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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비평

수능 영어 1등급 3.11%,
절대평가의 문제였을까?

절대평가든 상대평가든 그 제도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by 교실밖

올해 수능 영어 1등급 비율이 3.11%에 그쳤다. 영어 과목에 절대평가가 도입된 2018학년도 이후 9년 간 최저치이자, 이전 최저인 지난해(4.71%)보다도 1.6%p 낮은 수치다. 절대평가 과목에서 상위 등급 비율이 이렇게 낮아진 것은 이례적이다. 벌써 이 문제를 두고 '절대평가 제도의 실패'를 말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영어교육 관련 학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영어는 국어·수학과 함께 교육과정상 기초과목인데 영어만 평가 방식이 달라 학교 영어교육이 위축되고 있다"며 "동일 기초과목군의 수능 평가는 반드시 동일한 방법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어·수학도 절대평가로 전환하든지, 아니면 영어를 상대평가로 되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주장이다. 그동안 상당수 교육 전문가와 현장 교사들은 오히려 국어·수학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과도한 입시 경쟁과 사교육 의존을 완화하려면 상대평가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학회가 제시한 양자택일에서 진정한 교육적 대안은 후자(영어를 상대평가로)가 아니라 전자(국어·수학을 절대평가로)에 가깝다. 그런데도 학회가 영어의 상대평가 복귀를 강조하는 것은, 교육 개혁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자는 퇴행적 주장이다.


수능에서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 영어 과목은 원점수 90점 이상이면 누구나 1등급을 받는 구조다. 즉 절대평가라고 해서 일정한 비율의 상위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처럼 난도가 상승하면 1등급 비율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실제로 고난도 독해 문항의 체감 난도가 높았고, 상위권조차 실수할 여지가 컸다는 현장 분석이 잇따랐다.


응시 집단의 구성도 변화가 있었다. 영어가 절대평가가 된 이후 상위권 학생조차 영어 학습 시간을 구조적으로 줄여 왔다. 수학과 탐구 등 상대평가 과목들이 입시 당락을 좌우하면서 시간 배분 전략이 달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험 난도가 오르면 상위권의 성적이 급격히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번 영어 과목 1등급 비율 3.11%는 바로 그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도별 편차다. 1등급 비율은 2021년 12.66%에서 올해 3.11%까지 4배 이상 변동했다. 최근 3년만 봐도 7.8%(2023) → 4.71%(2024) → 6.22%(2025) → 3.11%(2026)로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절대평가의 본래 취지가 성취 기준 도달 여부를 안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인데, 이런 변동성은 제도적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같은 절대평가 과목인 한국사의 1등급 비율은 15.23%였다. 영어의 3.11%와는 5배 가까운 격차다. 더 놀라운 것은 영어의 1등급 비율이 상대평가인 국어(4.67%), 수학(4.62%)보다도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절대평가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누구나'라는 원칙으로 작동하려면, 난도 조절에 일관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절대평가임에도 사실상 상대평가처럼 작동하고 있다.


절대평가의 본래 취지는 학생들의 과도한 경쟁 부담을 완화하고 영어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데 있었다. 그러나 매년 난도가 크게 요동친다면 학생과 학교는 안정적인 학습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3.11%로 인해 수시 지원에서 영어 최저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상위권 학생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평가 방식의 통일성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절대평가든 상대평가든,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번 영어 절대평가의 문제는 평가 제도 자체에 있지 않다. 같은 과목의 난도가 4배 이상 요동치고, 또한 절대평가 과목인 한국사와 5배 차이가 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절대평가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절대평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무능의 증거다. 상대평가로 돌아간다고 해서 이 무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학교 영어교육의 위축"이 절대평가 때문이라는 주장 역시 인과관계가 바뀐 것이다. 오히려 올해처럼 난도가 급등하면 학생들은 불안해하며 사교육으로 향한다. 1등급 비율이 낮다고 해서 상대평가로 회귀하자는 것은, 난도 조절 실패의 책임을 제도 자체에 전가하는 논리적 비약이다. 문제는 절대평가 자체가 아니라, 절대평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난도 관리에 있다.


이번 논란은 '3.11%'라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절대평가의 취지를 유지하되, 난도 조절의 일관성, 응시 집단의 변화에 대한 정밀 분석, 영어 학습 격차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대응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신호다. 교육은 제도보다 현실이 먼저 움직인다.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숫자는 또다시 우리 사회의 불안을 자극하는 기호가 될 뿐이다.



커버 이미지는 한겨레 신문 기사에서 가져옴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1538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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