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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Jan 14. 2019

샤갈이 사랑한 마을

08 생폴 드 방스, 매그 재단 Fondation Maeght

그 시절 두 번의 전쟁을 치르며 세상은 몹시도 혼란스러워졌다. 이 시기에 피카소나 마티스 등의 예술가들이 대거 프랑스 남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샤갈은 생폴 드 방스에 자리를 잡았고 이후 쭉 이 곳에서 살다가 이 곳에서 그의 일기를 마쳤다고 한다. '생폴 드 방스'를 이야기할 때 샤갈이 꼭 따라붙는 이유다. 그저 샤갈 때문에 생폴 드 방스가 유명해진 것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지금 이 곳은 엄청나게 유명한 관광지이다.

로마인들의 침략을 피해 산골짜기에 돌로 된 성벽을 짓고 그 성벽 안에 자리를 잡은, 걸어서 한 두시간이면 다 돌아볼 법 한 작은 마을이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중세 시대를 걷는 듯한 분위기 덕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곳, 생폴 드 방스. 그렇다보니 관광 성수기엔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이 넘쳐나서 마을이 통째로 몸살을 앓는다고 하는데 다행히 이 날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여지껏 들렀던 유사한 분위기의 마을들 중에선 가장 상업적인 냄새가 나는 마을이기도 했다. 특히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는데 퍼주는 양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렇게 조금 주다니!


어수룩하게 해가지는 저녁 시간, 콩알만한 아이스크림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작은 공방들이 즐비한 좁다란 돌길을 따라 마을을 돌아 보았다.


생폴 드 방스에는 라 콜롬보 도르(황금 비둘기라는 뜻)라는 이름의 호텔이 있다. 이 호텔에 딸린 식당은 피카소, 샤갈, 브라크, 모딜리아니 등의 대가들의 작품이 도처에 걸려있어 마치 고급 갤러리 안에서 식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가난했던 예술가들에게 돈 대신 작품을 받고 식사와 쉴 곳을 내 주었다는 라 콜롬보 도르. 무명의 예술가들이 대가들로 인정받게 되면서 당시 그렇게 받은 작품들 또한 대단한 작품들로 평가 받게 된 것이다. 당연히 그런 작품들 사이에서 식사를 하려면 몆 주에서 몇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하는데 그나마도 이 때는 여름 극 성수기 영업을 마친 직원들이 모두 가을 휴가를 떠난 상황이어서 영업을 하지 않고 있어 들러볼 수 없었다. 열린 문 틈으로 살짝 엿보며 재방문을 기약해본다.


# 매그 재단 Fondation Maeght

생폴 드 방스의 산 중턱에 위치한 제법 큰 규모의 미술관으로 그 구성이 나름 독특하게 되어있다. 칼더의 모빌과 샤갈의 그림, 자코메티의 조각이 한 곳에 모여있는 곳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미술 교과서에 꼭 등장하는 인물이자 단골 시험 문제였던 ‘모빌의 창시자’ 칼더의 모빌을 직접 만난 것도, '생폴 드 방스'하면 바로 꼽히는 인물인 샤갈을 작품을 보게 된 것도, 현대 조각 중 가장 비싼 조각으로 불린다는 자코메티의 조각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반가웠다.


매그 재단의 실내 전시 공간은 호안 미로가 구성했고, 야외 전시 공간에는 샤갈과 자코메티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하니 미술관 자체도 여러 예술가들의 합작품이자 하나의 독자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미술관 건물은 웅장함을 뽐냈고 푸른 나무들과 어우러진 야외 전시 공간은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문득 몇년 전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 호안 미로 미술관에 갔었던 것도 다시금 떠오르고,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그의 작품들을 만났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여행이란 그런건가보다. 아니 어쩌면 삶이란게. 소중한 경험을 하나하나 모으고 그것들을 줄줄이 줄줄이 엮어가는 것. 이런 상황에 자주 쓰는 말은 아니겠지만 이런 순간 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줄줄이 이어지는 경험은 분명 기분 좋은 경험이다. 내가 기억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쭉 이어지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게 기억들이 줄줄이 이어질만큼 내가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구나, 아직도 기억해둘게 많구나, 하는 생각. 흐지부지 살아온 날들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으니까.


샤갈은 너무 흔하고 익숙해서 간혹 지겹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동적이다. 그건 아마도 샤갈의 작품들을 인쇄물이나 모니터로 볼 때는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느낌이 큰데 실제로 보게되면 생각보다 은은하고 영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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