서 교육 기회를 확장하고, 저소득층, 이민자, 장애 학생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안전망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교육부를 '좌파 엘리트주의의 본산'이라 규정하며, 연방 정부의 개입을 가능한 한 축소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이번 조치는 그 정치적 신념과 이념적 방향이 행정 구조를 흔드는 방식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트럼프 진영이 교육부 해체를 주장하는 이유는 미국 보수 정치의 뿌리 깊은 바람과 직결돼 있다. 공화당 내부에는 오랫동안 "교육은 주와 지역이 결정할 문제이며, 연방은 불필요한 간섭을 하고 있다"라는 시각이 존재해 왔다. 여기에 최근 미국 공교육을 둘러싼 정체성, 역사 교육 논쟁, 이른바 '문화전쟁'이 격화되면서, 교육부는 보수 진영이 겨냥하기 좋은 정치적 표적이 되었다. 트럼프는 교육부를 '진보적 가치 확산의 본거지'로 묘사했고, 해체 작업은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문화 전선에서의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행동이다.
이번 조치가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가 교육부를 정면으로 폐지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알고 '행정적으로' 우회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이 부처를 직접 없애려면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 절차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교육부가 담당하던 기능을 여러 부처로 분산하는 '해체를 향한 단계적 이관 전략'을 취하고 있다.
초·중등 학업지원, 대학 진학 확대, 취약계층 지원 등 교육부의 핵심 기능들은 노동부로 넘어가고, 외국인 유학생 관련 프로그램과 국제 교류 사업은 국무부가 맡게 된다. 원주민 교육은 내무부로, 대학생 부모 대상 보육 지원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게 된다. 심지어 1조 6천억 달러 규모의 학자금 대출 관리 업무마저 향후 중소기업청으로 이관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는 교육부의 뼈대를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켜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절차라 할 수 있다. 이름은 남아 있되, 핵심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조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개편이 현실화할 경우, 가장 먼저 나타날 문제는 교육 행정 전반의 '조정력 상실'이다. 교육은 본래 노동, 복지, 이민, 문화, 보건 등 여러 정책 분야와 맞닿아 있고, 그만큼 복잡성을 내포하는 영역이다. 이를 총괄하고 균형 있게 조정하는 기능이 사라지면, 정책은 각기 다른 부처의 이해관계 속에서 파편화하고 책임 소재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취약 계층을 위한 연방의 보호 장치가 약화되며, 농촌 지역과 저소득층 학생들이 먼저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연방 지원금'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흔들릴 때, 공교육은 지역의 경제력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는 방향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미국 내부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보수 진영은 "연방의 간섭이 사라지면 지역 단위 교육 자율성이 강화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리에게도 기시감으로 다가오는 보수 진영의 '작은 정부 지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조치에 따라 교육부의 기능을 분산 배치하면, 통합의 필요가 생겼을 때 훨씬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교사단체, 교육 시민단체, 일부 주정부는 강하게 반발한다. 미국 최대 교사 노조인 NEA는 "학생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을 빼앗는 조처이며, 결국 그들의 미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 공립학교 재정의 약 10%는 연방 지원금에서 나온다. 연방의 뒷받침이 사라지면, 지역 간 격차와 불평등은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미국에서 교육부 폐지론이 등장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 교육부가 독립부처로 승격된 이래,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는 여러 차례 교육부 폐지를 주장해 왔다. 교육부의 정책이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지속적으로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교육행정 구조가 지역교육구에 지나치게 분산돼 있는 탓에, 연방 교육부는 강력한 집행력이나 통합적 대책을 구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연방이 내놓는 정책은 늘 정치적으로 흔들렸고, 교육은 정권 교체 때마다 이념 전쟁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이 같은 누적된 불신이 결국 '교육부 무용론'을 반복적으로 소환한 배경이 된다.
이는 우리에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한국 역시 교육부의 조정 기능 부재, 정권별 정책 급변, 교육 불평등 완화 실패 등의 문제를 겪어왔다. 이러한 구조적 피로감 속에서 장기적 국가교육 비전을 세우겠다며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국교위 또한 명확한 권한과 실행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누가 교육의 중심 조정자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반복되는 이슈다. 이런 까닭에 트럼프의 교육부 해체는 미국 내부의 정치적 사건을 넘어, 우리에게도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교육부는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조직하고 지역 간, 세대 간 불평등을 조정하는 핵심 축이어야 한다. 역으로 말하면 이런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언제든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해체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저출생 및 교육 격차 문제, AI 시대 교육 대응, 교원 역할 강화, 디지털 환경에서 공교육 공공성 강화 등 한국이 직면한 문제는 그 어느 하나도 다른 부처로 흩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바, 주문이 크면 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실망이 배가한다. 이는 교육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공교육의 공적 책임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부가 본래 수행해야 할 역할 - 신뢰성 있는 교육 비전 제시, 교육 불평등 완화, 미래역량 지원, 디지털 시대 공적 규범 정립 -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구조를 재정립하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진영 논리를 넘어 한국의 교육 공동체는 트럼프의 조치에서 교육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어떤 혼란이 발생하는 지의 적나라한 사례를 보고 있다. 나는 지난 글에서 필요한 개혁을 적시에 이행하지 못할 경우 그 후과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어느 분야든 정책, 인사, 조직, 예산은 논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깊이 연계돼 있다.
즉 정책을 세우고 이에 따란 예산을 편성하며, 이를 수행할 조직 체계를 정비하고 여기에 맞는 인사들을 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때를 놓치면 점점 더 힘들어진다. 정부의 성향과 무관하게 지난 시기에 해왔던 여러 정책들은 관성과 경로 의존성을 갖는다. 개혁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불협화음과 반발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마침 미국에서 교육부 해체라는 수순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간에 우리는 이 사건을 단순한 뉴스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교육이, 특히 교육부가 어떤 방향을 향해 스스로를 재설계해야 하는지 묻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