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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책모임’이 도끼다

by 조달리

가족 책모임, 친구들과의 독서모임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나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를 고민하며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유명한 학당에서 독서모임 진행자 과정도 이수했다. 택배차 전체를 통째로 도배한 전국 체인 독서교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유효했고, 동시에 무용했다. 책을 ‘지도’한다고 책이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는 않는다는 걸 알려주었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란 생각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까다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책을 통해 사람과 연결되고 싶었다. 그 연결이 또 다른 책을 낳고, 다시 나와 우리를 이끄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독서지도사'라는 명칭 아래에서 내가 만난 학생과 나 사이에는 일일학습지 같은 문답교재가 있을 뿐 말랑한 여백도, 밀도 있는 질문도,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도 없었다. 책을 통해 나와 너를 알고, 나아가 우리와 사회로 향하고 싶었지만 그 끈을 찾기 어려웠다. 물론 그건 내가 찾지 못한 탓이다. 몇 년째 이 일을 이어 온 다른 독서 지도사들의 노력과 경험을 폄하할 이유와 자격은 내게 없다.

노끈 하나라도 찾기 위해서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한 권이 끝나면 다음 책이 나를 불렀고, 그 책은 또 다른 책을 데려왔다. 책들이 꽃다발처럼 피어나던 그 시기에 몇 개의 책모임이 쏟아지듯 시작되었고 사십 대를 함께 보낼 책동지들과의 만남도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함께 읽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 혼자 읽을 때는 닿지 못했던 문장을 다른 사람의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에 매료되어 세상 모든 일이 책모임으로 귀결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이라는 감상은 ‘그런데 너는?'이라는 질문이 되었고, '마침내 우리는’ '그렇다면 세상은'으로 번져나갔다가 ‘그러면 다시 나는?’이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보고, 그 틈으로 누군가의 말이 깊이 스며든 후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이 연쇄작용의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책을 잘 읽고 싶어서 책모임을 하고 싶었고, 책모임을 잘하고 싶어서 더 많이 깊게 읽고 싶었다. 이 둥글고도 날카로운 순환은 청소년 책모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AI시대의 청소년들이 '몽실언니'에 이입하고,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의 '다현'과 비교하는 기막힌 통찰을 나눌 때,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에 마치 그들처럼 완벽히 사로잡혀 도서관에서 발길 떼기가 어려웠을 때, '82년생 김지영'을 '82kg 김지영'으로 알고 있던,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는 '쿵쾅녀'로 SNS에서 배웠는데 함께 읽어서 다행"이라는 울음 섞인 은후의 목소리가 떠오를 때 나는 기록하고 싶었다.
나를 드러내고, 질문한 후, 스스로 배워가는 이 책모임이 '내 인생의 큰 축이 될 거라 생각한다'는 동연의 눈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책은 누군가에게 '도끼'가 되지만, 책모임은 참석자에게 어김없이 '도끼'가 되었다. 그 경이로운 순간들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싶다. 요즘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이 작은 기록들이 무척 반가울 것이다. 어쩌면 책모임을 함께 하고 싶어 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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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글에 등장하는 책 목록입니다.

몽실언니 / 권정생 / 창비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 황영미 / 문학동네

동급생 / 프레드 울만 / 열린책들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 민음사

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 / 강남순 / 동녘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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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