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 Dec 03. 2018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02 니스, 마티스 미술관 Musée Matisse

파리에서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로 넘어가는데는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역시 가장 편한 방법은 비행기다. 비행기를 타게 되면 보통 니스나 마르세유를 통해 들어가게 된다. 이건 기차(TGV)를 타도 마찬가지여서 결국이 두 곳이 이동의 주요 거점이 되는 셈이다. 나는 이 둘 중에 니스를 택했다.


깔끔하고 완벽하게 정비된 휴양도시로의 면모를 뽐내는 니스건만, 이 때는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 일명 '영국인 산책로'로 불리는 해안 산책로를 걷는 것 외에 니스의 바다를 즐길 방법은 딱히 없었다. 고급 호텔과 식당들이 줄지어 위치한 호화로운 산책로는 3~4km 정도 이어지는데 전체를 다 걷지는 않고 딱 기분 낼 만큼만 걸어보았다. 고운 모래가 깔린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는 아니지만 까만 몽돌과 햐얀 듯, 푸른 듯 소다수를 닮은 듯한 오묘한 니스의 바다색이 마음에 들었다.


니스에 숙박을 잡아두고 주변 마을들을 당일치기하는 식으로 며칠을 보냈기 때문에 니스에서 꽤 여러날 숙박을 하긴 했으나 정작 니스 시내를 오롯이 둘러볼 시간은 부족했다. 니스 시내에만 해도 꽤 여러 곳의 미술관이 있는데 그 중 마티스 미술관과 니스 현대 미술관만을 들러볼 수 있었다.


# 마티스 미술관 Musée Matisse


앙리 마티스는 파리 태생이지만 1차 대전 이후부터 니스에 거주하기 시작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이 넘는 날들을 니스에서 보냈다. 때문에 니스에 마티스와 관련된 미술관이 없다면 이상할 뻔 했지만 당연히 있다.


마티스 미술관에 가려면 공원을 하나 통과해야하는데 걷다보니 도처에 올리브 나무다. 올리브 나무가 원래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이렇게 흔하게 마구 자라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 올리브 열매도 탱글탱글 매달려있다. 여기에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이런 것들이 그냥 동네 공원에 널려있다. 서울과는 확실히 다르다.


'선명한 원색 간의 대비'로 대표되는 마티스의 작품들은 종종 '야수파'와 동일한 개념처럼 쓰이곤 한다. 그만큼 마티스 하면 야수파이고, 야수파 하면 곧 마티스이지만 이곳의 작품들은 야수파스러운 쎈 작품들이 아니라 데생, 동판화, 그리고 방스의 로자리오 예배당 작업을 위한 스케치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강렬한 느낌은 전혀 없는, 다소 얌전하기까지 한 작품들. 여기서 그나마 야수파스러운 면은 붉게 칠한 건물의 외관 뿐이다.


사실 마티스가 그런 야성미 넘치는 작품 위주의 활동을 한 기간이 그리 길지도 않다. “내가 꿈꾸는 것은 바로 균형의 예술이다.”라던 그의 말처럼, 마티스는 평화스러운 조화가 느껴지는 작품들을 창작하기도 했다. 야수스러운 도발적 분위기의 작품에서 균형미가 돋보이는 장식적인 작품으로 한차례 변모, 말년에는 색종이를 오려붙이는 콜라주 기법까지 개발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했던 마티스. 그가 일관되게 관심을 가진 것은 특정한 화풍이나 표현 기법이 아니라 오직 ‘색채’였다. 이쯤 되면 그를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한 도전가’로 불러도 될 법하다.


내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 중 예배당 작업을 위한 스케치들에선 특히나 고민의 흔적들이 역력해 ‘추상 작가들은 자기 마음대로 선이나 하나 찍 긋고 아무 제목이나 붙이고, 어떤 날엔 그것조차 귀찮아서 <무제>라고 해가지고 대충 물감이나 찍어 바르는거 아냐?’ 라는 생각을 말끔히 날려준다.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거장조차도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하는가. 노력이 능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사실 노력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노력할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능력이라고 하겠는가. 그러니까 아무리 쉬워 보여도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것이 특히 '내 일'이라면은 더더욱.


이곳에서 그의 스케치들을 구경하고 나니 거장의 고민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짬을 내어 방스에 들러 로자리오 예배당 실물을 꼭 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전 01화 뻔하지만 미술 기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