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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 Kim Jul 12. 2018

치사할 만큼 쉬운 기록에서 벗어나기

어쩌면 사진은 가장 간편하면서도 치사할 만큼 쉬운 기록 방식일지도 모른다

잔에 가득 담긴 리즐링, 라임이 들어간 진 피즈, 체리맛 아이스크림, 예쁜 핑크빛의 연어 샌드위치




프랑크푸르트에 발을 디딘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이 날은 예술재단에서 일하는 오틸리에의 초대로 Bad Vilbel에서 열리는 오픈 에어 행사에 함께 다녀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이 작은 동네는 온천으로 알려진 곳이라고. 매년 여름 이 작은 마을에서 약 6주간 아트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Burgsfestspiele라고 불리는 성곽에서 뮤지컬이 올라간다.

 

시냇물에 둘러싸인 성곽의 입구에는 작은 분수가 있었다. 퇴근 후 오틸리에의 친구 카이의 차를 타고 도착한 극장 앞에는 적당한 가격의 음식과 음료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공연이 시작하기 전 하얀 테이블에서 화이트 와인과 간단한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는 대화와 웃음이 가득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후 4시 정도의 햇빛 아래, 사람들은 온전히 그 순간에 있었다


오틸리에는 최근 리즐링 와인에 푹 빠진 내게 큰 컵 가득 담긴 와인을 건넸다. 한창 달아오르는 태양에 흰 테이블보와 유리잔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하나둘 일어나 각자의 자리를 찾았다. 학교 노천극장보다 작은, 매우 아담한 공간이었다.


'Ein Käfig voller Narren'이라는 뮤지컬 제목의 뜻도 줄거리도 모른 채 공연장 자리에 앉았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공연장에 가득했다. 독일어로 약 두 시간 가량 진행된 공연은 후에 알고 봤더니 'La Cage aux Folles', 한국에서는 '라카지'로 알려진 작품이었다. 물론 오리지널 버전에 비해 많이 허술한 세트겠지만 Bad Vilbel에서의 시간은 그저 아름답고 새로울 뿐이었다.


Ottilie와 기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너무 귀여운 에피소드를 들었다. 그녀가 젊었을 때는 지금의 스마트폰이나 카메라가 없었다. 파리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가지고 싶어 잠깐 하던 것을 멈추고 눈을 감은 적이 있다고 한다. 'Stop, I really want to capture this moment in my heart'라며, 온전히 그 순간을 담아가기 위해 눈을 감은 젊은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기록에 관하여


기록하고픈 순간을 다시금 기억하고자 머리를 헤집자면 미간이 찌푸려진다. 사진 없이는 더 이상 순간을 기록하지 못하게 된 걸까? 페이스북과 스마트폰이 우리를 문맹으로 만든 것처럼, 사진 또한 우리의 해마를 무감각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봤던 모든 것을 기록할 필요는 없다. 의무감에 행해지는 기록은 속도를 늦추고 감흥을 덜어낼 뿐이다. 머릿속에 빛나는 조각들만 이야기해도 좋다. 과거의 순간으로의 여행은 그 한 조각으로 충분히 시작될 수 있다. 머릿속의 기억은 피치 못하게 왜곡되고 변형되지만, 그 또한 기억의 천성 이리라. 기억의 온전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때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도무지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


도무지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 겨우내 비어있던 성벽 안이 빛과 노래와 춤으로 채워진 여름 저녁이었다. 어쩌면 사진은 가장 간편하면서도 치사할 만큼 쉬운 기록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 곳 사람들은 정말 멋진 순간에서조차 카메라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 온전히 순간을 즐기고 머리와 가슴에 담아둔다. 기록은 이 모든 것이 끝나고서야 시작된다.


기록은 원래 더딘 것이니 조급해할 필요 없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그림 한 점을 위해 몇 년의 세월과 땀을 쏟았는가. 바쁜 세상 속 우리에겐 사실 기록은 하는 것이 다일 수 있다. 어떤 방식, 어떤 내용이든지 간에 기록은 하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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