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의 대치동에서 중학생을 키운다는 것

<스카이 캐슬>에 등장한 페어팩스 카운티 학부모의 고민

by NowHereUs

“미국 어디에 사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대답은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에 사는 분들께는 “워싱턴 근처에 살아요.”라고 말한다. 미국에 사는 이들에게는 “디씨 근처에 살아요.”라고 한다. ‘워싱턴’이란 단어가 서부의 워싱턴 주와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노바(NoVA)라 불리는 버지니아 북부(Northern Virginia)에 살고 있고, 워싱턴 D.C.로 출근한다.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이 학교는 페어팩스 카운티에 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교육 컨설턴트가 활동했다는, 소위 ‘미국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곳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아이를 대학에 보낸 한국계 이민 선배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드라마 속 김주형 선생 같은 교육 컨설턴트가 실제로 존재했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이라고 한다. 정말로 그 컨설턴트 말을 따르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들은 “그렇다”라고 답하면서 조건을 덧붙였다. “일단 아이가 컨설턴트의 플랜을 따라갈 수 있어야 하고, 부모는 그 계획을 뒷받침할 재력과 체력이 있어야 한다.” 대치동에서 흔히 말하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의 미국판인가 싶어 씁쓸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라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 “미국 아이들은 입시 걱정 없이 행복하겠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미국의 대치동,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학부모로 살고있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여기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20250901090003973mcmx.png

@ChatGPT 생성


아이는 초등 3학년에 전학을 와서 올해 8월에 8학년이 되었다. 한국으로 치면 중2이지만 이곳에서는 중학교 마지막 학년이다. 학원 뺑뺑이는 아니지만 학원을 보냈다. 한국인 원장이 운영하던 과학·수학 전문 학원으로, 아이는 TJHSST(Thomas Jefferson High School for Science and Technology: 토머스 제퍼슨 과학기술고) 준비반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개학을 앞둔 8월 중순, 학원 폐업 소식이 전해졌다. 학원 일정은 곧 부모의 퇴근 일정과 맞물리기에 난감했다. 결국 다른 학원을 알아봤고, 입시설명회에 참석했다.


미국에도 특목고가 있다. 아이가 준비하는 TJ는 공립형 특목고다. 원한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입학 전형을 거쳐야 한다.

TJ는 2020년, 필기시험 중심에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는 원칙 아래 입시 제도를 대폭 바꿨다.

표준화 시험을 폐지하고, 전형료를 면제하고, 학군 내 중학교 별로 8학년 인원의 1.5%를 자동 배정하며, GPA와 경험 요소(경제적 취약계층, 영어 학습자(ESL), TJ 입학율이 떨어지는 중학교 출신 등)를 반영하기로 했다.


이후 입학생 구성은 크게 달라졌다. 아시아계 비율은 기존의 73%에서 55%대로 줄고, 백인(17%에서 22%·흑인(2.1%에서 7%)·히스패닉(3.3%에서 11.3% 학생 비율은 3배까지 증가했다.

표면적으로는 소외계층의 기회 확대가 제도적으로 확립된 아름다운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과정에는 여전히 잡음과 현재진행형의 논란이 숨어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뛰어난 학생들이 모인 곳"이라는 TJ의 정체성이 흔들렸다는 점이다. 2022년까지 「U.S. News & World Report」 고교 랭킹 1위였던 TJ는 2023년 5위, 2024년 14위로 내려앉았다. 전국 우수 장학생 선발의 기준이 되는 PSAT 상위 1% 학생 수도 절반으로 줄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불만과 혼란이 교차했다.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물음은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반복되지만, 어떤 제도든 잡음과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기묘한 위치에 놓였다. 백인이 아니기에 소수자에 속하지만, 학업 성취에서는 기득권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버지니아 주에서는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학업성취도 시험(Standard of Learning: SoL)에서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쉽게 말하면, 아시아계 학생들은 원래 공부를 잘하니까 최저 학습 성취도 기준을 다른 인종 학생들에 비해 높이 잡아야한다는 논리다. “뛰어난 학업 성취 집단”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은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커다란 부담이다. 정책 실천 과정에서 다른 소수자 집단을 위해 기득권을 양보하라는 요구가 내려오는데, 그 요구가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은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문제다.


