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도서관의 협조를 얻어 그동안 모임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약 10년 가까이 도서관에서 학생들을 만나왔는데 내가 주최가 되어 진행한 설문조사는 처음이었다. 언제, 어떻게 책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지를 묻는 질문이 시작이었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 새롭게 시작하는 학생 수는 적었다. 거의 없었다. 절대적인 시간 부족도 원인일 수 있겠지만 '책'이 갖는, 그러니까 '독서'가 갖는 특성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갑자기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책모임에 떡 나타나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책을 읽던 아이가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길 즈음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1~2학년 시기. 책과 친하지 않았어도, 아직은 부모의 권유가 먹힐 때이기도 하고 친구와 왁자지껄 놀이 겸 신청할 수도 있을 때다. 동기를 묻는 질문의 답도 시사하는 바가 같았다. 스스로 참여하고 싶어서 신청했다는 답이 부모의 권유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내 마음대로의 해석이겠지만 저 '부모의 권유' 항목이 참 다정하게 느껴졌다. 분명 사이좋은 부모-자녀 관계겠지? 평소 책을 좋아해서 신청했다는 답이 그다음이었고 독서모임이 궁금해서 신청했다는 답도 있었다. 예상외로 '국어시험이나 논술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신청했다'는 항목에는 큰 반응이 없었고, 도서관의 홍보나 안내도 마찬가지였다. 청소년에게도 도서관 홍보는 쉽지 않다:)
책모임이 어떤 시간이었냐는 질문에는 책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답이 많았다. 뻔한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의 답은 뻔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청소년에게도 당연히 필요하다. 요즘 학교에선 지금 성인의 학창 시절과 달리 여러 필수 교육이 많아서 따로 학급회의할 시간이 없다. 건의하거나 수정하고 싶은 사안,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몇십 년 전에 비해 성적 압박은 더 심해졌고, 특정 과목을 향한 사교육 쏠림 현상도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 의견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다른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시간은 꽤 구체적으로 학생들에게 의미 있게 남아있는 듯했다. 다양한 책 소개를 받은 것도 좋았고, 책과 관련된 게임이나 활동도 재미있었다는 답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답은 실명을 밝히며 후배 학생들에게 책모임이 어땠는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길게 알려주던 중학교 3학년 **의 메시지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중학교 3학년인 노**입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여러 독서토론 모임을 해왔고 책하루에서는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 책하루 모임을 하며 취향과는 관련 없는 책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읽기 전부터 나와는 관련 없는 책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읽었지만 그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다양한 측면에서 책을 해석하게 되어 그 책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써 내가 관심이 없던 주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로써 견문도 넓어지고 새로운 거에 대해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 학업으로 인해 독서모임을 하고 있지 않지만 독서모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며, 그 모임을 즐기게 되는 순간 상상 그 이상의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점 꼭 강조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책하루라는 추억이 성장의 계기가 되었는데 여러 분또 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뜻깊은 추억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독서활동을 응원합니다!
반감(나와 관련 없는 이 책을 왜 읽어?) - 소개(앗? 그런데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네? 뭐 좀... 들어나 볼까?) - 다가옴(나와 완전 관련 없는 건 아니네? 그리고 좀 재미도 없진 않네?) - 새로운 관심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동시에 내게 전하는 인사. 성의 있게 읽어온 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노**의 얼굴이 그대로 떠올라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듯 오래오래 저 글을 읽었었다.
책모임은 '함께 읽기'다. 함께 읽는다는 표현은 참 이상하다. 분명 각자 책을 읽었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두 행위가 합쳐지면 '함께 읽는 것'이 되는 이 과정이 묘하다. '읽기'가 쓰여있는 문장을 이해하고, 책에서 무언가(감동이든, 재미든, 정보든)를 개인적으로 가져가는 행위라면 '함께 읽기'는 '나'를 넘어선 '사회적 활동'이다. 책에서 개별적으로 얻은 일차적 자원이 모여서 탁구공처럼 독서모임 참여자들 사이를 왕복하다 보면 그 트랙 수 이상의 촘촘한 실타래가 묵직하게 공을 에워싸면서 진지한 사회적 주제로 두둥 떠오르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으니까. 책모임은 언제나 그랬고 이런 의미에서 '함께 읽기'에 적합하지 않은 책은 찾기가 어려웠다. 모임이 별로였다면 그건 오롯이 나의 진행력 문제였을 뿐.
같은 책이어도 구성원에 따라 책모임의 형태는 다 달랐다. 낯선 배경에 낯선 등장인물이 나오는 책이면 읽기 경험이 적은 학생들은 매우 어려워했고, 다 아는 이야기라며 술술 풀어가는 학생도 있었다. 이 사이를 조율하기가 처음에는 난감했는데(이렇게까지 못 읽는데 책모임에 온다고? 이렇게까지 잘 읽는데 책모임이 필요한가? 같은 못난 생각도 종종) 모임을 거듭하면서 그냥 돌아가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나 또한 배웠다. 어려웠던 학생은 어려웠던 이유를 알게 된다. 이것만 해도 큰 성과다. 낯설면 어렵다. 일상에서 쓰지 않던 단어들을 책모임에서 쓰게 된다. 몇 번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쓰게 되고 '우리의 언어'로 자리 잡는다. 관심 없는 장르의 책도 마찬가지다. SF소설만 주로 읽던 *주는 '몽실언니'를 알게 되어 참 좋았다고 말했다. 어떤 학생은 지겹도록 읽어온 책이 모임 도서로 또 선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의 모임은 여태 했던 모임과 어느 면에서 닮아있고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 게 목적이겠다. 구성원이 다르니까 모임도 반드시 다르게 흘러간다. 그 지점을 잘 파악해서 새롭게, 다채롭게 넓히는 건 분명 진행자인 나의 몫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책 선정이, 모임 내용이, 논제 선택이 어려워지는 이유지만 더 깊이 이 모임을 사랑하게 되는, 욕심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모임은 언제나 도끼였다. 시간이 다 되어 내 자리를 정리하는 중인데도 서성이며 강의실을 떠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성인 독서 모임에선 다 같이 밥이나 차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하지만 청소년들과는 어렵다. 그들의 서성거림이 '더 나누고 싶은 마음' , ' 더 듣고 싶은 성의'라는 걸 이젠 안다. 이들이 아름답고 귀여운 이유다. 그들은 나도 늘 찍히게 만든다. 분명 전에도 했던 책인데 어떤 학생들 앞에선 이전과는 다른 설명이 튀어나온다. 그 사이 또 달라진 '나'이기 때문일 텐데 이 변화 안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서로 찍고 찍히면서, 아름답고 아프게 잘 성장하고 싶다. 그 모임에 함께하는 이들이 꾸준히 있어서, 다음 모임을 함께 기다리고 있어서 책에 등장하는 그 어떤 부자들보다 언제나 배부르다!
그러니까, 어쨌든, 결국, 아무튼, 청소년 책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