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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Jul 29. 2016

결혼을 꼭 해야 할까?

티아라를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5년 만난 남자 친구가 있다. 내 나이 스물일곱, 그의 나이 서른.

양가에 혼담에 오간대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가 되자 나는 결혼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는 참 좋은 사람이다. 성실하고 자상하며 능력 있고 다정하다. 결혼에 대한 확신은 없어도 이 남자에 대한 확신은 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남자랑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이 두려운 이유는 결혼이라는 것이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까



#1. "지금의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다. 돈을 벌지만 자립하지 못했다. 나도 자신이 없고 부모님도 딸의 독립을 원치 않는다. 엄마가 해주는 밥과 청소를 27년째 받아먹으며 죄송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아, 영원히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싶다.


결혼을 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 퇴근 후 간단히 요기를 하고(양심상 밥까지 차려달라고 하진 않음) 내 몸뚱이 하나 씻겨 가만히 침대에 누우면 되는 이 호사는 끝이다. 챙겨야 할 집안일이 있을 테니까. 주말이면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 없이 늦잠을 자는 것과 한량처럼 빈둥거리는 것도, 자유롭게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것도 힘들어지겠지. 아무래도 혼자보단 둘이 되니까. 일 년 중 아무 때나 내가 원할 때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사고 싶은 물건을 척척 구매하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제약이 많아질 거다. 집도 사야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하고 결혼은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니까.




#2. 새로운 가족, 그리고 며느리의 무게



가장 두려운 건 내가 신경 써야 할 가족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이다. 지금 내 가족을 챙기기도 버거울 때가 많다. 가끔은 감정적인 문제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 사람이 같이 살아간다는 게 원래 문제의 복합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가족이 한 집단 더 생긴다. 어마어마한 일이다. 챙겨야 할 생일도 두 배, 어버이날 선물도 두 배, 명절에 가야 할 곳도 두 배, 그리고 부모님이 총 네 분. 그런데 여기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까지 추가된다. '며느리'라는 타이틀은 갑자기 많은 의무를 안겨주고, 며칠 전까지 남자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던 여자들은 단숨에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난 그게 부담스럽다. 자신이 없다.


물론 우리 어머니 세대가 당했던 그런 시집살이를 용인할 생각은 없다. 이건 내가 마흔 노처녀로 늙어간대도 똑같다. 내 또래 친구들만 해도 아들보다 며느리에게 효도받길 원하는 그런 불편한 관습에 굴복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남자와 시댁은 아예 우리의 고민 범주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나와 친구들의 고민은 결혼 그 자체다. 좋은 시부모님과 좋은 남편을 만나더라도 맞닥뜨려야 할 새로운 가족의 무게, 사라질 나의 자유,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한다는 두려움. 



새로운 가족의 무게, 사라질 나의 자유,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한다는 두려움.




#3. 티아라를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그래, 난 철이 없다. 이기적 유전자가 고개를 숙일 때도 됐는데 아직도 왕성하게 자아를 지배하는 탓에, 남들 다하는 결혼에 대해 이렇게도 고민이 많다. 하지만 내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우리의 머릿속에 결혼이란 '여자가 고생스러운 것'으로 각인되어 있어서, 고학력의 능력 있는 여성들이 더 이상 그 위험 부담을 지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결정에는 어머니들의 역할이 큰 몫을 한다. 고생하고 산 어머니 세대는 더 이상 딸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다. "너 능력 있고 돈 잘 버는데 그냥 혼자 살아. 뭐하러 결혼을 해 피곤하게"라고 말하는 어머니 앞에서 딸들은 결혼을 한번 더 고민하게 된다. '이게 맞는 것인가?'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건 우리 또래의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혼자 편히 벌어 쓰다가 소위 '처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여성들이 '여자의 의무'라는 부당한 관습에 몸서리를 친다면, 남자들 또한 '남자가 집을 해야 한다'와 같은 구시대적 사고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결국 결혼은 용기의 문제일까. '결혼을 해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깨달음을 담고 있는지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허나 확고한 것은, 결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떠밀려 가듯 하지 않고 충분히 마음이 단단해지면 하리라. 그래야 내 반쪽에게도, 새로 생길 가족에게도, 그리고 내 가족들에게도 충만한 행복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계획엔 없었지만 갑자기 쓰고 싶은 주제였어요.

주말입니다. 이번 주 브런치 열심히 했네요.

불금 데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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