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 Jan 28. 2019

세상을 바꾼 사과

10 엑상 프로방스, 세잔의 아뜰리에 Atelier de Cézanne

# 세잔의 아뜰리에 Atelier de Cézanne

자드 부 팡엔 그리도 사람이 없더니만 이 곳엔 사람이 아주 많았다. 단체 관광객들도 들르는 코스인 듯, 계속 팀 단위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중이었다. 내부에서 이런 저런 내용들을 설명해주던 관리인 아주머니는 요즘은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이 온다며 한국인들이 이제 세잔의 작품을 좋아하게 된거냐 묻더니 이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그 당시에 존재했던 먼지 한 톨까지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했다는 공간. 세잔이 죽기 직전까지 약 4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는 이 작업실은 아주 좁고 별 것도 없는 그저그런 공간이지만 '아니, 세잔이 이런 허술한 곳에서 그런 대단한 작품을!' 라는 의미 부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들르는 것 같았다. 한 예술가의, 한 사람의 가치라는 것이 이렇게나 위대하다.

지저분한 파레트, 아무렇게나 놓인 유리병과 사과는 아뜰리에에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삐그덕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의자 몇 개와 낡아 빠진 가구들도 마찬가지. 특히 벽 한 켠에 대충 걸려있는 커다란 코트와 모자를 보니 세잔이 영영 떠난 것이 아니라 요기를 위해 빵이라도 사러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 드 부팡에서 세잔의 풍경화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면 이 곳은 세잔의 정물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 둘을 나눠서 생각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세잔은 한 시점에서 보이는 대로 대상을 묘사하는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파악하는 것에 주력했다. 이는 순간적인 인상을 표현한 당시 인상파 화가들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그만의 철학으로, "자연을 원통형이나 구형, 원추형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비록 복잡한 모습일지라도 그런 피상적인 내용들보다는 기하학적인 본질로서 파악하고 표현헤야 한다는 믿음. 결국 세잔은 정물이냐 풍경이냐보다 회화란 결국 어떤 '구조'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그를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잔은 평면적인 종이 위에 음영이 아닌 색채로서 사물의 양감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화가였다. 그리고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여 사물을 본질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그리려고 무진 애를 썼던 화가였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에 촌스럽게 사투리나 써대는 시골뜨기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살았으며, 당시 비평가들에게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자연주의 문학을 확립했다 평가 받는 프랑스의 문학가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재능 없는 화가 '클로드 랑티에'라는 인물이 있는데 에밀 졸라가 세잔의 상황을 참고로 하여 이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에밀 졸라와 세잔은 중학생 시절부터 30여년간 절친한 사이였으나 이 일을 계기로 틀어져 이후 두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미술 평론가이자 나비(Nabis)파의 토대를 정의했던 모리스 드니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 알의 사과를 아래와 같이 꼽았다.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

이브의 사과는 기독교의 시작을 상징하고, 뉴턴의 사과가 기독교에서 가르친 ‘맹목적인 믿음’을 벗어난 인간 이성의 출현을 상징한다면 세잔의 사과는 이러한 이성에도 불완전성이 있음을 알리는 사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세잔의 사과는 ‘우리는 이성적이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각자의 주관이 반영될 수 밖에 없기에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우리 모두는 이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겸손함에 대한 상징이 아닐까.

오래전 세잔은 떠났지만 그의 사과는 역사 속에 영원히 남았다.

대접의 형태가 옆에서 그려진 것 같으면서도, 윗 부분은 마치 항공샷처럼 대접 바닥까지 보이고 있다


※ 아뜰리에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있다.

이전 09화 세잔, 세잔, 세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