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예기치 못한 대기업과의 소송전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에 휘말릴 때가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기 마련이고, 그 관계란 필연적으로 오해를 낳거나,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잘해 보려다가 생기는 오해라면 만나서 풀면 될 일이지만, 만약 누군가 고의로 문제를 일으킨 경우라면, 서로 좋게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경찰서도 있고, 법원도 있다.
가급적 법원이나 경찰서에는 안 가고 사는 게 상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열심히 살다 보면, 본인 의지와는 관계없이 혹은 제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사법기관에 드나들 일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법원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다양한 사연으로 출입하는 곳이다. 꼭 이혼소송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의 첫 사법기관 출입은 고등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동네 일진(?) 패거리들에게 길 가다가, 느닷없이 한 대 맞는 봉변을 당한 일 때문이었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위해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분실해서, 경찰서를 찾았던 일도 기억난다. 모두, 좋은 기억은 아니다. 괜히 주눅 들고,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나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법원을 출입했다. 그것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말이다. 꼭 경찰이나 공무원, 판검사, 변호사만 법원에 수시로 드나드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법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수년간 소송업무를 담당하며 법원을 출입했다. 부실채권 회수, 시효관리를 위해 원고 측 대리인으로 직접 소송을 수행했다. 채권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그다지 거리낄 건 없었다. 상대방도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기에, 때로는 감정이입도 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든 적도 많지만, 공과 사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아쉽게도, 채권자나 거래처를 일부러 속이거나, 해할 목적으로 금전적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자들에게 잘못 걸리면, 제아무리 센 사람도, 선량한 채권자라 하더라도, 당해낼 재간은 없다. 피고가 원고 되고, 채무자가 채권자가 되어 공격(소송)을 가하는 경우도 생긴다. 일견, 세상은 요지경이다.
법원 우편물이, 사무실이 아닌 집으로 송달되는 바람에, 아내가 새파랗게 질려, 이번엔 무슨 사고를 쳤느냐며 따져 묻던 기억도 있다. 어느새 법원 출입이 자연스러워지자, 송달 주소지를 집으로 적는 수준이 된 것이다. 하긴, 법원 출입문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던 사회복무요원이, 나를 향해 “변호사님은 그쪽 말고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라고 말하던 에피소드까지 있을 지경이니, 그럴 만도 했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가장 사람이 붐비던 곳은 이혼 법정과 경매법정이다. 경매법정은 그야말로, 삶의 체험 현장 그 자체다. 모든 것을 잃고, 가진 재산으로 빚잔치해야 하는 채무자! 그도 알고 보면, 한때는 잘 나가던 사업가였을 터다. 애초에 별 볼 일 없던 기업가는 자가 사업장에 자가주택까지 소유할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한때의 실수, 피치 못할 사정, 혹은 통제할 수 없던 이유로 인해, 공장과 건물, 아파트를 이곳에 내놓게 되는 심정을 어찌 쉽사리 헤아릴 수 있으랴.
반면, 채권자들은 저마다 나누어 받을 배당액이 얼마나 될지 계산하느라고 분주하다. 경매계에서 작성한 배당표에 혹시나 오류는 없는지, 우리 회사 배당금, 나의 임차 보증금이 과소 계상된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따져볼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문가 집단이라 하더라도, 종종 잘못 작성된 배당표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허위의 채권자도 가려내야 한다.
경매법정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채무자의 하소연과 한숨, 채권자의 안도감과 불만이 혼재된 경매법정은 더 이상 신성한 법정이 아니라, 리얼한 삶의 축소판일 뿐이다.
패자가 아닌 승자도 있다. 바로, 경매 낙찰자다. 경제가 호황이면 호황인 대로, 불황이면 불황인 대로, 물건의 주인은 귀신같이 나타난다. 그가 낸 낙찰대금을 재원으로 빚잔치를 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채무자(원소유자)에게까지 배당이 돌아간다.
