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공공기관 유튜버가 느끼는 '사회화된 관종'의 한계
내 키는 196cm, 체중은 82kg이다
요 몇달간 열심히 먹고 운동해서 키운게 요정도
기억이 나지 않는 때부터 컸을거다.
그러니까, 유치원 때부터 늘 여섯살인데
일곱살 형들이 친구인지 알고 인사를 건냈던 기억
마지막으로 나보다 큰 친구를 봤던 건,
초등학교 6학년 정도였던가-
그 친구도 직장인 되서 15년 만에 만났더니,
적당한 키에 멈춰서 있더군. 오묘한 격세지감이랄까.
너무 큰 키가 컴플렉스가 되었던 시절을 극복한 건,
의외로 20대 초반의 2년 2개월이었다.
키가 커서 4급 판정을 받아 공익근무를 하게 되었고
(이런게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시절, 우리 과에는 제법 키가 큰 공무원이 계셨다.
그분은 늘 "야 임마. 너 어깨 피고 다녀. ㅈ만한 ㅅ끼들 내려다보고 다녀야지 임마."라고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오히려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자기도 10대 시절 키가 커서 늘 주눅들고 다녔던 시절이 아깝다면서,
요즘 표현으로 잘난 키를 시기하는 세력들에게 '가스라이팅' 당하지 말라며
자신감을 2년 동안 키워주신 덕에, 그 뒤로 큰 키는 '자신감'의 무기로 쓰이게 되었다.
물론 길을 가다 만나는 촉법소년들 특유의 깝침은 가끔 참기 힘들었는데,
삼성 다닐 때 인상이 험악해졌더니 그때부턴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더군;;
신입 사원 시절 나를 평가해준 과장님이 계셨는데,
아마 사회생활 15년간 그 이미지를 잘 지켜온 것 같다.
어딜가도 키 때문에 인식이 된다는 이유로,
나는 자연스러운 '관종'이 되었고, 다만 예의와 사회적 질서를 지키는
'밉지 않은 관종'으로 제법 주변 사람들에게 자리매김 했다.
바로 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회사 유튜브의 메인 MC(사실상 One and only)" 역할
차라리 '혼자 찍고 편집을' 하고 싶을만큼,
다른 분들이 찍어서 정성껏 편집해주시는 영상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공들여서 기획하고, 글을 쓰고, 촬영하고, 편집해주는
소중한 나의 파트너사 분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절대
실제로. 우리 회사 왠만한 동료만큼,
나는 파트너사 분들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나와 일해본 분들은 100% 동감할 거다.
다만, 유튜브라는 걸 하다 보니, 뭔가가 자꾸 막히는게 느껴진다.
영상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면, 어색한 어떤 파편들이 모여서 원래의 나와는 굉장히 다른
(어찌보면 이 업무를 주문한 대표님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겠지)
내 모습이 자꾸만 보인다.
그렇다. '공공기관', '회사'의 유튜브를 '대행해주시는 분들'은,
감히 우리 회사의 메인 채널 콘텐츠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거다.
'계약 상대자'인 그들의 머릿속에도 이미,
'발주처' PM인 나, 그 위에 팀장님, 본부장님, 이사님, 대표님
그리고 다양한 사내/외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안정적으로 가야만하는 공공 기관의 세계를,
이미 그들의 상사들도, 담당자들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꼬리자르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기대, 편견을 넘어서는
위대한 유튜버들을 많이 보는 요즘인데-
그걸 보고 '천편일률적으로' 우리도 하자고하는 리더십들이 많은게 사실 만연하다 (적어도 공공 홍보 Scene에선)
본인도 안할거 억지로 시키는게 왜 당연한가
난데없이 억압을 받는 공공/관공서 홍보 담당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일거다
"언제 내가 이 팀에서 들려나올지" 모르는데
모든 것이 불투명한데 내가 왜?
왜 이상한 옷을 입고 춤을 춰야되고
모 공무원처럼 웃통을 벗고 옹기에 들어가야되고
나시를 입고 춤을 춰야되지?
라는 생각, 당연히 갖고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러니 회사 사람들도 “내가 안해서 다행”이라며
노력하는 사람을 디스리스펙 하겠지.
아무렇지 않게 저런걸 지시하는 건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다.
신고 케이스가 좀 등장해야되는데, 당연히 내가 '전국 1호'가 되고 싶진 않겠지 모두들.
그 '당연한 분기점'이 있기 때문에 '진짜 내 모습'을 회사 유튜브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이들이 얘기한다.
이 사람 저사람의 입김이 들어가니까 공공 유튜브는 안되는 거라고.
왜 이 사람 저 사람의 입김이 들어가냐고?
내가 일년 반 해보니까 조금 알겠다.
"내 모습을 100% 보여줄 수 없는 채널"이기 때문이다.
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만, 내가 뭔가를 마음대로 할 시간이 없다.
누군가가 주는 KPI가 있고, 전혀 트렌디하지 않은 누군가가 꼭 피드백을 주고,
함께 출연한 기업들의 이미지도 고려해야하는 유튜브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가끔 '사내 방송국'이 있다면 거기에 출연하고 싶다.정직하고 한두마디씩만 위트있게 진행을 하면 되니 얼마나 좋은가
최근에 라이브 방송을 두번 진행했다.
아주 조금 길이 보이는 것 같다.
그 어떤 대본도, 모니터링도, 러닝 타임 줄이기에 대한 압박도, 이쯤에서 나와야하는 어떤 멘트도 없는 라이브
그저 행사 부스를 걸어다니면서,
어릴적 좋아하던 게임이나 로봇 이야기를 소소하게 하고,
부스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기업 직원분을 만나
어릴적 즐겼던 게임 이야기, 코스프레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업계와 회사의 제품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진행하는 나도, 지켜보는 PD도 놀랄만큼 자연스럽고 텐션이 높았다.
모든 억압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는게 라이브가 아닐까 하는 작은 기대감을 갖는 기회였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다녀도,
누군가가 쳐다봐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관종인 내 캐릭터.
그래. 앞으로는 라이브를 더 해보자.
내 마음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