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7화
일본 문화의 쇠락은 일본 경기 침체와 관련이 있다. 문화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뒷받침 돼야 한다. 공권력으로부터 검열과 통제를 받지 않는 창작의 자유와 튼튼한 경제적 뒷받침이다. 전 세계 GDP 순위 2위인 중국은 미국과 패권다툼을 할 정도로 경제력이 강하지만 공산당의 지나친 검열과 통제로 인해 중국 문화는 세계 정상에 설 기회를 잃었다. 중국과 비교하면 일본 문화는 창작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오랜 경기 침체로 예전만큼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흔히들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30년'에 비유하곤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과 산업화에 속도를 내면서 일본은 196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이 시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1960년대에는 평균 10%, 70년대 5%, 80년대 4%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성장세에 일본 문화는 1980년대부터 꽃피우게 된다. 80~90년대 일본 주요 만화였던 에반게리온, 건담, 드래곤볼 등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았다. 단순히 미지의 세계인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문화는 그 나라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1세대 K팝 스타들이 2세대부터 활동 반경을 아시아, 세계로 확장한 건 한국 문화의 세계관이 확장했기 때문인 것이다. 미국 다음으로 부자였던 당시의 일본은 우주를 주무대로 삼을 만큼 자신감이 넘쳤던 것이다. 일본 문화는 전 세계 청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다. 세계가 포켓몬에 열광했고,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여가 활동을 즐겼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전 세계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대단했던 일본 문화는 버블붕괴와 함께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일본은 전 세계 콘텐츠 IP 강국으로 있지만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잃어버린 건 확실하다.
일본 문화가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경제 회복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잃어버린 30년'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전문가의 글을 찾아보길 추천한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고자 한다면 정치 체제가 변화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중국 못지않게 1당 독재 체제가 지속되는 나라다. 좀 더 정확하게는 독재라는 표현보다는 독주가 맞겠다. 중국과 달리 민주주의 국가인 일본에는 야당이 존재하며 국민들은 직접 투표로 국회의원을 뽑는다. 하지만 야당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다. 일본 자민당은 1955년 창당한 이래 1993~1996년, 2009~2012년을 제외하면 약 60년 동안 일본을 통치했다. 자민당의 독주 속에 일본의 정치는 변하지 않았고,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의회를 갖게 됐다.
일본 의회의 평균 연령은 55.5세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또 일본 여성 의원 비율은 참의원 10%, 중의원 25.8%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일본 의회를 요약하면 '5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 약 60년간 일본을 통치하고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폐쇄적인 의회가 장기간 유지된 일본 의회는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
한국의 거대 양당이 철 지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낡은 이념에 집착하듯 일본 자민당은 '전쟁 국가로 전환’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매몰되어 있다. 근래 자민당의 최대 성과 중 하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도록 헌법 해석 변경 결정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전범국인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헌법에 군대 보유 금지를 명시했다. 사실상 군대를 해체한 일본은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아베 정권은 일본이 무력행사를 가능토록 헌법 해석을 변경했다.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이어받은 기시다 내각도 전쟁 가능 국가로 전환하겠다며 공개적으로 밝혔다.
전쟁을 일으킨 지난 역사를 잊고 다시 전쟁 가능한 국가로 돌아가려는 건 반인륜적인 행보지만 자민당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 사업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뤄냈던 자신들의 전성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주변국에 무기를 수출하고 방위비를 늘리면서 장기간 침체 된 일본 경제를 다시 일으켜 보려는 계획이다. 일본 역사상 경제가 최고로 성장했던 시기이기에 전쟁 가능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자유'를 외치고,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민당의 60년 독주와 50대 이상 아저씨들이 독점한 일본 정치는 비전을 잃었다. 폐쇄적인 의회는 정치적 성장 동력을 잃었고, 새로운 정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자민당 아저씨들은 자꾸만 자신들의 영광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꿈꾼다. 이러한 정치 체제 속에서 일본이 과연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고, 경제를 회복시켜
일본 문화를 다시 세계 정상으로 이끌 수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프롤로그]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1화] K팝의 성공은 '다양성'이었다.
[2화] MZ세대는 왜 집회 현장에서 K팝을 틀었을까?
[3화] K문화, K정치와 충돌하다.
[4화] 정치는 어떻게 홍콩 영화를 몰락시켰나.
[5화] 중국 콘텐츠는 왜 세계를 장악하지 못할까?
[6화] K팝이 쫓던 J팝은 어쩌다 K팝을 벤치마킹하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