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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하 Oct 13. 2021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 일본의 자살숲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죽음이란 현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후부터 특정 장소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등산을 하다가도 이곳에 묻혀 있을지 모르는 시신들을 떠올리게 되고 버려진 폐가나 공터를 지날 때마다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이 반사적으로 떠올린다. 호텔방에서 잠이 들기 직전 동반자살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한 페이지가 떠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을 환히 밝히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든 적도 여러 번이다. 이 침대 위에서도 누군가가 죽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포근하고 푹신하게만 느껴졌던 호텔방의 침대가 사후경직이 시작된 피부처럼 서늘하게 느껴져 머리카락이 곤두서곤 한다. 지나친 상상이란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SNS, 유튜브 썸네일,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과 인기 검색어 따위를 통해 매일 타인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21세기에 이런 도착을 지닌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지 않을까.




인류가 생겨난 이례 사람이 죽지 않은 장소는 없다. 어디서든 사람이 태어나고 또 죽는다. 하다못해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처럼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는 관광 명소에서도 해마다 사람들이 자살한다. 실제로 '세계 자살 명소'에 리스트 된 장소들이 세계 관광 명소와 상당 부분 교집합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자살명소(自殺名所, Suicide site)
일반적으로 자살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장소를 뜻한다.
자살예방정책의원회에서는 특정 지역이 자살 명소로 알려질 경우
자살을 부추기게 될 것을 우려해 자살 다빈도 장소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제도권 언론사 및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살 명소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살 명소로 등극(?)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자살 시도 중 방해를 받아 미수에 그치지 않도록 비교적 인적 드문 장소여야 한다는 것이다. 연탄가스를 이용한 질식사나 약물 과다 복용 같은 음독자살을 선택할 경우 숙박 시설이나 가정집처럼 타인의 출입이 불허된 장소여야 한다.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비활성기체를 들이마시는 방법이나 손목 긋기, 목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투신은 지형적 조건이 갖춰진 장소여야만 가능하다. 현재 자살 명소로 알려진 곳들은 대부분 투신을 위한 장소로 사용된다. 독일 라이헨바흐 임 폭틀란트의 괼치 철교는 독일의 대표적인 자살 명소로 연방 경찰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고 있으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에서는 매년 1,500명 이상이 골든게이트 해협으로 몸을 던져 다리가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와 역사 외 또 다른 불명예로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자크 카르티에 교는 2003년 자살 방지 울타리를 세웠고, 호주의 사우스 헤드 반도에는 안전 펜스와 생명의 전화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 나라의 자살 명소로 잘 알려진 곳 역시 광안대교, 대청교, 마포 대교 등 투신이 용이한 곳들인데 그중 마포대교는 자살 방지 문구를 광고했다가 도리어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맞기도 했다.




그들은 왜 숲으로 가는가

수많은 자살 명소 중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다. 일본 후지산의 산기슭에 위치한 아오키가하라 숲이다. 대부분의 자살 명소는 고층 빌딩, 절벽, 강물 위 대교처럼 투신 가능한 곳인데 반해 아오키가하라 숲은 지형으로 보나 장소의 특수성으로 보나 자살하기 용이한 장소는 아니다. 절벽이 있긴 하나 높이가 3m 정도밖에 되지 않아 뛰어내려도 다치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아오키가하라 숲을 찾아온 자살자들은 주로 나무에 목을 매거나 음독자살을 택한다.




아오키가하라는 1200년 전 후지산 분화 때 흐른 용암류가 식은 자리에 나무가 자라면서 형성된 숲이다. 아오키가하라의 나무들은 용암 때문에 뿌리를 깊숙이 내리지 못하고 대부분 기울어져 있거나 쓰러져 있다. 목 매기 적당한 나무를 찾으려고 죽기 직전까지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아오키가하라를 찾는 자살자들의 행렬은 매년 계속되고 있다. 이 숲의 무언가가 그들을 끌어당기는 걸까. 고요하고 평화로운 원시림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한 모양이다. 아오키가하라 숲은 이미 인터넷상에서 '자살숲'으로 불리며 수많은 괴담과 후일담을 양산하고 있다.




자살숲으로 불리우게 된 아오키가하라의 괴담

아오키가하라의 괴담은 숲을 배경으로 한 공포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출구가 없어 한번 들어간 사람은 두 번 다신 나올 수 없다'던가, '멀쩡했던 나침반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는다'라는 괴담이 대표적이다. 괴담의 진상을 파헤치기 전 우리는 아오키가하라의 지형적 특성과 규모를 파악해야 한다.




먼저 '출구가 없어 한번 들어간 사람은 두 번 다신 나올 수 없다'는 괴담은 아오키가하라의 실제 면적을 생각해 보면 얼토당토않은 도시 전설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음모론 신봉자들은 아오키가하라를 광대한 지역처럼 묘사하지만 아오키가하라의 실제 면적은 약 30km²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지형적 조건 때문에 평지에서 이동하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3-4시간 정도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규모다. 게다가 아오키가하라는 유명 관광지인 만큼 안내간판과 산책로가 잘 갖추어져 있어 나침반이나 GPS 없이도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거의 없다. 설사 위급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주위의 캠프장과 공원을 찾아 SOS를 요청하거나 숲의 내부를 관통하는 139번 국도를 타고 숲을 빠져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20년간 아오키가하라를 답사한 르포라이터 무라타 라무가 나침반 없이 숲을 종단한 결과 30분 만에 숲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세 번을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고 하니 그로테스크하고 음산한 숲의 이미지를 상상해왔을 호러 매니아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법한 실상이다.




