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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 사이

여성에게 예술이란

예술, 명예, 친구... 모두 사치인가

by 책선비

그림출처

: 에밀리 메리 오스본_이름도 없이, 친구도 없이


여인은 자기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는 상인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 대신 아이가 정면으로 그의 표정을 살핀다. 과연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이 돈으로 며칠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엄마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상인을 향해 굳은 표정으로 제값을 쳐줘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넣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를 쳐다보는 여인의 눈빛과 손동작이 유독 눈길이 머문다.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현실에서 위태롭게 겨우 서 있다. 아직은 행색이 나쁘지 않지만 곧 앞으로 닥칠 위기 앞에 끝도 없이 추락할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두려움과 막연함. 자기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순간의 긴장감. 자포자기할 수도 없고 거추장스러운 희망을 잡을 수도 없는 상황. 여인은 몸 둘 바를 모르고 상인의 말 한마디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여성이 그림을 그리고 밥벌이를 감당하겠다고 할 때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 격려해줄까. 냉소를 보일까. 나무래도 상관없다. 여인에게는 광활한 바다에 높은 파도가 들이닥쳐도 배를 띄우고 노를 들어야 하는 현실일 뿐이다. 바다가 잔잔해지길 기다릴 수도 없고 바랄 수도 없다. 바다를 향해 뛰어들어가야 한다. 그림을 인정받고 밥벌이가 가능하면 좋겠지만 그 길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말이 어쩌면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이중고 삼중고를 인내해야 했던 여성의 삶이 보이는 그림이다.


여인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에 대한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상인이 곰곰이 그림을 쳐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작품성이 있을 것 같다. 옆에 한 청년이 사다리에서 그림을 힐끗 쳐다보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그림을 그린 듯하다. 아들이 들고 있고 있는 다른 그림도 궁금해진다. 분명 그림 전문가 두 사람이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림일 것이다.


어쩌면 이 여인은 이미 유명한 화가일지도 모른다. 여인 뒤 쪽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여인을 보고 있다. 여인을 아는 듯하다. 아니면 유심히 그녀의 그림을 보는 상인과 조수의 몸짓에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고는 누구를 연상했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여인도 자신의 그림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보인다. 마냥 수줍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들 역시 당당한 모습으로 판매상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여인은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다. 이름도 없었다고 하니 유명한 화가가 된 것은 아니고 여전히 무명 화가로 생계를 꾸리고 있나 보다. 친구 사귈 시간도 없다. 먹고살기 위해 그림을 그렸고 얼마의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지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보다 조금 더 받기를. 유명해지거나 그런 것은 바라지도 않아. 더 적으면 절대로 안돼. 이런 심정이었을 것 같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예술을 운운하고 이름과 친구가 있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너무 큰 사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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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교육원에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며 시험 준비를 한다. 이 공부의 의미나 나와 맞느니 아니니 따질 겨를도 이유도 없다. 곧 50을 앞두고 내가 취할 수 있는 자격증이란 그냥 따야 한다. 모든 도서관의 채용 공고 우대 조건에는 컴퓨터 자격증이 꼭 기재되어 있다. 컴활 1급 자격증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일하려면 토, 일 근무도 각오해야 한다. 나 같이 경력이 없는 사람은 토일 근무가 없는 도서관에 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무조건 받아주는 데로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서자격증은 기본 중에 기본일 뿐 더 높은 계단들이 놓여 있다. 생계를 감당하며 산다는 건 이런 현실 앞에 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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