자기 살던 곳을 비워줘야 한다는 이유로, 낙찰자에게 앙심을 품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그럴 일은 아니다. 그는 물건에 가장 높은 가치를 매겨준 셈이니, 채권자에게도 채무자에게도 고마운 사람일 수 있다. 다행히 낙찰자는 낙찰자대로 만족한다. 수익률 계산하지 않고, 함부로 거액을 베팅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사업하다 보면, 어디 경매뿐만이겠는가. 경매사건은 그래도 홀가분한 마무리,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 볼 수 있다. 빚잔치를 다하고 나면, 채권자나 거래처에 대한 책임감도 덜하다. 파산/면책 제도를 잘만 활용하면,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래처와 금전 소송에 휘말리거나, 사기/배임/횡령과 같은 형사 소송의 당사자가 되면, 자칫 지옥 같은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돈은 돈대로 잃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질 수 있다. 더구나, 잃은 돈을 회복하기 위해 비싼(?) 변호사 비용을 감내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선 승소 사례금도 지급해야 한다.
만약 돈이 없으면, 모든 결과를 자기 잘못으로 받아들여, 제 몫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몸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국선 변호인 제도가 있고, 민사 소송의 경우에는 자기 변론도 가능하지만, 뭘 좀 아는 주변 사람들은 충고한다. 가능하면 전관예우(판검사 출신) 변호사, 경찰대 출신 형사전문 변호사를 쓰라고 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몇 년 만에 Y로부터 연락이 왔다. Y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벤처기업 사업가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IT 업무를 책임진 베테랑이다. 실력도 좋고, 인품도 훌륭한 편이라, 따르는 사람도 많다. 퇴사 후 바로 회사를 차렸음에도, 일감이 많았으니, 인정할 만도 했다.
그러던 차에, 모 대기업으로부터 대형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아무래도, 규모도 사업 분야도 부담스럽다 보니, 신규 아이디어 확보 차원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소개받던 중 나까지 만난 것이다.
업무는 나의 영역 밖 일이었다. 난 프로그래머도, 그렇다고 플랫폼 전문가도 아니다. 그래도, 민폐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총 6개월가량 성심성의껏 힘을 보탰다. 나의 역량도 개발하고, 언젠가 닥쳐올 퇴사 이후를 미리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돈 한 푼 받지 않고도, 어떤 일에 몰입할 수 있음을 이때 알았다.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건 꿈과 미래다.
그 후 1년이 흘렀다. 잘 지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Y로부터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일이 좀 생겼으니 한번 사무실로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때 그 대기업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다. 소장이 접수된 후 벌써 수개월이 흘렀다. 그는 고민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까지 연락을 준 것이다.
애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계약이 호락호락하게 체결될 리는 없다. 주무 부서가 있고, 전문가들도 즐비하다. 예산팀, 감사팀, 그리고 그룹 최고위층까지 두 눈 새파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수십억에 이르는 <신규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
굴지의 대기업이,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전사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업임을 잘 알기에, Y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업무도 생소하고, 내부 전문인력도 부족하고, 자금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기가 욕심낼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판단해, 고사의 뜻을 밝힌 적도 여러 차례였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회사를 업그레이드하기도 쉽지 않고, 언제까지 입찰업무만 수행하며 법인을 꾸려나갈 수도 없었다. 오랜 시간 팀워크를 다져 온 소프트웨어 전문인력도 있고, 그간 대기업, 금융기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한 실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다 알고 시작한 일은 하나도 없었기에, 자신감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계약을 체결한 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중간중간 나에게 보여준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고, 그 반응은 대기업 파트너들도 마찬가지였다. Y와 직원들이 밤새우는 일은 일상이었고, 가끔은 짜증 날 정도로 나에게도 밤낮없이 연락이 왔다. 돈보다는 열정,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 Y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물론, 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를 다 알지는 못한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이 작성한 소장을 읽다 보면, Y와 그 회사 직원들을 작정한 사기꾼(?)으로 오해하기도 쉽다. 판검사 출신의 국내 최고, 최대규모의 법률회사 소속 변호사들이 작성한 대기업 측 입장의 소장이니 얼마나 잘 썼겠는가. 피고 측을 잘 이해한다는 내가 보더라도, 설득될 수준의 내용 전개였다. 물론, 소설 같은 각색과 교묘한 이야기의 편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내가 아는 한, Y와 직원들은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어디에도 없던 플랫폼을 만들었고, 대기업 측에 시연해 칭찬도 받았다. 모르는 부분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가 배우고, 모자란 부분은 메꾸어 가면서 하나씩 해결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소송 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 Y 측 잘못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 어떤 다툼이든 상대방이 있는 한, 어느 한쪽에 100%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어쨌든, 십중팔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소송은, 그 시작과 동시에 한쪽은 치명상이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어느 정도 결판이 나 버리는 형국이다.
