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고 따스한, 도시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산골짜기 시골 마을에서의 십 년 삶은 꽤나 큰 도전이었고 모험이었다. 대도시에 살던 사람이 시골로 내려가서 적응하는 것은 시골이나 지방 소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상경해서 적응해 나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시골 생활 십사 년이면 이제는 제법 적응했을 법도 한데 나는 가끔씩 올라가는 본가나 서울에 가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내 몸에 유해하기 짝이 없는 매연이며 새벽까지 밤을 밝히는 네온사인의 불빛이 내게는 환희의 세례에 가깝다.
저녁 무렵, 지는 해에 황금빛으로 물드는 건물들을 보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밤이 되면 집집마다 켜지는 불들이 만들어내는 환한 모자이크도 나는 사랑스럽다. 누군가는 나를 향해 변태에 가깝다고 욕할지는 몰라도 딱 떨어지는 직선들 그 직선들이 만나 만드는 면의 날카로움을 보면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너무나도 완벽한 안정감이 아닐 수 없다.
찬란하고 아름답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사진 전시회가 하나 있었다. 이경준 작가님의 ‘one step away'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전이었는데, ‘도시’,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의 바쁜 일상과 따분하고 지루함을 넘어 규격화된 공간 구획 등이 답답하게 그려졌겠거니 생각했는데 우연히 보게 된 그의 사진 속 도시는 따스하고 운율감이 있었다.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위트 넘치는 변격을 찾아내서 따스하고 다정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인간이 만든 거대한 빌딩 숲은 신이 보낸 저녁 햇살에 황금빛으로 물든다. 도심 속 공원 속에서 누구보다 여유로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빌딩 꼭대기 옥상과 건물 베란다(혹은 발코니) 공간은 신선한 쉼을 선사한다. 이런 다양한 변격들을 이경준 작가는 잘 포착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어때, 아름답지? 도시라는 곳 꽤나 그럴싸한 곳이지?”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도심 속, 서늘한 사각형들이 반복되는 공간 속에서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격’을 만들어낸다. 역시 확실하면서도 가장 쉬운 변격 중 하나는 ‘공원’일 것이다. 도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초록빛 자연은 인간의 장기로 치면 폐에 가까울 것이다. 인간은 숲 안에서 숨을 쉬듯 ‘쉼’을 내쉰다. 공원의 정경보다는 공원 안에서 명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까르르 웃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에 안심이 된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조경가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가 말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통찰력인지. 이후 우리나라의 여의도공원이 이를 본떠 만들었다는 사실은 꽤 유명하다. 그리고 송도나 동탄은 아예 센트럴파크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고 경의선 숲길은 연트럴파크라는 별명이 생겼다.
공원뿐만 아니라 옥상과 베란다를 쉼의 공간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담아낸 사진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옥상과 베란다 내지는 발코니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매개공간이다. 안타깝게도 거의 일중독에 가까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 있는 동안은 외부와의 차단을 꿈꾸는 듯하다. 아파트의 베란다는 수납공간으로서만 기능하다가 1988년에 실내공간으로 합법화되자마자 발코니에는 창문이 달리기 시작했고 90년대를 넘어서는 발코니 확장공사가 거의 공식화되면서 완벽한 실내공간이 되어버렸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발코니 혹 베란다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매개공간이 아니라 내부 공간으로 완벽하게 바뀌어 버렸다. 물론, 연교차가 큰 우리나라의 날씨와 미세먼지와 매연 등이 발코니를 오롯이 활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한몫을 했지만 그럼에도 뭔가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외부와 내부의 단절이 꽤나 묵직한 편이고 따스한 도시로 작용할 수 있는 중요한 변격을 잃어버린 셈이니 말이다. 물론, 요즘 루프탑이라 불리는 옥상의 가치는 꽤 인정받고 있지만 말이다. 공용 공간으로 같은 빌라 혹은 아파트 사람들끼리 친목을 다지기도 하고 타프를 설치해서 확 트인 거실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런 소소한 변격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언젠가 한 아파트에서 ‘창문밖으로 이불을 말리는 무례하고 무식한 행동’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경고에 공지문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니 함부로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을 듯하다만, 베란다에 깨끗하고 하아얀 혀를 빼꼼, 내민 이불들이 나는 무례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삐져나오지 않은 창문들이 깨끗해 보이기는 하지만 뭐랄까, 허점 없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느껴진달까. 오히려 허점들로 보이는 작은 변격들이 우리를 조금 더 여유롭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뭐, 그래도 담배 냄새는 사절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