르포라이터
사건이나 풍물을 현지에서 직접 취재하여 기사로 싣거나 출판물을 내는 사람




멀쩡했던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괴담은 진짜일까. 나침반과 관련된 괴담들은 아오키가하라를 배경으로 한 영화 '포레스트 : 죽음의 숲'에서 주인공이 나침반을 꺼내들자 바늘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면에서 파생된 게 아닐까 사료된다. 아오키가하라 곳곳에 자철광과 화성암질 암석들이 분포되어 있긴 하나 자기장의 방해로 1~2도 정도 오차가 날 순 있어도 나침반 바늘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기현상이 발생하진 않는다. 




수많은 숲 중 아오키가하라가 수많은 자살 희망자들에게 자살 명소로 발탁된 계기는 사실 따로 있다. 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1960년 출간한 소설 '파도의 탑' 때문이다. 파도의 탑은 아오키가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주인공 남녀는 아오키가하라 숲에서 자살한다. 소설이 출간된 후 아오키가하라는 자살의 성지가 되었고 일본 전역의 자살 희망자들을 숲 깊숙한 곳으로 하나둘씩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4년, '파도의 탑'을 베개처럼 벤 채 누워 있는 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 후 자살 명소로서의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일부 신문에선 소설과 자살 통계와의 관련성을 보도하기도 했다.




문화 콘텐츠가 된 아오키가하라

아오키가하라를 둘러싼 크고 작은 괴담들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진지 오래임에도 자살 희망자들은 매년 숲으로 모여들고 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아오키가하라에 대한 진실 규명에 힘쓰기보다 장르적 쾌감을 주는 콘텐츠로 소비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일본의 판타지 소설이나 RPG 게임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의 숲'이란 설정은 아오키가하라에 모티브를 두고 있으며 포켓몬스터, 사이버 포뮬러, 아이 앰 어 히어로 등 유명 애니메이션과 영화에도 아오키가하라가 등장하는 걸 볼 수 있다.




아오키가하라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도 있다. 호러 영화감독 시미즈 다카시가 이누나키 마을의 후속작으로 만든 '주카이 마을'이라는 영화다. '주카이 마을'은 아오키가하라에서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숲의 어딘가에 마을을 이루고 산다는 내용으로 실제 아오키가하라를 둘러싼 괴담 중 하나를 소재로 차용하고 있다. 2016년 미국에서도 아오키가하라에서 실종된 일란성 쌍둥이 동생을 찾기 위해 도쿄로 향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포레스트 : 죽음의 숲'이 개봉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인기 유튜버, BJ, AV 제작사, 방송국 취재팀 등 수많은 문화콘텐츠 산업 종사자들이 아오키가하라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다. 최근엔 수많은 유튜버들이 아오키가하라의 탐방 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그중 구독자가 1500만 이상인 인기 유튜버 로건 폴이 숲속을 돌아다니다 자살한 사람의 시체를 발견한 장면을 업로드해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7년 12월 31일에 업로드된 영상은 2018년 1월 2일 삭제되었고 이후 로건 폴은 사과 영상을 올렸다.




지금은 폐쇄되었으나 한때 아오키가하라에서 자살한 사람들의 사진을 업로드하는 웹사이트가 있었다. 해당 사이트의 사진들은 한국의 유명 커뮤니티까지 흘러 들어왔다. 사진 속 시체들은 하나같이 부패가 상당 부분 진행되어 신원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파리나 구더기 같은 곤충들에게 육체의 소유권을 내어주고 부패되어가는 사체들은 한때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기 보다 처음부터 숲의 일부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오직 그들이 착용한 옷가지와 주변에 널려 있는 유류품들이 그들 역시 한때는 사회구성원 중 한 명이었음을, 나처럼 웃고 떠들고 말하고 사유하는 존재였으며 각자의 이야기와 사연을 지닌 보통의 존재였음을 말해준다.




우연히 발견하거나 의도적으로 찾지 않는 이상 좀처럼 찾기 힘든 장소까지 찾아가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죽음을 비롯하여 존재의 흔적마저 남기지 않길 바랐던 사람들. 인적 드문 숲에서 죽음을 택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길 원치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철저히 사적인 영역으로 남겨져야 하는 죽음이 공적인 영역이 되어 수많은 커뮤니티를 망령처럼 떠돌고 있는 실상은 아오키가하라가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어 온 배경을 짐작하게끔 한다. 아오키가하라는 살아 숨쉬는 거대한 몬스터도,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저주의 숲도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또는 잊혀져가고 있는 사연들을 끌어안은 채 떠들어대길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침묵할 뿐인, 잊혀진 망자들의 마지막 요람이다. 일부 사람들은 자살 명소에 어떤 아우라가 있어 자살 희망자들을 끌어당긴다는 오컬트적 사고를 신빙하지만 사회관계망 안에서의 척력이 그들을 삶의 사각지대 밖으로 밀어내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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