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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쥐 Jun 22. 2023

산후탈모 극복기

100일에 잃었던 머리카락들을 200일에 되찾다.


놀랍게도 나는 33년 동안 염색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대신 ‘매직’이라는 펌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2000년대 초반부터 일 년에 최소 1번에서 2번 이상 꾸준히 매직을 해오고 있다. 한국인 치고는 꽤 심한 반곱슬 머리를 갖고 있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폭탄 맞은 사자머리가 되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다. 물론 곱슬머리의 장점(이자 점은) 모질이 굉장히 두껍고 머리숱 부자라는 점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살면서 머리숱 고민은 남의 일로만 여겼고 ‘탈모’라는 키워드가 나의 관심사 레이더 망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하지만 ’ 산후‘라는 단어와 결합된 ‘산후탈모’는 이런 나의 무관심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어마무시한 속도와 강도로 찾아왔다.


나름 순조롭게 진행된 출산. 그리고 극기훈련과 같았던 신생아 시기를 지나고 슬슬 통잠 시기가 찾아오며 백일의 기적을 기쁘게 맞이하려고 하던 와중에 말로만 듣던 탈모가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몇 달 동안 쌓여있던 게 한 번에 빠지는 거니까 조삼모사야‘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참고로 임신 중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머리카락이 심각하게... 잘 붙어있었다) 그런데 머리를 감을 때 빠지는 머리숱이 점점 많아지더니 이제는 하루종일 24시간 동안 머리카락이 끝도 없이 빠지는 것이 아닌가!! 아직 샤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수채구멍이 가득 차서 중간 제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미 린스와 함께 수없이 빗질을 하며 빠질 머리는 다 뺀 것 같은데도 마지막까지 헹궈내는 내내 머리카락이 엉겨 나왔다. 이제 그만 헹구고 샤워를 끝내야 하는데 자꾸 머리카락이 빠져나오니까 언제 중단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는 수없이 그냥 적당히 3분 정도 헹구고는 샤워를 끝냈다.


 빗도 나의 탈모가 얼마나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아주 좋은(?) 도구였다. 빗질을 한 번만 해도 깨끗하던 빗살이 머리카락으로 가득 차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어릴 때 공중목욕탕에 갔을 때 드라이기 옆에 여러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잔뜩 엉겨 붙어 거의 한 달은 방치된 것 같은 모양새를 한 빗이 연상되는 수준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웃기기도 해서 당시 빗을 사진도 찍어놓았다..) 그나마 빗질을 해야 그날 바닥에 쌓이는 머리카락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주 살살 빗었다.


당연히 마룻바닥도 난리가 났다. 우리 집에서 바닥청소를 유일하게... 담당하고 있는 로봇청소기가 단 2-3일 만에 파업을 선언하면서 (먼지통은 분명 깨끗한데 청소솔에 이미 너무 많은 머리카락이 엉켜서 이물질이 감지되었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정전기 청소 밀대가 합류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온 집안을 밀대로 밀고 다니면서 분명 머리카락을 한 바구니 치웠는데 오후가 되면 또다시 머리카락 지옥이 되어있었다. 하루에 두 번 밀대 미는 게 새로운 루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얼굴에 뾰루지가 올라와도, 살이 조금 쪄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로 외모에 대해 관대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탈모는 또 다른 얘기였다. ‘머리카락은 자신감!’이라는 탈모 관련 제품들의 광고카피들에 공감이 200% 됐다. 매일 보는 거울 속 모습이 어느 순간 평소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맘스홀릭인지 인터넷 어디선가 골룸이 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정말 딱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청나라 시대에 하던 변발 스타일도 연상케 했다. 탈모가 정점을 찍은 120일 무렵에 결혼식이 있어 아주 오랜만에 외출 준비를 하는데 아이섀도로 겨우겨우 헤어라인을 채워 넣었다. 너무 까맣게 채워져서 좀 웃기긴 했지만 그래도 이 방법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집 앞에 나갈 일이 있을 땐 모자가 필수템이 되었다. (물론 이건 지금도...)


호르몬 때문이고 시간이 흐르면 다 돌아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또 중요한 건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탈모샴푸나 두피토닉 제품들을 마구마구 장바구니에 담아댔다. 고르고 골라 샴푸를 세 종류, 두피 스케일링 제품을 한 종류, 또 두피 토닉 제품을 한 종류 구매했다. 비타민B 영양제도 더 잘 챙겨 먹고, 오메가 3도 빠트리지 않고 먹었다. 계란도 매일 하루에 2개씩 먹으려고 노력하고 검은콩도 식단에 추가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면인데... 쉽지 않지만 매일 10시에 잠들려고 노렸했다.


이런 노력이 도움이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악화시키지는 않은 것 같다. 빠졌던 자리에 머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는데 이걸 처음 날 때는 모르다가 2센티 정도 자라서 뾰족뾰족 까까머리가 되어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머리가 빠졌던 줄 모르고 앞머리를 왜 그렇게 잘라버린 거냐고 했다. 다 빠지고 새로 나서 그렇다고 하니 슬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다시 났다는 사실에 매우 자랑스럽고 기쁘기만 했다.


지금은 투명 마스카라 픽서를 사서 살짝 정리를 해주면 큰 문제없이(?) 외출이 가능하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모자를 애용 중이라 쓸 일이 자주 있지는 않다. 그래도 더 이상 정전기 청소밀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빠지는 머리카락 수는 정상이 되었다. 머리를 묶을 때 손에 쥐어지는 묶음의 두께도 다시 원래 수준으로 통통해졌다. (이게 얇아졌을 때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살면서 머리끈을 한 번도 두 번 이상 돌려본 적이 없는데 이 때는 잠깐 세 번 돌릴 수 있었다) 겨울에 잠시 겪었던 해프닝정도로, 내 몸의 호르몬이 다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 걸 확인시켜 주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며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산후탈모’에 ‘극복기’라는 단어를 붙여서 기록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때 들인 건강한 식습관과 수면습관을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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