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는 문화를 어떻게 망치나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10화
이슬람은 전 세계 인구 25%를 차지한다. 게다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오일머니라는 막대한 경제력도 있다. 또 이번 리야드 엑스포 선정에서 보았듯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도 보유하고 있다. 엄청난 인적 자본과 경제력 그리고 네트워크까지 갖춘 이슬람이지만 이슬람 문화는 아직 세계 정상에 서보지 못했다.
이슬람 문화가 아시아의 변방인 한국 문화보다도 영향력이 없는 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권위주의'와 '차별'이다. 홍콩과 일본의 사례에서 보았듯 정치체제가 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은 크다. 중동 국가의 정치 체제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왕정 국가다. 영국과 일본에도 왕이 존재하지만 상징적인 존재일 뿐 직접 통치하지는 않는다. 반면 중동 국가의 왕은 직접 통치한다. 사우디가 대표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빈살만 왕세자의 또 다른 직함은 사우디 총리다. 왜 왕세자가 전 세계를 돌면서 각국의 기업들과 MOU를 체결하는지 의문이 든 적이 있다면 이제 이해가 될 것이다. 그가 사우디의 실질적인 실권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 빈살만 왕세자는 연로한 국왕을 대신해 사우디를 통치하고 있다.
비왕정 중동 국가 중에서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에는 군사 독재가 이어지거나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집트는 30년간 장기집권했던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난 후 아랍의 봄과 함께 민주화가 오는 듯했으나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엘시시 정부는 무바라크 정권보다 더 강력한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비아나 시리아는 정권이 무너지고 내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슬람 문화권 국가 중 그나마 공화제를 채택한 튀르키예, 이란 등도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와 거리가 가깝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2003년 첫 집권 이후 20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이다. 2003년 총리로 선출된 그는 3연임에 성공했다. 총리직 4연임이 불가능하자 그는 튀르키예 정치 체제를 내각의원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전환하고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계속 집권하고 있다. 2016년에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에도르안 대통령은 쿠데타를 제압하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입법부, 사법부까지 아우르는 강력한 권한을 손에 넣었다. 오죽하면 이슬람 군주를 지칭하는 '술탄'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까 싶다.
이란은 무늬만 공화국이다. 이란에는 대통령이 존재하지만 신정국가인 이란에서는 종교지도자인 ‘라흐바르’가 서열 1위로 대통령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다. 이란 대통령은 국민 투표로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인데 반해 라흐바르는 종신직인데다 군대·종교·사법·언론 등을 통제하는 절대 권력을 가진다. 대통령은 내각을 구성할 권한을 가지지만 역시 라흐바르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왕정 국가, 내전 중, 무늬만 공화국인 나라까지, 이슬람 국가들의 정치 체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권위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국가들의 리더(대통령, 총리 등)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입법부·사법부를 강제로 장악하며, 야당의 권리를 강도 높게 침해한다. 언론 및 표현의 자유도 지극히 제한된다. 이런 나라에서 정권을 비판하거나 정부의 부패를 들추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을까?
이슬람 인구가 전 세계 25%를 차지하지만 아직까지 이슬람 문화가 주목받지 못한 건 권위주의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함께 이슬람 문화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차별'이다.
다음편에 계속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프롤로그] 정치는 어떻게 K팝을 몰락시킬까?
[1화] K팝의 성공은 '다양성'이었다.
[2화] MZ세대는 왜 집회 현장에서 K팝을 틀었을까?
[3화] K문화, K정치와 충돌하다.
[4화] 정치는 어떻게 홍콩 영화를 몰락시켰나.
[5화] 중국 콘텐츠는 왜 세계를 장악하지 못할까?
[6화] K팝이 쫓던 J팝은 어쩌다 K팝을 벤치마킹하게 됐을까.
[7화] 자민당의 60년 독주가 망친 일본 문화
[8화] 세습 정치가 망친 일본 문화
[9화] 왜 세계 인구 25% 이슬람 문화는 K팝만 못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