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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티 Sep 26. 2016

어른이 된다는 것

묵직하지만 신나는 일이다.

엄마가 쉰을 넘긴 어느날인가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오십은 어때?
나는 오십살이 되기 싫어


서른을 코앞에 두었을 때, 삼십대가 되는 것조차 너무도 싫었기에 물어보았던 것 같다. 엄마는 대답했다.


나름 재밌어. 이때는 이때에 맞는 재미가 있는거야.
나는 내 젊은날도, 지금도 좋아.



엄마다운 대답이었다. 나는 엄마 성격을 많이 닮아, 분명 오십의 나도 비슷한 대답을 할거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왠지 즐거운 삼십대가 펼쳐질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서른을 맞이했다.


티비의 한 프로그램에서 귀농을 한 30대 후반의 선배 농부가 말을 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자' 며 행복을 미래형으로 두기만 한다고. 조금만 참고 돈을 모으면, 집을 사겠지하며, 참고 또 참다 보면 결국 내 행복은 뒤로 미뤄진 채 평범한 일상 속에 갇혀살게 되는 것. 알면서도 그걸 뿌리칠 용기는 쉽게 나질 않는다. 혹시 행복인 줄 알고 찾았다가 그게 행복이 아닐 수도 있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걸까?


마케터로 살아가며 제대로 배운건 실패에 두려움을 많이 없애버렸다는 것. 실패는 무서운 것이 아니다. 실패하게 되면 나만의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에 만인에게 미안해야하는 것은 물론, 책임도 뒤를 따른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책임을 질 수 있는 단단한 정신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사과할 수 있는 진심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실패한 후에도 극복하고 더욱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 간혹 미안해하지도 않고 남의 일 바라보듯, 혹은 책임을 무조건적으로 전가하는 리더들을 보고나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도 실패에서 배우는 귀한 교훈이 되곤 한다. 실패해도 좋다. 아직 어리지 않은가? 그렇게 행복을 차분히 찾아 나서는 것이다.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농장 공사를 곧 시작할 듯 하다. 지난 겨울 처음 서른살 꽃농부를 다짐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귀농한 '농부'는 아니고 불량스러운 투잡 직장인이지만 그래도 제법 진지하다. 우리 농장 주변은 전부 벼를 키우는데, 한 때 우리 논도 그랬지만 지금은 우리만 덩그러니 밭이 되어있다. 도심 속에 그린벨트에 위치하다보니, 푸른 논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어떻게 알았는지 백로도 날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옆에는 김포공항이 위치해 어린시절부터 공항 소음 피해지역으로 유명한 곳에 오래 살아왔다. 나름의 소음 피해(?) 속에 우리 농원은 참으로 꿀밭이다.


서울 경계에 위치한 그린벨트다 보니, 조용하고 상쾌함을 맛보고자 하는 많은 이웃들이 둘레길 주변으로 모여든다. 어린 시절엔 정말 아무도 오지 않는 논밭이었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차를 끌고가면 '여기에 왜 차를 끌고들어와?' 하는 눈초리에 밭주인인데도 괜시리 미안해질정도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둘레길에는 쉬어갈 곳이 없다. 그런 쉼터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한 지 거의 반년이 흘렀다. 추진력은 제법인 편인데, 절대 급하게 가지 말자 생각해 반년을 곰곰히 고민하고 차분히 식물에 대해 배워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급한 마음에 대해 한발짝 다가서도 좋겠다 싶었다.


최근에 구글링을 하다 찾은 사진인데 이 사진을 보고 외쳤드랬다.


유레카!


이것이었다. 지금 내 상황에 딱 맞는 이 것. 바로 이것이었다. 내 아이디어를 누군가 쓱쓱 그려놓은 듯한 이것이 바로 봄에 만날 우리 농장의 모습과 가장 유사하다. 유리 온실과 컨테이너의 조합을 찾고 있었는데, 유리 온실 가격들을 알아보니 이건 뭐, 월급쟁이가 도저히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귀농을 한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쉽사리 창업지원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 또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반드시 원하는 것

1. 논을 볼 수 있는 공간

2. 내가 생각하는 가격

3. 화장실

4. 야외 테라스 공간

5. 컨테이너와 유리의 결합


할 수 있는 것?

1. 논을 볼 공간 : 유리온실 / 비닐 하우스 / 선룸 등

2. 가격 내 : 비닐 하우스 + 일부 유리 선룸

3. 화장실 공사 필

4. 테라스 공사 직접 하기

5. 컨테이너 : 중고 구매후 수리



일단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맘 먹고 보니, 참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많았다. 각 공사 비용은 얼마나 들 것인지와 건설에 있는 법적인 제한 등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 해외사례가 아무리 예쁘다 한 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이거 해볼래' 라는 단순한 마음가짐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다보니 왠지 조금 머리가 복잡한 기분이 들긴 한다. 그래도 꿈꿔왔던 것이라 일단은 재밌다. 재밌으니 다행이다.



해외사례에서 찾은 유리 온실 사례들이다.



유리온실은 적벽돌과 참으로 잘 어울린다. 알렉스 더커피에 가보면 하얀색 유리온실과 하얀벽돌을 사용했는데, 검정색과 적벽돌도 참 예쁘다. 따뜻해보이기도 하고,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유리가 비싸다.



다음은 컨테이너와 비닐하우스의 합체형. 요것이 내가 생각하는 컨셉의 기본. 그치만 논밭에는 세우는 제약이 있다. 그래서 잘 알아보고 설치해야해 한창 공부중에 있다. 농기구 창고로 쓰기엔 이보다 좋은게 없을 듯 하다.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던 곳. 나중에 모네의 정원 1호가 완공되고 또 다시 다른 드림 플레이스를 짓게 된다면 반드시 벤치마크하고 싶은 공간이다. 컨테이너와 유리온실의 조화인데, 천장도 높아 아주 시원시원하다. 게다가 빨간색 촌스러운 컨테이너 색감이, 텍사스 즈음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처럼 보여지는데 유리온실이기에 세련된 기분이다.


실내의 느낌은 딱 이런 느낌일 듯하다. 아니면 조금 더 적벽돌과 토분이 어울어진 따뜻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일단 함께 하는 프로농부들 - 엄마와 이모- 의 합격점은 받아 두었다.



가을이 내려앉은 모네의 정원

벼가 여물었다. 모네의 정원에 가을이 내렸다. 작년부터 이어온 이모는 베테랑이 다되었고, 초보였던 나는 자주 가지 않지만 그래도 이 공간에서 늘 힐링을 하고 있다. 손이 많이 필요로 한 봄에는 한창 갔는데, 지금은 회사일 때문에 제법 뜸해졌다. 주로 집에 있는 작업공간에서 하고 있으니깐.


공사를 하려고 보니 마음 한켠이 제법 묵직하다. 온전히 나만을 위했던 힐링 공간을 더욱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했던 나의 다짐이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바빠죽겠는데 왜 하느냐 묻는이들도 있다. 답은 '나도 모른다' 이다. 그냥, 지금 이순간 마음이 가는대로.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묵직하면서도 설레이는 일이다. 스무살에 생각치도 못했던 일을 지금 나는 하고있다.

그리고 31살의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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