당장 피고 측은 소송대리인, 즉, 변호사를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얘기하고 나면, 내용은 들어보기도 전에 거절하기 일쑤다. 실력 있다는 변호사를 수소문해 의뢰하려니, 이번엔 소송비용이 부담된다.
변호사를 구해도 문제다. 처음부터 있었던 일을 다 설명해 주고, 서류를 제출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똑똑한 변호사라 해도, IT 용어, 소스 코드, 프로그램 구조를 온전히 알아듣기는 힘들다. 게다가, 대리인이 이 소송만 담당하는 것도 아니기에, 투입할 에너지도 시간도 한정적이다. 그러다 보면, 이럴 바엔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편이 낫겠다는 푸념도 나온다.
대한민국은 소송 공화국인지라, 변론기일도 잘 잡히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과연 결과가 Y에 유리할지 예단하기도 쉽지 않다. 정신적으로만 힘든 게 아니다. 당장, 주거래통장이 (가)압류되어 직원들 월급이 몇 개월 치 밀렸고, 가족 생활비도 여기저기서 빌려 충당할 수밖에 없다.
Y의 개인 재산도 모두 법인에 투입했으니, 하늘이 무너져도 정신만 차리면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도, 아직까진 유효하지 않다. 따로, 비자금을 챙겨두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울 따름이다. 무심하게도, 세상은 내 맘 같지 않다.
가장 힘든 건 형사 소송이다. 바로 엊그제까지, 계약 당사자로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이제 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죄>로 고소하다니. 아무리 프로젝트 결과가 신통치 않았더라도, Y 입장에선, 이건 터무니없는 겁박이요, 자비 없는 폭력이다. 오십 평생 법원은커녕, 경찰서에도 단 한 번 출입한 적 없다는 그가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것도 이해가 된다.
수익금이라 해 봐야 통장에 남은 돈이 다고, 그 돈도 압류되어 한 푼도 인출하지 못하는데, 상대방이 승소한다고 한들, 어디서 수십억 원을 마련해 지급하라는 말인가. 그 돈은 직원들 인건비, 외주 용역비, 소프트웨어 구매비 등으로 이미 소진됐다. 하물며, 형사 소송까지 제소하다니, 시쳇말로 감옥에라도 가게 되면, 상대방은 도대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일까.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거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여기에 건강까지 잃으면, 전부 잃는 셈이다. 그런데, 자칫하다간, Y는 돈과 명예, 건강까지 다 잃을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된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외교 분야에 관련된 격언으로만 생각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도 크지 않았던 차에, 어느 날 갑자기 카드사용이 정지되고, 경찰서에 피의자로 불려 나가고, 직원들 월급도 제때 주지 못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이 험난한 다툼이 언제 끝날지 기약마저 없다면, 과연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Y와 동료들이 마냥 이 사건만 대처하며 전전긍긍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1차 준비서면은 무사히, 그리고 논리적으로 잘 적어서 제출했으니, 이제부터는 법원의 시간이다. 자책과 후회, 원망만 하다간, 미래는 없다.
Y의 시선은 이제 다른 곳을 향해야 한다. 다행히, 직원들은 떠나지 않고, 그대로다. 이제, 그동안 잠시 유보해 두었던, 다른 회사의 용역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한다. 다행히, 음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홈페이지 구축, 그리고, 음원 플랫폼 프로젝트가 들어왔다. 달리 방법은 없다. 일로 극복해야 한다.
공권력의 힘을 빌려 잘잘못을 가리고, 끝을 보기 전에, 부디 공방의 당사자들이 직접 대면해 얽히고설킨 감정의 실타래를 푸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제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해도, 막상 얼굴 보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해가 이해로 바뀌기 마련이다. 그때는 틀렸어도, 지금은 맞는 일이 생긴다. 법으로 해결하는 건 마지막 수단이다. 우리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교육받는 건, 대화와 토론, 그리고 타협을 위해서다.
여전히 세상은 요지경이고, 사기꾼들도 부지기수지만, 세상은 아직 선량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고의로 사기 치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는 이상, 용서와 화해는 세상살이의 디폴트 값이다. 부디, Y 대표에게도 희망의 내일이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아직,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