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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Jan 14. 2019

버려진 것들의 천국을 향하여

<언더독>: 여기는 우리들 세상이야

※ 브런치 무비패스로 본 영화입니다. 
※ 결말 포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부활



이런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을 기다려왔다.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7년 만에 나오는 오성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라니. 기대감으로 시사회를 다녀왔고, <언더독>은 기대 이상을 보여줬다. 이런 영화가 투자금이 부족해서 개봉을 못할 뻔했다니, 이 글을 빌어 엑소 팬덤(=엑소엘)에게 감사를! 

(TMI: 투자금이 부족했던 <언더독>은 주인공 뭉치의 성우로 도경수 aka 엑소 디오가 확정 나는 순간, 엑소 팬덤에서 자금을 모아 개봉할 수 있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도 ‘어른이(어린이+어른)’들을 위한 좋은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언더독>은 2011년의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다시 한번 진일보했다. 원작이 있었던 <마당을 나온 암탉>과 다르게 창작 애니메이션이며, 그렇기 때문에 <마당을 나온 암탉>보다 한국적인 작화와 상황 설정이 돋보인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유기견과 동물권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이 영화가 흥행했으면 한다. 한국의 지브리, 디즈니, 픽사를 꿈꾼다는 오돌또기 스튜디오의 차기작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버려진 개들이 바라본 한국적인 것들의 총합”



씨네 21 김소미 평론가가 <언더독>에 대해 내린 평인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더독>은 최근에 보았던 한국 애니메이션 중 한국적인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단순히 작화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언더독의 설정 하나하나가 한국 사회를 세밀하게 그린다. 유기견들에게 식당 주인 몰래 밥(=인간들이 먹고 버린 쓰레기)을 주는 외국인 노동자, 개 사냥꾼, 수없이 개발된 고속도로 등등이 너무나 친숙하다. (결말마저 그렇다!) <언더독>은,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세계관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대사에서도 한국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이 영화의 개그 코드다. 예능에서조차 웃음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한국어가 없어 일본 용어를 쓰는 판국에, 이렇게 한국어로 다양하고 불쾌하지 않은 개그 코드를 구사하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걔들이 그냥 갠 줄 알어? 걔들은 산의 무법자야, 무법자.”

“반달곰 지 가슴 치다가 웅담 빠지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고라니 똥 먹었어? 으으, 똥 먹으면 똥개 된다 던데.”


고참 유기견 짱아의 성우로 박철민 배우가 활약하면서 재미가 더더욱 좋아졌다. 짱아가 “니네들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도 안 봤어?”라 말할 때, 온 극장이 얼마나 웃음소리로 가득 차던지. 


아아, 감독님과 작가님들 최고십니다. 


키워지고 버려지고 지워지나, 결국 살아가는 개들



그리고 그 한국적인 상황 묘사에 있어, 유기견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와 묘사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같이 개들의 천국으로 향하는 유기견들이나, 다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뭉치’는 공장식 개 공장에서 태어난 분양 샵에서 입양되었다가 버려진 전형적인 유기견이고, ‘밤이’는 투견장에서 학대당하다가 도망쳐 나온 들개다. 고참 ‘짱아’ 역시 버려진 유기견으로 사람을 싫어하고, 폐가에 사는 개들 역시 매일 위협에 시달린다. 그들은 사람이 먹다 버린 쓰레기를 먹고, 개 사냥꾼이 오면 폐가로 숨는다. 그리고 마침, 폐가는 (참으로 한국답게) 재개발로 사라지고 만다. 



들개들과 힘을 합쳐 개들의 천국으로 가는 길조차 험난하다. 퇴역한 군견 ‘개코’의 안내로 먼 길을 떠나지만, 인간들의 들개 사냥은 멈추지 않는다. 사냥꾼은 한 때 자신의 소유물이었던 ‘밤이’를 노리고, GPS 장치가 달린 ‘뭉치’는 미끼가 된다. 사냥꾼의 총으로 인해 들판은 불에 휩싸이고, 그 과정에서 탈출하는 개들의 협력은 눈물겹다. 고속도로에서 로드킬 당하는 개 역시 등장한다. 


인간의 뜻으로 태어나고 사랑받았으나 버려지는 개들은, 다시 인간에게서 ‘치워’ 진다. <언더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러한 유기견들의 현실을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에서 ‘어른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난 여전히 인간을 좋아해. 아니, 사랑해.”



<언더독>은 결말조차 (좋은 의미로) 한국적이다. 퇴역한 군견 ‘개코’가 개들을 안내한 곳은 바로 DMZ였다(…?!). 뭉치가 철장을 못 넘을 뻔했지만, 군인에게 뺏은 수류탄을 터트려 그 반동으로 국경을 넘는다(…). 진짜 재치 있는 결말이었다. 이런 애니메이션이 원작이 없는 창작물이라는 게 다시 한번 놀라울 따름. 


DMZ에 정착한 개들은 인간에게 쫓기지 않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산다. 좋은 해피엔딩이지만, 나를 사로잡았던 지점은 따로 있었다. 



개들은 DMZ에 도착하기 전에, 개를 키우는 인간 부부 집에 머무르다 간다. 그리고 다들 몸을 어느 정도 회복했을 때, ‘짱아’는 그 집에 남겠다 말한다. 유기견 무리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인간을 싫어했던 짱아의 선언에 모두가 놀란다. 짱아가 그 집에서 사랑을 찾은 것도 있지만, 짱아는 개들에게 고백한다. 


“나는 인간을 좋아해. 아니, 사랑해.”


이런 생물체들을 어떻게 미워해. 짱아가 인간의 집에서 사랑을 찾고 새끼를 돌보는 장면에서는 코끝이 찡해졌다. 2019년 첫 달에 이런 감동을 선사해준 제작진들에게 다시 감사를 전한다. 


다 사랑스러워서 기억할래. 뭉치, 밤이, 아리-까리, 토리까지. 


PS 1. 같이 보러 간 친구는 나오면서 “근데 DMZ에 지뢰 어떡해?”라 했다. 아 현실적인 놈. 낭만이 없어. 

PS 2. 사냥꾼 역의 성우가 이준혁 배우인 것을 뒤늦게 알고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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