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
칠흑
시라코산의 칠흑처럼 어두운 길을
아내와 둘이서 손전등을 비춰 가며 돌아왔다
산에 둘러싸인 칠흑만큼 좋은 것도 없다
산에 둘러싸인 칠흑 속에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나로 우리로 있을 수 있다
나이자 우리인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시라코산의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아내와 둘이서 손전등을 비춰 가며 말없이 걸어 돌아왔다
-야마오 산세이
어떤 시는 내 느낌 한 줄 덧붙이기가 민망할만큼 그 자체로 완벽하다. 평범하고 쉬운 단어로 쓰여져 금방 이해가 가면서도 동시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 그런 시를 만나면 시를 잘 음미해야한다고 힘주고 있는 내가 무색해진다. 힘이 빠지고 시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사실 시를 만나고 이런 상태가 되는 게 좋다.
칠흑같은 어둠은 두렵고 공포스럽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 자리에 앉아 마냥 울고 싶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소리치며 발을 구를 것 같다.
하지만 어둠도 얕거나 옅어서는 안되고 완벽히 깜깜한 칠흑같은 어둠 속에 있어봐야 "나로 있을 수 있다"로 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철저하게 공포스러운 순간에 직면해야 자신이 보인다는 말이다. 어쩜...이렇게 가혹하다니. 자신을 알아가려면 이만한 담대함은 있어야 한다. 밝고 찬란한 것만 쫓으면서도 충만한 내가 되길 바랬던 나와는 정반대의 결론이다.
다행스러운 건 함께 옆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걸어가는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희망이 생긴다. 어둠이 사라지길 바라거나 어둠 자체를 직면하지 않기를 고대하지 말고 한 명의 친구와 작은 손전등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위로해준다. 어떻게 보면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아니면 평생 갖지 못할 수도 있지 않나. 칠흑같은 어둠을 같이 걸어갈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단 말일까. 손전등을 알아볼 마음도 능력도 없다면?
그저 내 곁에 떠나지 않고 있는 옆 사람, 서랍 구석에 처박힌 손전등 하나에 시선을 주면 된다. 화려한 불빛을 쫓아다니지 말고. 슬금슬금 들이닥치는 어둠에 놀라 줄행랑 치기 바빴던 나를 붙들어 뒤돌아 세워 직면하기만 한다면 나는 본능적으로 내 사람과 함께 작고 소박한 손전등을 하나를 찾아 어둠을 뚫고 집으로 돌아올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