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작
도서관에서는 12월과 6월. 일 년에 두 번. 한 학기 동안 만날 청소년을 모집한다.
1월과 7월에 6개월 동안 이어질 책모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보통 1학기에 신청한 학생들이 7월에 이어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1월이 가장 낯선 얼굴과 만나야 하는 설레고 또 어려운 달이기도 하다.
언제나 긴장되는 첫 만남은 내 소개와 함께 설문으로 시작한다. 몇 개의 항목이 있지만 그 중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내 의지가 얼마나 반영되었는지가 가장 눈여겨 보게되는 부분. 주관식 질문인데 10~100% 사이의 값을 써내야 한다. 10 이하를 쓸 수 없는 이유도 설명한다. 아무리 부모의 강요로 신청을 했다고 해도 중학생 정도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의지가 10%도 없이 이곳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도서관 책모임 간다고 하고서 딴 길로 샐 수도 있고, 도서관에 도착해서도 모임 공간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만이다. “엄마가 저 몰래 신청했어요"라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머리를 긁적이는 학생도 간혹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나와 만났다는 사실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설명을 하니 조금은 끄덕이는 눈치다. 엄마가 억지로 이 자리까지 넣을 수가 없다는 뜻에 동의하는 눈빛으로. 누군가의 강요로만 이 자리에 끌려 왔다면 평소 내 생각이나 의지가 어떻게 표현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청소년쯤 되면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도 포함이다.
이렇게 수치로 확인된 내 의지 앞에서 모임에 대한 각자의 생각도 조금은 확립이 되어간다. 100%라고 크게 쓴 학생도 있었다. 이전 학기에도 함께 했던 주현인데 그 학기의 첫 모임에서는 80%였다. 메꿔진 20% 중 반은 주현 자신의 몫이고 나머지 절반은 참석자들의 공이다. 주현의 말에 반박하고, 동의하고, 내 생각을 덧붙이며 더 나아간 질문을 보태는 다른 참석자들의 대응이 없었다면 원래 책 좋아하던 주현은 그냥 원래대로 ‘책 좋아서 잘 읽는’ 주현 그대로 죽 80%였겠지. 20%올라간 저 수치가 꼭 내 성적표 같아서 빙긋 웃으면서 시작한다.
내 의지 10%로 시작했던 학생도 있었다. 0을 쓰고 싶었으나 10이 시작이라 명시된 저 질문지 밑에 어쩔 수 없이 크게 쓴 10이 학생의 표정을 대신하는 것 같다. 두 번 정도 모임에 나왔다 사라졌다. 첫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저런 발표를 하는 아이들과 나는 같은 종족인가?’라는 의심을 온몸으로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한 아이돌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자기 소개를 했는데 그 이후에도 시계만 보며 몸을 있는 대로 비비꼬더니 더 힘을 들여 허공에 대고 발을 찼다. 모임 책을 읽어왔을 거라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는 소감을 남기며 첫날 쉬는 시간에 나가버린 한 여학생이었다. 학생의 얼굴은 잊었지만 모임 준비를 할 때마다 이 학생을 떠올린다. '내 의지 최소한 10%'라던 내 설명이 그때서라도 학생에게 닿았던 걸까. 그 순간부터라도 아주 조금 자율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 또한 책모임에서 지향하는 ‘내 생각’의 시초라는 점에서 그 학생의 '박차고 나감'을 응원한다. 모임 장소를 떠나 그가 닿았을 다른 공간을 상상한다. 그곳에서의 자기 의지는 20%이기를. 그리고 그 숫자가 점점 커져서 그곳과 그 시간을 애정하게 되기를. 그래서 지금 그는 자기 의지가 충만한 어떤 장소에서 성실하고 밝은 얼굴로 자리하기를 기도한다.
실제 의지가 0%인 학생들도 꼭 있다. 빠른 속도로 문화행사 신청 클릭에 성공하여 이름을 올렸지만 첫 모임부터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학생들이 언제나 있었다. 최**, 배**. 대기자 명단까지 꽉 차 있는 나름 인기 있는 도서관 프로그램의 노쇼! 둘은 아는 사이일까. 각자 자신의 의지 0퍼센트임을 정직하게 실천하는 이들이 지금 자리한 그곳에서는 재미있기를. 진실로 그 곳에 속하기를.
다시 1월이다. 다시 7월이다.
책모임 첫날부터 만나지 못한 얼굴을 상상하고, 곧 사라질지 모를 얼굴일지 몰라 참석자들 얼굴을 눈 크게 뜨고 담아둔다. 시작은 10이었지만 함께하는 이들의 몫이 더해져 그 숫자가 점점 자라나면 좋겠다. 천천히 자라나도 기쁘겠다. 그렇게 새 학기를 맞이한다.
덧.
또 다른 청소년 책모임을 진행하는 나의 동료이자 친구 Y의 말
"내 의지가 10 정도는 있다는 그 말에 정말 해당 안 되던 아이도 있더라고요. 분명 그 자리에는 있지만 아무 의욕도 없이, 그렇다고 절대 빠지지도 않는 아이요.”
음…….
고민스러운 친구의 한숨이지만 여전히 난 틀렸다고 생각 안 한다. 그 아이는 어떻게든 책모임 하는 Y와 한 공간에 있고 싶은 것으로 나 혼자 결론. 어떻게 10도 없이 그 자리에 그렇게 있을 수 있냐고요.
열다섯 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