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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23. 2021

월급 15만 원

성호의 글




ⓒ manseok Kim on Pixabay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선언은 했지만, 막막한 건 사실이다. 회사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업무를 하면 정해진 급여가 나온다. 마치 결제하면 선택한 것이 예외 없이 나오는 자판기나 키오스크 같은 예측 가능한 인생. 반면에 회사 밖에서는 정해진 대로 해야 하는 건 없지만 그만큼 결과도 정해진 것이 없다. 무엇을 뽑든 자유지만 결과는 보장되지 않는 제비뽑기와 같다. ‘회사 없이도 자유롭게 살면서 돈도 버는 삶’이라는 경품을 한 번 뽑아보겠다며 고생길에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회사 밖 인생이다.



다행히 모아둔 돈이 있어서 조급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잠시 쉬어갈 여유를 주고 싶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 잔고가 슬슬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내 ‘멘탈 잔고’도 함께 줄어들었다. 한동안 돈을 벌지 않아도 큰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저 외면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벌이를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뚜렷한 계획을 가지고 퇴사를 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렇다 할 대책이 없었다. 



회사 같이 대책이 없어도 급여는 나오는 든든한(?) 존재가 이제 없으니 내 인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오롯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럼에도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참아가며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었기에 글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우선 다양한 예비/기성 작가들이 활동한다는 ‘카카오 브런치’ 작가 신청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지금은 감사하게도 작가에 승인이 됐다). 탈락 소식을 보자마자 다른 곳을 물색하여 알게 된 곳이 ‘오마이뉴스’였다. 작가로 승인을 받아야만 글을 올릴 수 있는 브런치와는 달리 누구나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주제로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별도의 승인 절차가 없는 대신 작성한 글이 편집부의 컨펌을 받아야 기사로 등록이 되는 방식이었다. 



브런치에 낙방한 좌절감을 에너지로 승화시켜 오마이뉴스에 보낼 기사를 작성했다. 3~4시간을 들여 작성한 첫 번째 기사가 통과가 되었다. 기사가 얼마나 많은 주목을 받았느냐에 따라 기사 등급이 책정되는데, 놀랍게도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다. 그 대가로 6만 원의 원고료도 나왔다. 글로 돈을 벌어본 인생 최초의 경험이었다.



두 번째는 요즘 핫하다는 전자책 부업에 도전해 봤다. 유튜브에서 전자책에 관한 몇 가지 영상들을 살펴본 후에 내가 좋아하는 해외 트레이너의 운동 루틴을 번역하고 재구성하여 전자책으로 만들었다. ‘크몽’과 ‘오투잡’이라는 재능 공유 플랫폼 두 곳에 내 전자책을 올렸다. 한 달 동안 크몽에서 단 1건의 판매만이 일어났고, 나에게 떨어진 실제 수익은 7,987원이었다. 



세 번째 도전은 이모티콘 제작이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심사가 까다롭다고 하여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네이버 OGQ 마켓 이모티콘(네이버 블로그, 카페에서 사용할 수 있음)에 도전해 보았다. 내 관심사 중 하나인 ‘비건’을 주제로 하여 곧바로 제작에 돌입했다. 약 4시간에 걸쳐 작업을 하고 제출했다. 판매는 단 2건, 그것도 나랑 민경이가 테스트 삼아 직접 구매해 본 것이 전부였다. 2건에 대한 실제 정산 수익은 1,292원. (다행히도 이 글을 쓰고 나서 아주 조금 더 팔리긴 했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한 이후 두 달 반 동안 발생한 총 ‘매출’은 약 30만 원이다. 세금이나 플랫폼 수수료를 제외하면 실수령액은 3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한 달 급여로 환산하면 15만 원... 이야, 이거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해진다. 갑자기 손 놓고 있던 주식이 떠올라서 주식 앱에 들어가 봤더니 여기서 발생한 수익은 30만 원을 훨씬 넘는다. 허허.. 이래서 다들 주식이나 코인에 뛰어드는구나.



이런 결과를 보고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며 그러게 잘 다니던 회사는 왜 그만둬서 고생을 사서 하냐고 나무랄 것이다. 누군가는 연민이나 동정심을 느낄지도 모르겠다.(후원계좌는 우리은행 1002…) 그렇지만 손 놓고 있던 주식에서 발생한 수익보다 ‘내 힘’으로 직접 번 30만 원이 훨씬 값지게 느껴지는 나는 그저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인 걸까?



이제 고작 두 달 남짓했을 뿐이다. 두 달 동안 30만 원을 번 것은 자유에 뒤따르는 혹독한 책임이라는 교훈을 던져주기도 했지만, 회사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내 능력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첫 시도에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가능성에 대한 확인이지 대박을 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났다면 물론 더 좋았겠지만)



남은 것은 자유에 대한 책임을 다하면서 이 금액을 꾸준히 키워나가는 것이다. 왕도가 있겠는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가면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어느 웹툰의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방법은 몰라. 다만 내가 해낼 것이라는 결과만 알뿐.” 



멋진 말이다. 나도 결과를 먼저 정해두고 그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나갈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돈 걱정 없이 살아가는 멋진 미래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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