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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Oct 13. 2024

교토에서 저녁을, 또?!

커피 한 잔으로 충분한.

 어젯밤 고급스러운 멜로 영화를 한 편 보고 났더니 자정 바로 전. 그리고는 사십 분가량 동네 공원을 한 바퀴 거닐다 들어왔다. 까짓것 알람 끄고 늦잠 자자,는 마음으로 두 시를 훌쩍 넘겼다. 나름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는데 세상이 가라앉아 있다. 유독, 흐린 날이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늘 나를 깨워주는 동거묘의 기척 없이 지나치게 고요한 집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일단은 무작정 씻고 짐을 꾸려 나왔다.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르는 카페로.

 나이가 들면서 쿠폰에 도장 찍는 게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한동안 쿠폰 찍어주겠다는 가게 주인장의 말에 쿨하게 ’괜찮습니다‘를 내밀었건만 일주일에 한 번씩 루틴처럼 오게 되다 보니 쿠폰 한 장에 도장이 다 찍혔다. 드립 커피를 잘 내리는 곳이라 늘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는 터라 아메리카노 한 잔 먹겠다고 이 쿠폰을 들이대는 게 여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오늘 알아보니 ’드립 커피‘도 마실 수 있다는 희소식을 전해주신다. 와!! 다음엔 부끄럽지만 다음엔 친구 한 명 데리고 와서 한 잔은 쿠폰을 마셔야겠다, 생각했다.


 “오늘은, 플레인 휘낭시에와 어울릴 거 같아서 이걸로 드릴게요.”


 심지어 가져다 주시는 바람에 황송함이 큰 아침이었다.



 

 몇 년 전 친구와 갔었던 니조성이 생각나 부리나케 그리로 갔다. 아하, 발이 늦은 탓에 결국 시간이 어중간해지는 바람에 그냥 주변을 걷기로 했다. 무작정 걸으며 평범한 주택가 근처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원두 볶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따라 카페를 찾기 시작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분명 커피 볶는 향은 나는데 카페가 보이질 않았다. 길을 살짝이라도 벗어나면 커피 향은 나질 않고 커피 향을 따라 가다 보면 결국 갔던 데를 게속 또 걷는다. 이럴 땐 내 시각을 믿지 않는다. 내가 ‘봤다고’ 여기는 것부터 의심하기. 그리고 으레 생각하는 카페로 들어가는 입구며 골목... 모든 것을 버리고 ‘설마’ 하는 거기도 가보기로 한다. 그렇게 한 30분을 헤매서 찾아낸 카페가 바로 ‘클램프 커피 사라사‘였다.


시간을 지닌 공간은 아름답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카페의 점원은 온 몸으로 나에게 메세지를 던졌다.

 “나가서 기다리세요.”


 영어로 말을 걸어봤으나 익숙하지 않은 언어여서 그런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에 표정과 손짓을 곁들여 ‘나가라’고만 하고 있었다. 대충 느낌을 보니 바깥에서 기다리라는 이야기인가 싶어 바깥에서 기다리며 눈짓으로 내가 여기 있음을 계속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 건지, 기다리다 보면 들어오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어쨌든 안쪽에 들어가서 줄을 서야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갈까 하다가 이것도 ‘연’이다 싶어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20분을 기다리다가 주문을 받는 곳으로 보이는 곳에 슬쩍 가서 줄을 서 있었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 오로지 눈치 하나로, 커피 주문에 성공했다.


 그렇게 바깥 수풀이 보이는 창가에 앉았고 그제서야 카페 내부가 보였다. 작고 투박했지만 꾸밈 없는 카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슬레이트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벽면과 철제 구조가 남아있는 천장을 보니 본래부터 카페 건물은 아니었던 듯하다. 오래된 창고 내지는 공장의 역사가 엿보인다. 나무로 만든 창틀도 이 건물이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깥 풍경을 담아내는 창틀은 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존재감이 대단했다. 바깥 공간을 따스하게 연결해주면서 스스로의 값어치를 드러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감사하게도 내게 앉으라고 권해준 곳이 바로 이 창쪽 자리여서 창틀과 창틀이 비춰주는 바깥 공간을 음미할 수 있었다. 나중에 내게 커피가 왔을 때 커피에 담긴 풍경과 향내는 나중에 이 카페에 다시 들를 이유가 되었다. 내 자리 옆으로는 커피를 볶는 로스팅 기계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이 로스팅 기계 녀석은 확실히 나중에 들어온 티가 났다. 그러나 뭐랄까, 이 공간과 잘 어울리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달까. 그 노력이 가상해서 꽤 흡족했다.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진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꽤 그럴싸한 카페였다. 오래 앉아있기 편한 곳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커피 한 잔 하면서 멍 때리기 좋은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올 땐 정말 단촐하게, 와서 공간과 커피와 바깥 풍경을 누리며 고요히 있다가 가면 좋을 것만 같다.



커피 한 모금으로 모든 게 완성되는.


 우연이 내게 준 선물이어서 그런지 이 카페는 꽤 유명한 곳인 듯했다. 일본인보다는 외국인들이 꽤 많이 자리잡고 있었고 내가 들어온 이후에도 나와 비슷한 봉변(?)을 당하며  외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눈치‘가 꽤 도움이 되는 듯하다. 그리고 내 앞으로 드디어 커피가 도착했다. 커피 맛이 너무 훌륭해서 그 맛을 지금 당장에라도 떠올리면 좋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기억나는 건, 그 커피 한 잔이 이 카페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커피의 표면에 담긴 나뭇가지와 잎사귀, 꽃 한 송이가 아름다워 한 모금까지 이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커피잔을 조용히 들어올렸을 때, 잠시 커피 속 세상이 흔들린다. 대신 진하고 풍성한 향기가 코끝에 머물렀다. 한 모금, 마셨을 때 입 안 가득 개성있는 맛이 퍼진다. 그렇다고 공격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천천히 입 안에서 궁글리다 보니 맛은 찬찬히, 고요하게 잦아든다. 내려놓는 손끝이 느리다.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커피 한 모금으로 이곳 카페가 완성된다.



 이곳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존재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꽤나 쌀쌀맞고 무심하며 사람을 맞이하는 데 투박하다. 카페 나나에서처럼 살가운 환대를 받을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친절함’이라고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가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추천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냥 이 사람들의 투박함을 카페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투박함에도 뭔가 맥락이 있을 텐데 나는 지금 그 맥락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일본어가 되는 사람이었다면 조금은 그 맥락을 더듬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는 개성 넘치는 카페를 만난 것 자체가 꽤 럭키비키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카페에서 나오니 비가 톡, 토독, 톡..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친절한 사람들이 내미는 호의는 뜬금없이 외로워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환대임은 틀림 없다. 마음에 스며드는 우울함이 다소 누그러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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