2024년 10월, 7년간 TJ 교장을 맡았던 앤 보니타티버스(Ann Bonitatibus) 교장이 물러났다. 공립학교 교장은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교육구 인사에 따라 이동한다. 하지만 교장이 퇴임한 배경을 두고, 입학 전형 개편을 밀어붙였던 리더십의 책임이라는 해석, 다양성 정책의 실패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새로 부임한 교장이 TJ 졸업생이라는 점, 취임사에서 “탁월함의 전통을 이어가며,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혁신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점은, 학부모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입시 제도는 바뀌어도 부담은 여전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입시제도가 바뀔수록 부담은 커진다. 제도 변화가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불확실성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현 제도에서 가장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대학 입시도 아닌 고등학교 입시를 고민하게 될 줄은 미국에 오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참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이는 폐업한 학원 대신 새로운 학원에 등록했다. Zoom으로 열린 설명회에서 학원은 “논술 대비 최적화 커리큘럼”과 “어떤 변화에도 맞춤형 지도”를 강조했다. 듣는 내내 씁쓸했다. 이게 우리가 꿈꾸던 미국 생활이었을까. 주말 저녁, 가족 셋이 모여 앉아 학원 입시설명회를 듣고 있는 풍경이라니.


청소년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도 자주 불평한다. 하지만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말들이 있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면, 그게 왜 나여야 하느냐.”

“그 기회를 얻은 학생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 학교 성취도가 떨어지는 게 우리가 추구할 가치냐.”

“하고 싶은 사람들은 밀려나고, 단지 기존에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좋은 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분위기에서 적응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 학생에게도 좋지 않은 것 아니냐” 등등, 아이의 이어지는 질문은 그냥 볼멘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예리하고,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답을 쉽게 내릴 수 없는 문제다. 기회의 평등은 부정할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이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낸 높은 성취’ 때문에 오히려 ‘역차별’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모순이다. 아이의 불만을 단순히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법이야”라며 “공부나 해”라는 식으로 넘기고 싶지는 않다. 그야말로 성적에 목매는 전형적인 ‘타이거 맘’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민주 시민으로서의 입장과 역차별 당사자의 부모로서의 입장이 충돌한다는, 반쯤의 공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섞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시원치 않은 답뿐이다.


10월이면 TJ 입학 지원이 시작된다. 아이는 논술 준비와 내신 관리를 병행하며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12월에 ‘입학 자격 미달’ 통보를 받지 않는다면, 1월 말에는 논술 시험을 치르게 된다. 4월 말까지는 조금 이른 입시생의 부모로 살아야 한다. 아이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교육 문제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국의 대치동에서 아시아계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한국의 학부모와 다르지 않게, 그저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는 선택과 불안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TJ 입학을 위해 노력하는건, 우리의 바람이 아니라, 아이의 바람이라는게, 그나마 지키고 싶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유학생이었던 터라 많은 과외(extra curriculum)을 경험하게 해 주진 못했지만, 아이는 어떤 스포츠도, 악기도, 다른 예체능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엔지니어인 아빠의 너드 스타일의 사고방식 및 과학자 마인드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실제로 뇌과학이나 해부 실험을 하는 실험 위주 과학(hands on science)에 흥미를 보여 학교를 통해 과학 실험 팀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여러차례 문의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이런 과정을 제공하는 여름 캠프에 등록하기도 했다. 이번 여름 캠프에선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캠프 첫 날, 캠프 디렉터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아이가 캠프 자체도, TJ도 싫다며 울고 있다고. 내가 알던 아이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중학생의 마인드를 예측하는게, 가능이나 할까 싶었다. 게다가 아이는 지난 주 까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코네티컷에서 운영되는 다른 캠프에 참여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겨우 하루 쉬고 또다시 캠프에 간건 역시 무리였던걸까, 걱정하며 일단 알았다고, 조금 일찍 픽업하겠다고 하고 서둘러 퇴근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디렉터는 미안하다며, 울고 있는 학생이 우리 아이와 이름이 비슷해, 착각했노라고 말했다. 아이를 픽업하자마나 아이는 "엄마 전화 받았지" 라고 말하며 교실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줬다. 첫날 수업을 거의 다 마치고, 둘러앉아 그룹 활동을 하던 중 돌아가며 좋아하는 과학자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침묵하고 있던 한 학생이 울기 시작했다는거다. "나는 TJ도 싫고, 캠프도 싫고, 다 싫다고." 울음을 터뜨린게 내 아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스쳐지나갔지만, 방학인데, 쉬지도 놀지도 못하고 내몰리는 느낌이 얼마나 부담되었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시아계 학생들의 높은 학업 성취율은 부모의 "교육열"이 가장 큰 역할이다, 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지나친 교육열이 초래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사건도, 명문대 동시 합격으로 알려진 학생이 실은 합격증을 위조했다거나, 이 모든 일이 이 지역 한국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의 마인드가 지배적인 이민 1세대의 부담감을 안고 사는 1.5세대, 혹은 2세대의 갈등은 이미 이민자의 삶을 그린 여러 작품에서 식상한 클리셰가 된 지 오래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거창한 다짐까지는 못해도, 아이의 의지와 상관없는 꿈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는, 그런 부모는 되지 말아야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다음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사이에 서서> 라는 코너명으로 연재중인 글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점심 후 양치를 눈치 보며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