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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Mar 18. 2019

식물 사진을 찍는 이유

식물 사진 찍기 3. 백은산호




사진 찍는 일을 하는 저는 사실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피사체를 담아야 하고 다양한 피사체를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즐겁게 찍고 싶지만 어리석게도 잘 찍고 싶은 욕심에 발목을 잡힐 때가 많죠. 그런 생각으로 한창 머릿 속이 복잡하고 답답할 때 식물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식물 사진을 찍으면서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찍고 싶은 대로 찍으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제 머릿 속에 있는 ‘이런 사진이 멋있는 사진이야’ 라고 은근슬쩍 자리잡은 고집들을 시원하게 벗어 던지는 기회로 삼고 싶었지요. 처음 식물 사진을 찍기로 하면서부터 설레는 마음이 들었던 건 그런 이유에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식물은 그래서 저에게는 은인같은 피사체입니다. 



©JeonghyunLee




그리고 그런 제 고집과 고민들을 내려놓게 하기에 식물은 더없이 좋은 피사체였습니다. 식물은 하나하나 이미 경이로울 만큼 새롭고, 아무리 부지런히 찍어도 평생 그 종류를 다 만나볼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니까요. 처음 보는 신기한 모양의 식물은 물론이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늘 보던 식물도 카메라를 통해 다시 보면 언제나 새로운 면이 있습니다. 모두 초록색인 것 같지만 같은 초록색은 하나도 없고 잎사귀의 모양은 한 줄기에서도 완전히 같은 것이 없지요. 얼만큼 나이가 든 아이인지, 어떤 방식으로 식물을 키우는 농장에서 자랐는지,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떤 화분에 담겼는지, 지금 환경에는 어떻게 적응했는지 등 모든 것이 지금 이 식물을 새로운 피사체로 만들고 이 식물만의 개성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JeonghyunLee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멋진 피사체가 제 앞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지요. 그래서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질감을 가졌으며, 색깔은 어떠한지,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거리와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을지 등 사실 사진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보다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어떤 피사체를 사진으로 찍든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식물들이 그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지요. 그리고 그런 것을 바라보는 것을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그래서 사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누군가가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많겠지만 저에게는 무엇보다 다시금 이렇게 가장 단순한 것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 곱씹어 보아도 제일 고맙습니다. 




©JeonghyunLee




백은산호는 이런 기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식물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조금씩 더 좋아진 식물이지요. 백은산호의 줄기가 만드는 선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떤 예술 작품 못지 않게 시선을 끕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힘이 넘치는 조형미를 보여주는 조각 작품같기도 하고요. 줄기가 뻗는 모양이 다양해서 어떤 수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개성있는 식구가 될 수 있지요. 여러 줄기를 모아 키우는 경우가 더 많지만 저는 이렇게 한 줄기만 따로 심겨 있는 모습에 완전 반했습니다. 거기에다 줄기 끝에서 돋아 나오는 작은 잎들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반전의 매력을 보여줍니다. 저도 사진을 찍으면서 뒤늦게 발견했지요. 요 작은 잎들이 백은산호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잎이 떨어지면서 남는 흔적도 가지의 멋진 무늬가 되지요. 봄에는 긴 가지의 가장 끝에서 종 모양의 노란 색 꽃이 핀다고 합니다. 유포르비아 속이기 때문에 줄기가 꺾이면 나오는 하얀 유액의 독성에 조심해야 합니다. 



©JeonghyunLee




비슷하게 생긴 파티오라(Euphorbia tirucalli L.)와 헷갈리기 쉬운데, 백은산호의 줄기가 더 굵고 꼿꼿하게 위를 향해 천천히 자랍니다. 파티오라는 가을에 줄기 끝이 빨갛게 물이 들고 자라는 속도가 백은산호 보다 빨라 가지를 빠르게 옆으로 뻗어 나갑니다. 이 둘의 유통명 또는 별명인 청산호, 청기린, 연필 선인장 등은 서로 혼돈스럽게 뒤섞여 있어 모양과 학명으로 구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꽤 오랫동안 두 식물을 혼돈해서 알고 있었어요. 백은산호의 학명으로는 Euphorbia leucodendron도 같이 쓰입니다. 원산지인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커다란 나무로 자란다고 해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청량한 생명력을 단단히 품고 있는 빈틈없이 멋진 식물입니다. 그러고보니 단순해 보이는 것 중에 정말 단순하기만 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JeonghyunLee





 [백은산호 키우기]


빛 : 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빛이 잘드는 밝은 창가에 놔주시면 제일 좋습니다. 그늘에서도 어느 정도 견디지만 빛을 충분히 받아야 색깔도 진해지고 줄기가 굵어져요


물 : 건조한 걸 좋아합니다. 특히 겨울에는 흙이 젖어 있으면 안됩니다. 봄, 여름에 줄기에서 잎이 돋아나고 흙이 마르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주시고 물이 잘 빠지도록 해주세요. 뿌리 주변의 흙이 젖은 채로 있으면 안됩니다. 겨울에는 물을 줄여주세요.  


온도 : 10도에서 21도 사이에서 잘 자라서 실내에서 키우기에 좋습니다. 추위에 잘 견디는 편이지만 너무 춥지 않게 해주세요. 5도에서 7도 이상 유지해 주시는 게 좋습니다.






©JeonghyunLee







제가 찍는 식물 사진과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는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40plants/


제가 찍는 다른 사진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jhl.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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