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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비평

교실 속 '안전 지상주의'의 역설

CCTV: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의 상실을 기술로 덮으려는 게으른 해결책

by 교실밖

지난 11월 27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학교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의 내용 중에는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세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 있다. 복도나 사각지대 등에는 CCTV 설치를 의무화하되, 가장 민감한 공간인 '교실'은 필수 설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문제는 단서 조항인데, 학교장이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면 교실 내에도 설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법적으로 '학교 구성원에 의한 자율적 결정'을 표방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실 내 감시 장비 도입의 빗장을 여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교실 내 CCTV 설치에 대한 요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일부이긴 하지만 이미 설치· 운영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 학교 폭력의 은밀한 징후를 포착하여 학생의 안전을 담보하고, 교권 침해 사안에서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며, 나아가 교육 활동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학부모는 내 자녀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어 하고, 일부 교사들조차 억울한 민원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디지털 목격자'를 두는 편이 낫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과연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길인지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살펴볼 여지가 있다.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저서 <불안 세대>에서 교육 현장을 지배하는 '안전 지상주의(Safetyism)'를 경계하자고 말한다. 안전 지상주의는 안전이라는 가치를 신성시하여, 그 외의 다른 중요한 가치들 - 자유, 모험, 신뢰, 그리고 실패를 통한 배움 - 은 기꺼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논리다. CCTV 설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하이트가 지적한 안전 지상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다. '안전'이라는 절대 반지를 얻기 위해 '교육적 신뢰'라는 영혼을 기계에 넘겨도 되는 것일까.


아울러 학교의 과잉 사법화라는 문제가 교실까지 들어오는 현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는 본래 미성숙한 존재들이 모여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교육적 공간이다. 그러나 교실에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그곳은 잠재적 범죄 현장이자 법정의 전 단계로 전락한다.


교사의 교육적 훈육은 아동학대 여부를 판가름할 증거 자료로, 학생 간의 사소한 다툼은 학교폭력 심의를 위한 채증 대상이 된다. 모든 교육 활동이 '나중에 문제가 될 때를 대비한 방어 기제'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교사는 소극적인 방어자가 되고 학생은 감시당하는 수동적 객체가 될 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육 활동의 위축'과 '내면의 감시'다.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 개념이 무서운 이유는 감시자가 실제로 보고 있어서가 아니라,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수감자가 스스로를 검열하기 때문이다. 수업 장면이 녹화된다는 전제하에 교사는 논쟁적이거나 창의적인 수업 시도를 꺼리게 될 것이다. 교과서적인 지식 전달, 기계적인 중립성만이 안전한 선택지가 된다.


학생들 또한 자신의 행동이 기록된다는 압박감 속에서 정형화된 행동을 ‘연기’하게 될지 모른다. 이것을 과연 '학습 태도 개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는 규율에 길들여진 순응일 뿐, 자율적 도덕성의 함양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정보 보호와 인권 침해 우려는 기본적으로 전제된 문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학교라는 공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있다. 갈등이 생기면 대화와 화해보다는 CCTV를 돌려보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는 문제 해결의 외주화이자,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신뢰 상실을 기술로 덮으려는 게으른 해결책이다.


교실 내 안전은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의 단단한 신뢰 관계망 속에서 확보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시 장비의 증설이 아니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호할 실질적인 장치, 학교 폭력 사안을 사법적 잣대가 아닌 회복적 정의로 풀어낼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학교를 '소송의 장'이 아닌 '교육의 장'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교육 공동체의 회복은 교사, 학생, 학부모 등 학교를 이루고 지원하는 주체들의 높은 교양과 시민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감시 카메라가 없어도 신나게 가르치고 배우는 풍경을 상상하는 것은 이제 한가한 상상한 된 것 같아 이 문제를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다.


안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이 교육의 모든 목적을 압도할 때, 학교는 가장 안전하지만 가장 교육적이지 않은 공간이 될 위험에 처한다. 교실 내 CCTV 설치, 그것은 우리가 교육적 신뢰를 포기했음을 자인하는 슬픈 자화상이 될지도 모른다. 기계의 눈에 의존하기보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신뢰를 회복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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